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교사어(樂郊私語)

📚 낙교사어(樂郊私語) · 제1편

낙교사어(樂郊私語)


📚 낙교사어(樂郊私語) 전체 완역본

원나라 말기이자 명나라 초기의 역사적 대전란 속에서 저자 요동수(姚桐壽)가 해염(海鹽) 고을로 난리를 피해 은거하며 목격하고 들은 기이하고 귀중한 역사적 실상과 야사를 기록한 《낙교사어》 단권 완역본입니다. 본문에는 한문 원문이나 한자 덩어리가 단 한 글자도 섞이지 않은 100% 한글 전용 번역문으로만 구성하여, 품격 있고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1. 낙교사어 서문

내가 지난 기묘년에 여간 땅에서 제수로 봉직하고 있을 무렵, 함께 고을을 다스리던 동지이자 해염 사람인 심중실을 만났다. 심중실은 가슴이 활짝 열려 있고 학문에 뜻이 깊은 인물이었는데, 우리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마치 십년지기처럼 서로를 알아보고 가슴 가득한 기쁨을 나누었다. 늦게 만난 것을 안타까워하며 마침내 굳건한 사돈의 맹세를 맺었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의리를 기약하였다.

그러나 불과 서너 해가 지나기도 전에 각자 벼슬자리에서 물러나며 은하수 별자리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기축년에 이르렀을 때, 홀연히 심중실이 세상을 떠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가 들려왔다. 나는 비통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노자를 가다듬어 머나먼 바닷가로 달려가 그의 영전 앞에서 목 놓아 통곡하였다. 그의 부인인 유씨 부인이 상복을 입고 내게 절을 올리며, 자신에게 오직 외딸 하나만 남았는데 멀리 시집을 보내고 싶지 않으며, 우리 둘째 아들의 혼기가 가까웠으니 사위로 맞아들여 늙은 미망인의 외로운 여생을 함께 지탱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슬프게 애원하였다.

임진년에 이르러 아들이 열여덟에 되었을 때 비로소 며느리를 맞이할 채비를 마쳤다. 아내가 내게 이르기를, 큰아들은 이미 자립하여 가정을 꾸렸으나 이 작은아들은 아직 어리니 어찌 타향 바닷가에 홀로 보낼 수 있겠느냐고 걱정하기에, 결국 우리 부부는 온 가재도구를 정리하여 해염의 풍산 남쪽 기슭으로 영구히 거처를 옮겨 살게 되었다. 이듬해 이월에 비로소 아들의 혼례를 치르고 나니 유씨 부인이 다시 눈물을 흘리며, 집안의 남은 기둥이 오직 품 안의 갓난아기뿐이라 문호가 지극히 쓸쓸하고 차가우니,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께서 이 집안의 대소사를 함께 돌보아 주시고 훗날 떠나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붙잡았다.

나는 그 애절한 마음에 더욱 감동하여 내 아내에게 말하기를, 온 천하가 난리로 어지러우니 우리 고향인 동강은 군사들이 지나는 요충지라 반드시 전란의 군홧발에 짓밟힐 것이지만, 이 해염 고을은 바다 구석에 깊숙이 치우쳐 있어 피난하며 여생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니 굳이 머나먼 고향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고 설득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해염 고을의 도성 안에 완전히 정착하였고 별장과 거처를 왕래하며 이곳의 영구 거주민이 되었다.

이후 나는 이 고을에서 만난 새롭고 오래된 문우들, 이를테면 소문난 명필 양염부와 가화의 배정신, 판택민, 장자회, 그리고 우리 고을의 양원탄 등과 더불어 봄날의 숲과 여름날의 물가에서 놀며 옛 현인들의 자취를 탐방하고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랬다. 그러면서 내 귀에 들리고 눈에 밟힌 기이한 이야기와 귀중한 역사적 사건들을 내 마음에 와닿는 대로 한 조항씩 조용히 적어 내려갔다. 몇 년이 흐르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이 글들이 두터운 한 권의 책으로 묶이게 되니, 스스로 탄식하며 말하기를, 온 천하가 흙 무너지듯 파괴되는 이 참혹한 난세 속에서도 내 비록 타향의 바닷가에 깃들어 살망정 이렇듯 붓을 놀려 맑은 글귀를 짓고 역사를 기록할 수 있으니, 이곳 해염이야말로 진정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피난처인 낙토로다! 그리하여 이 책의 이름을 《낙교사어》라 지어, 훗날 내 글을 읽어줄 넓은 도량과 깊은 지혜를 지닌 군자들에게 올바로 교정받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지정 계묘년 봄 삼월, 동강의 늙은 낚시꾼 요동수가 맑은 마음으로 쓰노라.

2. 록원사의 묵은 자취

내가 해염 고을에 처음 당도했을 때, 배를 타고 지나가다 록원사라는 버려진 옛 사찰을 마주하게 되었다. 마침 깊어가는 늦가을이라 붉게 물든 단풍나무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고, 깨진 기와와 허물어진 벽 틈새로 비치는 가을 햇살은 타향살이를 하는 나그네의 쓸쓸한 감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이에 배를 멈추고 뭍으로 올라가 벽면에 적힌 낡은 기록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곳에는 옛 송나라의 충신이자 명신인 노숙공이 나한의 모습으로 현몽했던 신비로운 일화가 적혀 있었으며, 그 옆에는 괄창의 문인 오서제 가 쓴 빼어난 시 구절이 적혀 있었다.

