노자지귀 2권 권이:도생일편(卷二)

📚 노자지귀(老子指归) · 제2편

권이:도생일편(卷二)


「도(道)는 하나(一)를 낳고, 하나는 둘(二)을 낳으며, 둘은 셋(三)을 낳고, 셋은 세상 만물(萬物)을 낳습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음(陰)의 기운을 등에 지고 양(陽)의 기운을 가슴에 품으며(萬物負陰而抱陽), 텅 빈 충기(冲氣)를 통해 조화와 합치를 이룹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고 꺼리는 단어는 오직 외롭고(孤), 홀몸이며(寡), 덕이 없어 곡식을 먹지 못한다(不穀)는 비천한 단어들이지만, 왕과 공후 등 최고 권력자들은 도리어 이를 겸손한 자기 호칭으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은 때로 그것을 덜어냄으로써(損) 오히려 이롭게 되고(益), 억지로 그것을 보탬으로써(益) 오히려 손해를 입기도(損) 합니다.

남들이 세상에 가르치고 훈계하는 바를 나 또한 받아들여 세상에 가르치노니, ‘억세고 사나워 남에게 군림하려는 강포한 자(強梁者)는 결코 제명에 편안하게 죽지 못한다’는 도리입니다. 나는 이 자연의 순리를 내 가르침의 으뜸이자 아버지(敎父)로 삼을 것입니다.」


📖 엄군평(嚴君平) 《노자지귀(老子指歸)》 해설 및 주석

지극히 텅 비고 빈 것(虛之虛者)은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인도하는 문을 열어주지만, 스스로 그러한 대자연의 실재가 존재하지 않고서는 결코 어떠한 사물도 스스로 생겨나 움직일 수 없습니다. 비어 있는 것(虛)은 만물의 도가니가 되어 온갖 형상의 변화를 주관하고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시초를 만들어내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스스로의 형체를 직접 낳지는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무(無之無者)의 영명함은 신명(神明)조차 그 질서를 마음대로 뜯어고칠 수 없으며, 삼라만상의 존재를 창조하여 지탱하는 근본이지만 그 또한 스스로를 인위적으로 보존하려 들지 않습니다. 무(無)의 상태는 지극히 미세하고 은밀하여 아득히 깊고 오묘하지만(纖微玄妙), 모든 존재의 이루어짐을 마땅히 주관하되 자신이 그 공과 실재를 억지로 완성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빈 것(虛)은 모든 비어 있는 영적 기운을 낳고, 존재하지 않는 무(無)는 깊은 무(無)의 조화를 낳으며, 영명한 무(無)는 비로소 형체가 있는 만물(有形)을 낳습니다. 이 때문에 형상을 지닌 천하의 모든 존재들은 저마다 물질(物)이라는 구체적인 부류에 속하게 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물에는 그것이 흘러나온 종지(宗)가 있고, 모든 부류에는 근본 조상(祖)이 있습니다. 천지(天地)는 물질 중 가장 위대한 존재이며, 사람(人)은 대자연에서 천지 다음가는 고귀한 존재입니다. 무릇 천지와 인간의 탄생과 살아감을 살펴보면, 인간의 구체적인 형체(形)는 천지의 기운(氣)에 기대어 존재하고, 그 기운은 천지의 조화(和)에 기대어 존재하며, 조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명(神明)에 기대어 존재하고, 신명은 대자연의 도덕(道德)에 기대어 존재하며, 도덕은 결국 스스로 그러한 대자연(自然)에 기대어 존재합니다. 이 인과와 조화의 섭리 덕분에 만물이 비로소 실재하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하늘을 하늘답게 만들어 주는 근본’은 하늘 그 자체가 아니며, ‘사람을 사람답게 존재하게 해주는 원초적 근본’ 역시 사람 그 자체가 아닙니다. 즉, 만물의 너머에 만물을 있게 만드는 근원인 도(道)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 장자(莊子)는 묻기를, ‘사람이 가진 이 오묘한 육신과 형체는 대체 어디서 취해온 것이며, 사람의 영명한 총명함과 신비로운 감응력은 대체 무엇으로부터 얻은 것이며, 세상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태어나고 죽는 우주론적 종시(終始)는 대체 누구의 조화로 만들어진 것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깊은 통찰을 통해 살펴볼 때, 형상과 실재가 있는 유(有)는 아무것도 없는 원초적 무(無)에서 생겨났으며, 알차고 가득 찬 실(實)은 텅 비어 있는 허(虛)에서 생겨났음이 지극히 자명하게 밝혀집니다.

그러므로, 본래 존재하지 않아 형태도 없고 시작도 없는 무(無)는 인위적으로 붙잡아 둘 수 없으며, 형체도 소리도 없으므로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천지의 기운을 아랫사람과 만물에게 베풀어 유(有)의 세상을 풍성하게 영위하게 만들지만, 그 깊은 작용은 결코 인간의 좁은 언어적 도리(道)로는 온전히 형언할 수 없습니다.

없고 없는 무의 너머에 존재하는 가장 완전한 무이자, 시작과 끝의 태초에 존재하는 우주의 시작이며, 세상 만물이 생겨나 흘러나오는 위대한 원천이자 백성들의 성정과 수명이 비롯되는 가장 근본적인 고향, 그리고 결코 그 이름을 함부로 규정하여 부를 수 없는 신비로운 실재, 이를 일컬어 우리는 도(道)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도를 깊이 이해한 성인은 이 우주의 근본 도리를 깨달았으므로, 겉으로 화려하게 명예를 다투거나 힘을 뽐내며 남을 억누르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덜어내고 낮추는 비어 있음(虛)과 물러남(損)을 통해 가장 완전하고 영구한 채워짐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억세고 강포하여 남을 지배하려 드는 자(強梁者)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므로 결국 제풀에 꺾여 파멸을 맞이하게 된다는 교훈은, 우주 만물의 탄생과 조화를 관장하는 위대한 도가 일러주는 변치 않는 으뜸 가르침입니다.


📖 주요 한자 · 고사성어 풀이

  • 萬物負陰而抱陽 (만물부음이포양) — 천지만물은 음(陰)의 기운을 뒤에 지고 양(陽)의 기운을 앞에 안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주 삼라만상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호 보완하는 두 개의 음양 기운으로 구성되어 조화를 이룬다는 동양 철학의 우주론적 근본 원리입니다.
  • 冲氣 (충기) — 비어 있고 조화로운 하늘의 참된 기운을 뜻합니다. 음양의 기운이 서로 부딪치고 소통하면서 인위적 대립을 지우고 대자연의 완벽한 화합(和)을 이루게 만드는 매개체입니다.
  • 强梁者不得其死 (강량자부득기사) — 성정이 억세고 포악하며 힘을 뽐내기 좋아하는 자는 결코 제명에 편안하게 죽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유약함과 부드러움이 굳셈을 이긴다는 도가 사상의 실천적 경고이자 삶의 명철보신을 위한 핵심 훈계입니다.
  • 有生於無 (유생어무) — 형체가 있고 실재하는 세상 만물(有)은 눈에 보이지 않는 텅 빈 본원적 근원인 무(無)로부터 탄생했다는 노자의 형이상학적 우주 생성론입니다.
  • 敎父 (교부) — 가르침의 어버이 또는 가르침의 으뜸이 되는 가장 중요한 근본 도리를 비유합니다. 본문에서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사나운 행동을 경계하는 것이 만사를 가르치는 지혜의 근본 출발점임을 일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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