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장집(馬季長集) 2권 소(疏) – 상소문

안제(安帝)께 방참(庞参) 등을 청하는 상소

〈원초 연간에 방참이 호강교위(护羌校尉)가 되어 선령(先零) 강족(羌)을 쳤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이에 병을 핑계로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는데, 거짓으로 꾸민 죄에 연좌되어 하옥되었다. 교서랑중 마융이 상서를 올려 그를 구명하니, 상소가 올려진 뒤 방참 등을 사면하였다.〉

삼가 보건대 서융이 반란을 일으켜 5주를 약탈하니, 폐하께서 백성의 상처를 가엾게 여기고 백성들이 생업을 잃은 것을 슬퍼하시어 부고를 다 털어 군사들을 지원하셨습니다. 옛날 주나라 선왕(宣王) 때 험윤이 호경과 방정에 침입하였고, 효문황제(효문제) 때 흉노가 상군을 약탈하였으나, 선왕은 중흥의 공을 세웠고 문제(文帝)는 태종(太宗)의 칭호를 세웠습니다.

두 군주께서 명철한 자질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성을 지키는 용맹한 장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남중(南仲)의 혁혁함이 주나라 시경에 실려 있고, 주아부(亚夫)의 굳센 기상이 한나라 책에 기록된 것입니다. 가만히 보건대 전 호강교위 방참은 문무를 뚜렷이 갖추고 지략이 넓고 원대하며, 이미 의롭고 용맹하며 과단성 있는 절개를 가졌고 박아하고 깊은 모략의 자질까지 겸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요장군(度辽将军) 양근(梁慬)은 이전에 서역을 통솔하며 수년간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돌아와 삼보(三辅)에 머물며 공효를 능히 세웠으며 한가히 북쪽 변방에 있을 때 선우가 항복하였습니다. 지금 이들이 모두 유폐되어 법망에 빠져 있습니다.

옛날 순림보(荀林父)가 필(邲) 땅에서 대패하였으나 진(晋)나라 제후는 그 자리를 복귀시켰고, 맹명시(孟明视)가 효(崤)에서 군사를 잃었으나 진(秦)나라 백작은 그 벼슬을 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진(晋)나라 경공은 적적(赤狄)의 땅을 병합하였고, 진(秦)나라 목공은 마침내 서융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마땅히 두 군주를 멀리 거울삼아 방참과 양근이 너그럽게 용서받는 과목에 들게 하시면 실로 적을 꺾는 데 유익함이 있을 것이요, 성스러운 교화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일식에 대하여 논하는 상소

〈건광 4년 3월 무오 초하루, 위(胃)수 12도에서 일식이 일어났다. 농서, 주천, 삭성에서 각각 상황을 올렸으나 사관은 깨닫지 못하였다. 이때 마융은 허현(许)의 현령이었는데, 상서를 올렸다.〉

삼가 조서를 읽어보니, 폐하께서 우왕과 탕왕이 자신의 죄로 돌린 뜻을 깊이 생각하시어, 허물을 자신에게 돌려 자책하시고 하늘의 경계를 두려워하시며, 백관을 널리 부르고 공경들에게 널리 물으시어 변고가 비롯된 바를 알고 그 원인을 살펴 얻어 옛 술법을 회복함으로써 천명에 답하고자 하셨습니다. 신하들과 원근의 사람들이 목을 빼고 발돋움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만약 한낱의 앎이라도 틈이 있다면 스스로를 바쳐 성스러운 귀에 바치기를 원할 것입니다.

신이 엎드려 일식의 점(占)을 보건대 예로부터 전적에는 10월의 교차함이라 하였습니다. 《춘추전기》와 《한주》에 실린 바, 사관이 살피고 점친 것과 뭇 신하들이 은밀히 대답한 것을 폐하께서 관람하시고 좌우에서 외고 읽으시니 가히 상세하고 구비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다시 널리 물으시더라도 이전의 기록에 빠져 있으니 더할 것이 없습니다.

지난번 참(参)성에 혜성의 기운이 있었을 때, 신이 전에 돈박한 사람을 얻어 3년 2월 북궁 단문에서 대책(对策)을 올리기를, ‘참(参)’은 서방의 자리이며 그 분야(分野)로 병주(并州)가 해당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서융과 북쪽 변방을 말한 것인데, 그 후 강족 종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오환이 상군을 침범하여 병주와 양주에 군사가 움직였으니, 그 징험이 대략 효력을 보였습니다. 지금 다시 큰 이변을 보고 거듭 꾸짖음으로 경계하시니 이 두 성에는 해내에 보이는 바가 없었고, 3월 1일 합친 진이 누(娄)성에 있었는데 누(娄) 또한 서방의 별자리니 뭇 점괘가 뚜렷합니다.