오서제는 시에서 노래하기를, 세상의 모든 법은 본래 평등하여 게으름도 경외함도 없거늘, 어찌하여 나한은 번뇌 없는 무생을 증득하고도 굳이 참정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났는가라고 물었다. 내 생각건대 나한이란 본래 강직하고 올바른 사람을 공경하는 법이지, 결코 세속의 지위가 높은 참정을 아부하는 존재가 아니다. 노숙공의 높은 풍모와 절개는 서슬 푸르게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어, 매번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의 의로운 사람됨을 떠올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후 해염의 도성 안으로 들어가 그의 사당을 참배하였다. 사당 옆에는 그를 추모하여 지은 사교가 있었고, 벽면에는 그의 영험함을 묻는 점괘판이 붙어 있었다. 백성들에게 어려운 송사나 우환이 있어 물어보면 그 길흉이 마치 메아리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신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 하니, 대감이 서거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의 맑은 넋과 정령이 어두워지지 않고 이 땅의 백성을 굽어살피고 있음이 참으로 놀랍고도 경건할 따름이었다. 기둥에 적힌 기이한 구절들은 지난날 고을 수령이었던 장행간이 쓴 명문이었다.

3. 천선호의 재상 후손

천선호 역참은 도성 서쪽으로 십 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데, 실제로는 그저 커다란 저수지에 불과하다. 이 호숫가 주변에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길 신선의 도를 깨달아 허물을 벗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서만이라는 인물의 옛터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호수 이름도 천선호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사당의 신령은 서왕이라 불리니, 이는 아마도 백성들이 신선 서만을 훗날 서왕으로 잘못 오인한 데서 비롯된 듯하다. 사당 뒤편을 가보니 지극히 남루한 옷차림의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의 성씨를 물으니 곽씨라고 하였는데, 알고 보니 송나라 때 재상을 지냈던 곽신구 대감의 직계 후손이었다. 곽대감의 후손이 이렇듯 극심한 가난에 시달려 생계를 유지할 길조차 없어, 지금은 미천한 역참의 마부 우두머리로 일하며 하루하루 입에 풀칠을 하고 있었다. 노인은 내게 가문의 보물인 재상 벼슬을 내릴 당시의 교지와 옛 초상화를 조심스레 꺼내 보여주었다. 나는 경건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초상화 앞에 엎드려 절을 올린 뒤, 내 나그네 배낭에 남은 양식을 털어 그에게 선물로 나누어주었다. 가문이 번성했을 때의 영광이 사라지고 그 후손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처참한 광경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나니, 옛 현인 한유가 노래했던 삼공의 뒤를 이은 자손들이 가난하여 가축 한 마리 없이 굶주리고 다닌다는 시구가 한낱 허황된 말이 아니었음을 뼈저리게 통감할 수 있었다.

4. 육리산의 천책비 고증

육리산에는 예로부터 오래된 석각 비석이 하나 서 있었는데, 그 비문에는 삼국시대 오나라 천책 원년 병신년 겨울 십월 초하루 임인일에 하늘이 보물을 내리니 푸른 돌도장과 상서로운 문양이 새겨져 있어 오나라의 참된 황제가 태어날 징조임을 만천하에 알린다는 서른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내가 당시의 역사적 기록과 역법을 정밀하게 고찰해 보니, 오나라 천책 원년은 서진 무제의 함녕 원년에 해당한다. 그해 칠월 그믐날에 일식이 있었으므로 동월 초하루는 결코 갑신일이 아니요 을유일이 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임인일은 마땅히 보름이 지난 뒤에나 들어서게 되거늘, 어찌 임인일이 초하루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필시 당시 고을의 어리석은 백성들이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어 부귀영화를 얻고자 거짓으로 상서로운 도장과 하늘의 징조를 위조하여 만들면서, 정작 하늘의 해와 달의 운행인 역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여 훗날 학자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된 왜곡된 역사에 불과하다.

5. 유백온의 남룡 지맥설

괄창 출신의 유백온(유기)은 참으로 재주와 예술적 조예가 뛰어나고 시문에도 능통했으며, 특히 천하의 땅 모양새와 바람과 물의 흐름을 읽는 지리풍수설에 독보적인 대가였다. 나는 일찍이 십여 년 전 그가 유학 제수를 지낼 무렵 전당 땅에서 처음 만났다. 그 후 십여 년이 지나 벼슬에서 물러난 유백온을 해염의 횡산 땅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는데, 서로 손을 맞잡고 지나간 정을 나누며 며칠 밤을 함께 묵었다. 유백온이 내게 이르기를, 천하의 모든 거대한 산맥과 지맥은 본래 곤륜산에서 뻗어 나오는 법이라 하였다. 북쪽의 북룡과 중앙의 중룡은 천하의 학자들이 다 알고 있으나, 유독 남쪽으로 흐르는 남룡의 거대한 지맥 한 줄기는 아득한 아미산에서 시작하여 장강을 따라 동쪽으로 뻗어가는데 아무도 그 지맥이 끝맺음을 맺어 결혈을 이룬 자리를 알지 못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 통주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이곳 해염 고을에 당도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 해염의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이 바로 그 장엄하게 달려온 남룡 지맥의 가장 존귀한 끝자락이자 용이 여의주를 품은 명당임을 단번에 깨닫게 되었다고 갈파하였다.

내가 신기하여 그 지리적 징조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 유백온이 답하기를, 천목산이 비록 절강 서쪽의 으뜸가는 진산이지만 그 맹렬한 용의 형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굽이치며 뻗어 내려와, 우측으로는 무수한 봉우리를 거느리고 좌측으로는 거대한 호수들을 거느린 채 마침내 이곳 해염의 장벽과 진나라 황제가 말을 멈추었던 옛 땅에 이르러 비로소 거대한 대미를 징표로 남기고 우뚝 멈추어 섰다고 설명했다. 그리하여 평松의 무수한 산을 거대한 청룡으로 삼고 좌측으로는 도도히 흐르는 장강과 회수, 사수의 거대한 물줄기를 안아 안았으며, 경紹의 무수한 산봉우리를 백호로 삼아 우측으로는 거대한 절강과 조아의 거센 물살을 감싸 안았다. 천하의 모진 물결들이 모두 이 해염 고을을 향해 조아리듯 굽어 들어온 후에야 마침내 동쪽 바다로 흘러가며, 앞쪽으로는 멀리 조선국과 일본국이 거대한 안산이 되어 마주 서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남방 지맥이 낳은 천하에 다시없을 대지임이 분명하다고 예찬했다. 내가 감탄하며 이 웅장한 천하의 지맥이 낳은 명당을 장차 어떤 위대한 성현이 차지하겠느냐고 물으니, 그는 탄식하며 오직 주나라의 성현인 주공이나 공자 같은 대성인이 아니고서는 감당할 수 없겠으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런 인물이 없으니, 천지산천의 거룩한 신령들이 스스로 쓸쓸하게 남겨지는 것을 참아내지 못할까 저어된다고 말하였다.

6. 하늘에 해가 두 개 뜬 변괴

지정 병신년 삼월 해질 무렵에 갑자기 온 하늘이 누런 흙빛으로 어두워지며 마치 거대한 흙모래 먼지 안개가 사방을 뒤덮는 듯한 기이한 변괴가 일어났다. 저잣거리의 백성들이 사방에서 소리를 지르며 비명을 지르기를, 하늘에 해가 두 개가 동시에 떠올랐다고 아우성을 쳤다. 나는 즉시 뜰 한가운데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늙은 눈에 해가 너무 눈부셔 정면으로 쳐다볼 수 없었으나 눈앞이 어질어질하며 하늘에 수많은 태양이 겹쳐 떠 있는 듯한 혼란을 느꼈다. 이윽고 자세히 살펴보니 참으로 거대한 두 개의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서 서로 부딪쳐 뒤엉켰다가 다시 벌어지고, 다시 서로 합쳐지는 기이한 징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는데 그 횟수가 수천수백 번에 달했다.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바라보니 창문 틈새와 벽의 구멍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 그림자마저도 모두 두 개의 동그라미로 쪼개져 흡사 노란 달걀 두 개가 서로 포개져 노는 듯 끊임없이 합쳐지고 벌어졌다. 이는 참으로 내 수십 년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이하고 두려운 하늘의 이변이었다. 황급히 서재로 들어가 천문을 해설한 비서를 펼쳐 점쳐보니, 당대의 명인 이순풍이 이르기를, 하늘 아래 태양은 결코 두 개가 존재할 수 없으니 흙바람이 날리고 햇빛이 어두워져 태양이 빛을 잃는 것은 백성들이 편안히 살지 못하고 참혹한 형벌이 가혹해질 흉조라 하였다. 또한 태양이 제 빛을 잃고 쪼개지는 변괴는 군사들이 일어날 징조이며, 그 나라의 임금은 도덕이 없고 그 나라의 신하들은 나라를 엉망으로 어지럽힐 불길한 징조라고 하였으니, 아아 슬프도다! 어찌 지금의 참혹한 세상이 바로 그 점서가 말하는 난세가 아니란 말인가!

7. 완자 참정과 장사성의 격전

지정 십육년 오월, 장사성의 대군이 남하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며 천하가 두려움에 떨었다. 원나라의 조정 장수인 양완자 참정은 수만 명의 정예 군대를 이끌고 가흥 고을에 군대를 주둔시켰는데 그 군용이 지극히 왕성하고 장엄하였다. 그의 선봉장인 여재는 칠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왕강경에 주둔하며 도적 무리의 통로를 완벽하게 차단하니, 상인들의 발길이 끊기고 강가와 육로의 통행이 지극히 엄숙해졌다. 이에 장사성의 군대는 감히 가흥 고을의 넓은 길로 직진하지 못하고, 평망과 오돈의 좁은 골짜기를 통해 우회하여 직접 무림 땅을 기습하여 짓밟았다. 당시 조정의 재상이었던 달대감은 양완자 대감이 지키는 가흥 고을이 적의 선봉을 막아낼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서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은 채 안일하게 대처하였다.