강족과 오환이 허물을 뉘우친다는 말이 있고 장수와 관리들이 공을 책록한다는 이름이 있으나, 신은 목민의 임무를 맡은 자들이 눈앞의 상황만 대충 벗어나려 하여 모두 한때의 권세만 꾀하고 나라를 위한 백대의 이로움은 돌아보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논하는 자들은 가까운 공을 찬미하고 먼 것을 소홀히 하니, 즉 각각 서로 큰 질병이라 여기지 않으나 삼가 하늘의 현상은 헛되지 않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노자가 말하기를, “어려운 일은 그 쉬운 데서 도모하고, 큰일은 그 미세한 데서 시작하라” 하였으니, 재앙을 없애고 변고를 회복하는 것은 마땅히 지금에 있어야 합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해와 달이 흉함을 고하니 그 운행의 법도를 쓰지 않음이요, 사방의 나라에 정사가 없으니 그 어진 이를 쓰지 않음이라” 하였습니다. 전에 이르기를, “나라에 정사가 없고 착한 이를 쓰지 않으면 스스로 해와 달의 재앙을 취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정사를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힘써야 할 것은 세 가지뿐이니, 첫째는 사람을 가리는 것이요, 둘째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요, 셋째는 때를 따르는 것입니다. 신 융이 삼가 생각하건대 바야흐로 지금은 도가 있는 세상이요 한나라 법전이 베풀어져 후(侯), 전(甸), 채(采), 위(卫)가 갖추어졌습니다. 백성을 맡은 관리들이 법도를 따르고 먹줄을 지켜 비록 고과가 있더라도 그 차이가 얼마 되지 않으며, 죄에 빠져 스스로 화를 자초하더라도 백성들은 그 큰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그러나 변방 군의 목민관이 화합을 잃으면 길흉과 성패의 우열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을 신중히 가려 위로는 하늘의 변고에 응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야 합니다.

가만히 보건대 열장(列将)의 자손들은 경사에서 자라나 조세를 받고 살며 농사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 재액과 곤궁함을 겪은 적이 드물지만, 과단성 있고 용맹하며 재물을 가볍게 여겨 고아와 약자에게 베풀어 사생의 쓰임을 얻을 수 있으니 이것이 그들의 장점입니다. 법과 금기에 얽매이지 않아 사치스럽고 태만함이 한이 없으나 공로는 족히 위엄을 떨칠 만하고 넘침은 족히 교화를 상하게 할 수 있으니 이것이 그들의 단점입니다. 주군의 선비들은 빈고한 출신으로 검속하고 통제하는 데 능하여 비록 상벌을 전담하더라도 감히 넘치지 못하니 이것이 그들의 장점입니다. 글에 얽매이고 법을 지키느라 비상사태를 만나면 여우처럼 의심하여 결단하지 못하고 머리도 꼬리도 두려워하여 위엄과 은혜가 엷어 안팎이 마음을 떠나고 사졸들이 복종하지 않으니 이것이 그들의 단점입니다.

반드시 장수는 두 가지 장점의 재주를 겸비하고 두 가지 단점의 누를 갖지 않은 자를 얻어, 관리의 일로써 참작하고 병법으로써 맡겨야 합니다. 이러한 자질을 갖춘 연후에야 적을 꺾고 재난을 억눌러 그 실공을 거두어 재앙을 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열 집이 사는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구(丘, 공자 자신)와 같이 충실하고 믿음직한 자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천하의 큼과 사해의 무리를 가지고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신은 그것이 거짓이라 생각합니다. 마땅히 널리 칭찬받는 자를 특별히 선발하여 신중히 그 참된 자를 얻어 두 방면을 진수(鎮守)하게 하심으로써 어진 이를 쓰고 사람을 가리는 뜻에 응하여 큰 이변을 막으셔야 합니다.

시장을 순시하며 스스로를 탄핵하기를 청하는 상소

〈마융이 양가(阳嘉) 연간에, 대장군 양상(梁商)이 그를 종사중랑으로 표창하고 무도(武都) 태수로 전임시켰다. 이때 서쪽 강족(羌)이 반란을 일으키자, 정서장군 마현(马贤)과 호강교위 호주(胡畴)가 이들을 정벌하러 갔으나 지체하며 나아가지 않았다. 융은 그들이 장차 패할 것을 알고 상소를 올려 스스로 공을 세우기를 청했으나 조정은 이를 쓰지 못했다.〉

지금 잡종 강족들이 번갈아 가며 노략질을 하니, 마땅히 그들이 아직 합쳐지기 전에 서둘러 깊이 파견하여 그 무리들을 쳐부수어야 합니다. 그러나 마현 등은 곳곳에 머물며 지체하고 있습니다. 강족과 호족은 백 리 밖에서 먼지를 바라보고 천 리 밖에서 소리를 듣는데, 지금 숨고 피하여 돌아서 그들의 뒤로 새어 나가면 필시 삼보(三辅)를 침략하여 백성들에게 큰 해가 될 것입니다.

신은 원컨대 마현이 불가한 바를 청하여 관동의 군사 오천 명을 쓰고, 부대(部队)의 칭호를 잘라 빌려 힘을 다해 이끌고 독려하여 발을 묻을 각오로 앞장서서 관리와 병사들보다 먼저 나아가고자 하니, 30일 이내에 반드시 그들을 쳐부술 것입니다.

신은 또 듣건대 오기(吴起)가 장수가 되었을 때는 더울 때 일산을 펴지 않고 추울 때 가죽옷을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 마현은 들판에 막사를 치고 진귀한 안주가 뒤섞이며 아이들과 첩들을 시중들게 하니, 그 일이 옛날과 반대입니다. 신은 마현 등이 한 성만을 전담하여 지키면서 서쪽을 친다고 말해놓고 강족이 동쪽에서 나올까 두려우며, 또한 그 장수와 병사들이 명령을 감당하지 못해 반드시 높이 이기고도 무너져 배반하는 변고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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