갑작스럽게 적군이 성문 안으로 물밀듯 들이닥치자 창황히 뛰쳐나가 싸웠으나 결국 대패하여 수많은 장수들을 잃었고, 재상 본인은 간신히 몸뚱이만 살려 도망쳤다. 양완자 대감은 무림성이 함락되었다는 참혹한 패전의 소식을 접하고 크게 한탄하며 자신의 불찰을 깊이 뉘우쳤다. 즉시 묘족과 토관 군사들을 통솔하여 세 갈래 길로 나누어 거세게 진격하게 하였는데, 장수 장영은 대마와 당서로 보내고, 장수 동왕은 협석과 장안으로 보냈으며, 본인은 직접 유진과 주월을 거느리고 해염과 황반의 험난한 길을 통해 해일처럼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선봉장 여재와 여승은 남아서 가흥성을 굳건히 지키게 했다. 장사성의 도적 무리들은 양완자 대감의 군사들이 삼면에서 파도처럼 밀려들자 갈팡질팡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고, 결국 고정산에서 첫 패배를 당하고 세촌에서 재차 참패하였으며, 협성항의 삼차 격전에서 완전히 박살이 나 붕괴되었다. 장사성의 수군은 덕청으로 달아나고 육군은 해염의 갯벌을 기어 도망쳤다.

당시 양대감이 우리 해염을 지나갈 무렵, 나와 곽대감이 그의 군대를 찾아가 참배하고 건의하기를, 적들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해 이 목구멍 같은 요충지에 정예 병력 삼천 명만 남겨 매복시킨다면 적들을 몰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그러나 양대감은 소리치며 장담하기를, 이번 출정에서 도적 무리들은 이미 내 품 안의 쥐떼와 같거늘 어찌 살아서 도망치는 놈이 있겠느냐고 호통을 치며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그의 자만 때문에 도적의 장수들은 포위망을 뚫고 무사히 달아났으니, 참으로 애석한 노릇이었다. 더욱이 승리한 양대감의 군사들은 승리에 도취하여 우리 해염 백성들의 가재도구와 재물을 거칠게 노략질하였고, 명문가의 부녀자들과 어린 규수들을 강제로 납치하여 군막에 가두고 며칠 밤낮을 능욕한 후에야 겨우 돌려보냈다.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기색이 있으면 즉시 도적과 내통했다는 죄목을 뒤집어씌워 군사를 풀어 목을 베고 집안을 풍비박산 냈으니, 그 군대의 포악함이 도적 무리보다 더 심하여 온 고을 백성들이 눈물로 지옥 같은 삶을 보냈다. 그리하여 저잣거리 백성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장사성의 칼날에 한 번에 죽을지언정 포악한 양완자의 은혜는 단연코 사절하겠다는 비참한 요언이 널리 퍼졌다. 내 친구 예정이 말하기를, 저 미개한 묘족 군사들은 예로부터 왕의 도덕적 교화를 받지 못하여 그 성품이 들짐승과 같으니 단연코 나라의 군대로 쓰면 안 되며, 훗날 반드시 나라에 거대한 화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는데, 오늘날 이 참혹한 꼬락서니를 마주하고 나니 그의 혜안이 참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신묘한 예언이었음을 깊이 실감하노라.

8. 덕장사 진제 스님의 몽둥이 격퇴

덕장사라는 조용한 사찰은 현의 북쪽으로 오십 리쯤 떨어진 저잣거리 근처에 있는데, 비록 저잣거리와 가까우나 사찰 안은 지극히 고요하고 아늑하여 나그네가 머물며 사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옛날 원나라 초기에 진제라는 이름의 기이한 승려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성품은 겉보기에 어리석고 둔해 보였으나 불가의 엄격한 계율을 철저히 지키며 평생 동안 사찰의 나무를 베고 물을 긷는 힘겨운 부역만을 묵묵히 담당하였다. 당시에 포악하고 탐욕스럽기로 소문난 몽골의 국사 양련진가가 이 절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그는 겉으로는 옛 무덤들을 발굴하여 보물을 찾겠다고 장담하였으나 실제로는 무덤 속에 묻힌 유물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명문가였던 육대감의 아름다운 외딸과 주대감의 부인이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수은으로 방부 처리되어 묻혔다는 소문을 듣고, 무덤을 파헤쳐 여인들의 시신을 꺼내어 음탕하고 더러운 짓을 벌이려는 흉악한 탐욕을 품고 있었다.

양련진가가 군사들에게 무덤을 파헤치라는 잔인한 명령을 내리자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진제 스님은 온 얼굴에 붉은 분노를 띠며 주먹을 쥐었다. 다른 사찰의 승려들은 스님의 어리석고 강직한 성품이 자칫 권력자의 분노를 사서 사찰 전체에 피바람이 불까 두려워하여, 골방으로 그를 불러 손을 잡고 조용히 타일렀다. 마침내 양련진가가 깊은 밤 다섯 번의 북소리가 울릴 무렵 가마를 타고 부하들을 거느린 채 무덤을 향해 출발하려 하자, 진제 스님이 홀연히 사당 법당으로 달려 들어가 천신 위타가 들고 있던 단단한 나무 몽둥이를 번쩍 치켜들고 호랑이처럼 포효하며 소리치며 달려 나갔다. 국사가 대노하여 군사들에게 저 미친 중의 목을 치라고 명령하였으나, 진제 스님은 수백 명의 철갑 군사들 한가운데로 홀로 뛰어들어 몽둥이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군사들이 창을 찌르고 칼을 휘둘렀으나 스님의 몸놀림이 어찌나 기이하고 빠른지 허공을 날아다니며 덮쳐오는데, 상처를 입은 군사들이 백여 명에 달했고 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진 놈들이 사방에 나뒹굴었다. 사람들은 스님이 철갑 대군 한가운데서 마치 굶주린 매가 들쥐를 낚아채듯, 혹은 성난 호랑이가 양떼를 덮치듯 수십 장 높이를 날아오르며 군사들을 박살 내는 기이한 신통력을 목격했다. 순식간에 군사들이 들고 있던 횃불들이 모두 바람에 꺾여 꺼져버렸고 그들이 들고 온 삽과 괭이들은 밀가루처럼 부서져 나갔다. 양련진가는 혼비백산하여 이는 참으로 불가의 수호신인 위타 천신이 육신을 입고 강림하여 자신을 징벌하는 것이라 믿고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결국 무덤을 파헤치려던 흉악한 계획을 즉시 포기하고 가마를 돌려 강가로 도망쳐 배를 타고 밤안개 속으로 비참하게 달아났으며, 감히 사찰이나 그 기이한 승려를 처벌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로부터 두 해가 지난 뒤, 진제 스님은 홀연히 바랑을 메고 아미산으로 성지순례를 떠난 후 영영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이하고 위대한 신선 승려의 자취로다.

9. 현령 황랑중의 백성을 위한 사당

해염 고을의 관아 앞마당에는 오래전부터 황랑중의 사당이라는 작은 제단이 하나 모셔져 있었다. 고을에 전해 내려오길 아주 먼 옛날에 이 고을에 부임하여 오직 백성만을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어진 행정을 펼쳤던 현명한 수령이 서거하자, 백성들이 그의 은혜를 눈물로 잊지 못해 이곳에 사당을 짓고 대대로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내가 옛 문헌과 비석들을 상세히 뒤지며 고찰해 보았으나, 옛날 송나라 소흥 연간에 벼슬을 지냈던 황昱 대감인지, 혹은 건도 연간에 고을을 다스렸던 황綸 대감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이 사당은 지난날의 명상 하대감이 중건했던 기록이 있는데 하대감의 시절은 두 황대감의 시절보다 훨씬 앞선 시기였으니, 참으로 이 황공이 도대체 어느 시대의 인물이며 그 정확한 이름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당시 사당에 걸려 있던 오래된 중건 비문에는 이르기를, 황공이 도대체 어느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며 그 이름이 무엇이고 고향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만 이 고을의 머리가 하얗게 센 늙은 백성들이 대대로 전하기를 그 옛날 우리 고을에 부임하여 오직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고 배고픔을 달래주는 아름다운 선정과 사랑을 베풀어 백성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참된 어버이로 남았으니, 나라가 바뀌고 백성이 바뀌어도 그를 기리는 제사가 끊이지 않은 지가 이미 수백 년에 달했다고 적혀 있었다.

세월이 흘러 사당의 지붕이 썩어 허물어지자 고을의 가난한 백성들이 다시금 황공의 신주를 품에 안고 관아 앞에 모여 울부짖으며, 제발 이 어진 옛 수령의 사당을 깨끗하게 새로 지어 자신들이 대대로 제사를 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내게 간곡히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깊은 탄식에 젖었다. 대저 사람이 살아가며 제 부모나 조상보다 친밀한 존재가 없거늘, 조상의 신주도 세월이 흘러 친분이 다하면 사당을 허물고 제사를 거두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이 황공은 아주 먼 전조의 벼슬꾼에 불과하며 이미 그와 백성들 사이의 세월이 너무나 아득하여 그가 베풀었던 법과 혜택이 지금 살아 숨 쉬는 이 백성들에게 단 한 터럭도 미치지 못하거늘, 어찌하여 이 가난한 백성들은 수백 년 세월을 뛰어넘어 그 어진 이름만을 잡고 이토록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그를 그리워한단 말인가! 내 깨달은 바가 있으니, 백성들이 이 아득한 옛 관리를 잊지 못하고 제사하는 까닭은 실상 옛 사람을 기리는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요, 지금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들을 향해 뼈아픈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다! 즉, 당신들도 이 옛 수령처럼 백성을 하늘같이 섬기고 눈물을 닦아준다면 천백 세가 흘러도 백성들은 결코 당신의 이름을 잊지 않고 가슴속 깊이 모실 것이요, 반대로 백성을 쥐어짜고 갈취한다면 당신이 죽는 날 백성들은 침을 뱉고 당신의 이름을 역사 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릴 것이라는 백성들의 위대하고 준엄한 외침인 것이다! 나는 백성들의 숭고한 뜻에 깊이 감복하여 기꺼이 내 재물을 보태어 사당을 우뚝 솟게 새로 지어 올렸고, 백성들이 대대로 황공의 어진 사랑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내 어찌 훗날 백성들에게 이런 사랑을 받기를 감히 기대하겠는가마는, 이 비문의 참된 뜻이야말로 장차 백성을 다스리는 나라의 모든 목민관들이 뼈에 새겨야 할 거울이기에 여기 조심스레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노라.

10. 조자고의 고결한 절개와 조맹부의 부끄러움

조자고(조맹견) 대감은 옛 송나라의 황실 종친이었다. 원나라의 대군이 남하하여 강산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나라가 망하자, 그는 새 조정이 내리는 부귀영화와 높은 벼슬자리를 단호하게 걷어차고 우리 해염 고을의 광천진이라는 한적한 물가에 은거하였다. 그는 매일 자그마한 낚싯배 한 척에 거문고 한 장과 해묵은 역사책 몇 권, 그리고 막걸리 항아리 하나만을 싣고 갈대 그늘과 물새 우는 모래톱에 배를 맸다. 저녁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아침 이슬이 서늘하게 맺히는 밝은 달을 향해 시를 짓는 일로 평생의 소일을 삼았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한 고을 수령梅대감이 대감의 높은 명성을 듣고서, 온갖 화려한 관복을 차려입고 가마를 탄 채 강가로 달려와 대감의 조그만 낚싯배 앞에 머리를 조아려 뵙기를 청했다. 그러나 대감은 수령이 당도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는, 즉시 낚싯줄을 거두고 노를 힘차게 저어 맑은 물결 저편으로 유유히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수령은 쓸쓸히 빈 강가에 우두머리처럼 우뚝 서서 부하들에게 탄식하기를, 옛 현인이 이르기를 훌륭한 군자의 고결한 이름은 온 천하에 가득하나 정작 그 고결한 몸뚱이는 세속의 더러운 눈으로 결코 우러러볼 수 없다고 하였는데, 오늘날 조대감의 청초한 모습을 대하고 나니 그 시구가 참으로 사실임을 알겠다고 한탄하며 돌아갔다.

하루는 대감의 친척 동생이자 당대 최고의 명필로 이름을 날리던 조맹부(조자앙)가 벼슬길에 올라 붉은 비단 관복을 휘날리며 대감을 찾아왔다. 조맹부는 송나라의 종친이면서도 원나라 황제의 부름에 응하여 높은 벼슬을 지내고 있었는데, 형님의 고결한 절개를 사모하여 아득한 물길을 건너와 사당 대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조대감은 사방의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그고 단 한 발자국도 문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대감의 부인이 뒤뜰로 들어가 눈물로 권하기를, 먼 길을 찾아온 골육지친이요 한 피를 나눈 동생이거늘 어찌 손 한 번 잡지 않고 매정하게 돌려보내려 하느냐고 간곡히 애원하였다. 대감은 마지못해 문을 열어 그를 받아들였으나 정작 집안의 사랑방이나 마루에는 들이지 않고, 머슴들이 드나드는 뒷문으로 들어오게 하여 차가운 바닥에 앉혔다. 그리고 서로 마주 앉아서도 세상의 학문이나 인생의 도리는 단 한 마디도 묻지 않고, 오직 냉담한 목소리로 네가 살던 고향의 산천과 호수가 요즈음도 여전히 맑고 푸르더냐고 짤막하게 물었다. 조맹부가 부끄러움에 땀을 흘리며 여전히 푸르다고 조심스레 대답하자, 대감은 불호령을 내리며, 네가 나라를 팔아 적의 벼슬을 받아 안고서 어찌 감히 조상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산천이 여전히 푸르다고 입을 놀리느냐고 호통을 치며 즉시 쫓아냈다. 조맹부는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숙인 채 비참하게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조맹부가 대문을 벗어나자마자 대감은 즉시 마당쇠를 불러 조맹부가 앉아 있던 돗자리와 짚방석을 마당으로 끌어내어 맑은 우물물로 수십 번 씻어내게 하였으니, 이는 조맹부가 묻혀온 세속 조정의 더러운 벼슬 냄새가 자신의 깨끗한 뜨락에 한 터럭이라도 남아 있을까 극도로 혐오한 고결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내 비록 태어난 것이 늦어 대감의 생전 모습을 직접 뵙지는 못했으나, 지금 대감이 은거하던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기대어 살면서 가끔 저물어가는 바다를 향해 배를 띄우고 높은 절개를 우러러 노래하노라. 한편 조맹부는 비록 벼슬길에 올라 종친들의 비웃음을 샀으나 그 성품이 지극히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시문과 서예, 그림의 세 가지 예술에 독보적인 경지를 이루어 당대 최고의 일류 지식인이었으니, 어찌 그 인생의 공과 실을 단 한 가지 잣대로만 재단할 수 있으리오.

11. 세무서 창경관의 혹세무민

우리 해염 고을의 세무 관아는 안인교라는 다리에서 서쪽으로 열다섯 걸음쯤 떨어진 곳에 우뚝 서 있는데, 이곳은 본래 송나라 때의 어진 재상이었던 곽삼익 대감이 손님들을 맞아 맑은 차를 달이고 거문고를 타며 드높은 학문과 도덕을 논하던 창경관이라는 아름다운 서재의 옛터였다. 나는 세무 관아 앞을 지나갈 때마다 가슴을 치며 깊은 탄식에 젖곤 한다. 아아 슬프도다! 옛날에 천하의 고결한 선비들이 모여 맑은 풍류를 노래하고 도의를 기리던 이 숭고한 배움의 배움터가, 오늘날에는 백성들의 피와 땀을 쥐어짜며 사방에서 시끄러운 고함 소리와 억울한 울음소리가 낭자한 세무의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으니, 전과 오늘의 고상함과 더러움의 차이가 어찌 이토록 하늘과 땅 차이란 말인가! 최근 나라 곳곳에서 도적들이 떼를 지어 일어나고 사방에서 피비린내 나는 군사들이 출몰하자, 조정과 고을에서는 군비를 조달한다는 핑계로 백성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한계도 없이 가혹하게 쥐어짜고 있었다. 저잣거리의 백성들은 물건 하나를 팔아도 가혹한 세금을 물리니 생계를 유지할 길조차 없어 탄식으로 밤을 지샜다.

일찍이 조정의 어진 신하였던 정문헌 대감이 임금께 뼈아픈 상소를 올리기를, 남방의 소금과 술, 식초 등에 부과하는 세금이 나라 초기에 비해 이미 수십 배 이상 올랐거늘, 탐욕스러운 지방 관리들이 제 공적을 쌓아 벼슬을 올리고 윗사람에게 아부하기 위해 허위로 세금 장부를 부풀려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고 있다고 준엄하게 지적했다. 이에 감복한 성군 인종 황제께서 조서를 내려, 모든 세금은 오직 백성들의 실상에 맞추어 정직하고 온화하게 거두고 부풀려진 세금은 영구히 蠲減(감면)하라는 준엄한 성지를 내리셨다. 그러나 오늘날 백성을 살리는 황제의 숭고한 뜻과 성지는 오직 세무 관아의 차가운 벽면에 빛바랜 종이조각으로 걸려 있을 뿐이요, 탐관오리들의 혹독한 채찍질은 여전히 백성들의 등허리를 찢고 있으니 참으로 난세 중의 난세로다.

12. 총관 공사태와 수량 스님의 대은기

장사성의 대군이 들이닥쳐 평강성이 피비린내 나는 불길 속에 함락되었을 때, 그곳의 수령이었던 총관 공사태 대감은 가문의 소중한 도장과 교지를 품에 안고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였다. 그는 세상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성씨를 단목씨로 바꾸고 낡은 베옷을 입은 채 우리 해염 고을의 고요한 자성사에 깊이 은거하였다. 대감은 사찰의 주지이자 덕 높은 승려인 수량 스님과 매일 밤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수량 스님은 평생 동안 불가의 깊은 진리를 깨닫기 위해 강과 바다를 건너 천하를 만행하였던 고승이었는데, 동정호의 맑은 물결을 바라보고 웅장한 천목산의 봉우리에 올라 당대 최고의 선지식이었던 중봉대사에게 법을 이어받아 참된 도를 증득한 인물이었다. 스님은 삼십 년 만행을 마치고 마침내 이 자성사로 돌아와 자신이 참선하는 방의 문 위에 대은이라는 맑은 글귀를 적어 붙였다.

공사태 대감은 스님의 드높은 인품과 깊은 평온함에 깊이 감동하여, 참된 은거의 위대한 가치를 예찬하는 명문인 《대은기》를 지어 스님께 헌정하였다. 대감은 글에서 이르기를, 참되게 은거하는 자는 깊은 산속의 동굴로 숨어드는 것이 아니요, 시끄러운 저잣거리 한가운데서도 제 마음속에 거룩한 우주를 품고 평온을 유지하는 자라 하였다. 이 아름답고 숭고한 문장은 훗날 나라의 역사책인 예부집에 고스란히 실려 천하 학자들의 심금을 울렸으니, 어찌 전란 속에서도 빛나는 위대한 우정과 참된 도의 자취가 아니리오.

13. 벗 양우직의 명문가 내력과 죽음

내 평생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도반인 양우직(양원탄)은 옛 송나라 때 천하를 호령하던 명재상이자 대문장가였던 양억 대감의 직계 후손이었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무공을 세워 나라를 구한 명장들을 무수히 배출하였는데, 그의 증조부와 조부는 모두 송나라의 고위 무관을 지냈고 원나라에 귀부한 뒤에도 소금과 바다 무역을 관장하는 높은 벼슬을 지내며 가문을 크게 일으켰다. 양우직은 젊어서부터 기개가 지극히 호탕하고 다재다능하였으며, 학문을 사랑하여 밤새 책을 읽어도 지칠 줄 모르는 맑은 인물이었다. 그는 고향 해염에서 조상들이 물려준 위대한 가업과 덕성을 훌륭하게 계승하여 온 고을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당대의 유력한 명문가였던 한대감은 그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보고 사랑하는 외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어 가문의 인연을 맺었다. 양우직은 상饒와 상주 등 여러 고을의 수령으로 부임하여 오직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고을을 번성케 하는 위대한 치적을 무수히 남겼다.

바야흐로 가문의 높은 이름과 조상의 명예를 다시 한번 온 천하에 드날리려 하던 찰나, 매정한 하늘은 그에게 긴 수명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정 정유년 갑작스러운 몹쓸 병에 걸려 쉰다섯이라는 너무나 이른 나이에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홀로 남은 그의 부인과 어린 상주들은 가슴을 치며 곡소리로 해염 바다를 흔들었다. 나는 내 사돈이자 가장 친한 친우였던 심중실을 잃은 슬픔도 채 가시기 전에, 유일하게 마음을 기대고 살아가던 평생의 벗 양우직마저 차가운 흙 속으로 떠나보내고 나니, 내 어찌 세상의 매정함과 내 인생의 참혹한 외로움을 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벗은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 영원히 떠나갔으나, 내 살아 숨 쉬는 동안 그의 숭고한 조상들의 위대한 행적과 그가 평생 베풀었던 거룩한 업적들을 일일이 정밀하게 기록하여 후세의 명인들에게 보임으로써, 나의 소중한 벗 양우직의 고결한 이름이 역사 속에서 영원히 불멸하도록 하겠노라.

14. 삼청에서의 화공 대승과 군대의 횡포

정유년 팔월, 장사성의 수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수군 군대가 해일처럼 몰려와 가흥 고을을 포위 공격하자 온 나라의 파발마가 어지러이 날고 천하가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였다. 우리 해염 고을에서도 수령과 장수들 이하 모든 젊은 백성들이 무기를 들고 북쪽의 반라와 신풍 벌판으로 달려가 목숨을 걸고 매복하였다. 성문은 수십 일 동안 굳게 닫혔고 성안의 곡식 값은 금값처럼 솟구쳤으며, 땔감이 끊긴 가난한 백성들은 추위를 이기지 못해 제 집안의 대들보와 기둥, 심지어 조상들의 신주를 올려두었던 귀한 탁자까지 도끼로 쪼개어 불을 지피며 비참하게 버텼다. 당시 성안을 지키던 양완자 대감은 적들을 성안으로 깊숙이 유인하기 위해 빈 배 수십 척을 미끼로 띄워 강가에 세워두었다. 장사성의 도적 수군들은 아군의 유인책에 걸려 배들을 촘촘히 엮은 채 강물을 타고 내려왔는데 그 기세를 자랑하듯 돛대들이 하늘을 뒤덮었다. 적의 함선들이 삼청이라는 좁은 물목에 이르렀을 때 마침 도도한 남풍이 채찍처럼 사납게 불어오기 시작했다.

강가에 매복해 있던 아군의 군사들이 미리 준비해 둔 마른 갈대 벼락 묶음에 일시에 불을 붙여 바람을 타고 적선들을 향해 던졌다. 세찬 바람을 만난 불길은 거대한 용처럼 뿜어져 나와 적의 함선들을 통째로 집어삼켰고, 도도히 타오르는 불길의 연기는 강물을 따라 사십 리 밖까지 붉게 타올랐다. 수많은 도적들이 불에 타 죽고 물에 빠져 죽어 강물이 온통 붉은 피로 물들었다. 살아남은 도적들은 배를 버리고 뭍으로 기어 올라와 도망치려 했으나, 동과연에서 대기하고 있던 양대감의 철갑 대군이 덮쳐와 일시에 몰살시키니 벤 목가 일만 칠천 급에 달했고 사로잡은 포로만도 수천 명에 이르렀다. 적의 총사령관인 장사신은 겨우 목숨만 살려 빈 배를 타고 밤안개 속으로 비참하게 달아났다. 그러나 대승을 거둔 아군의 군사들은 승리를 축하한다는 미명하에 해염 고을로 몰려와 백성들의 은금 보화를 닥치는 대로 약탈하였고, 길 가던 여인들과 명문가의 고결한 부녀자들을 짐승처럼 끌고 가 며칠 밤낮을 능욕한 후에야 겨우 돌려보냈다. 조금이라도 억울함을 호소하면 가차 없이 칼로 베어 죽였으니, 백성들은 차라리 장사성의 적군에게 칼을 맞아 죽을지언정 포악한 양완자의 은혜는 단연코 거부하겠다는 참혹한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아군 장수들의 도덕적 타락과 포악함이 이토록 극에 달했으니, 어찌 하늘이 이 나라를 버리지 않겠는가!

15. 무림성 부역의 비통함과 설전

장사성이 마침내 원나라 조정에 귀부하여 태위와 평장이라는 과분한 벼슬자리를 받아 안은 후, 그는 자신의 기세를 과시하기 위해 십구년 가을 무림 땅에 거대한 성벽을 축조하겠다는 웅장한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평송과 가호 등 네 고을의 무고한 백성들과 관리들을 강제로 징용하여 혹독한 토목공사에 동원하였다. 우리 해염 고을 한 곳에서만 무려 일만 이천 명에 달하는 가난한 젊은이들이 강제로 징용되어 세 차례로 나뉘어 멀리 부역을 떠났다. 백성들은 각자 제 먹을 양식을 짊어진 채 머나먼 길을 걸어가 거대한 돌덩이를 짊어지고 흙을 날랐다. 감독하는 간신 관리들은 가죽 채찍을 휘두르며 백성들의 등허리를 가차 없이 후려쳤고, 채찍 소리와 비명 소리가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으며 고된 노동과 굶주림에 지쳐 죽어 나간 백성들의 시신이 산처럼 쌓여 사방에 나뒹굴었다. 마침내 그해 겨울에 이르러서야 엄청난 비용과 수많은 인명을 제물로 바친 뒤에야 비로소 거대한 무림성벽이 완공되었다.

그러나 뻔뻔스럽기로 소문난 장사성의 선전 비문에는 이르기를, 위대한 태위 대감께서 백성들을 사랑하여 이토록 훌륭한 성벽을 지어 백성들이 평화롭게 잠들 수 있게 하였으니 백성들의 탄식 소리가 모두 기쁜 노랫소리로 바뀌었다고 거짓으로 가득 찬 문장들을 새겨 넣었다. 참으로 하늘을 가리고 백성을 기만하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이 공사를 감독하던 어진 관리 무사공은 장사성의 군대에 대항하여 불화공으로 큰 승리를 거둔 경력이 있어, 장사성의 아우 장사신은 기회를 틈타 무사공을 부역의 현장에서 온갖 수모를 주어 죽이려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무사공은 부역의 현장에서도 손수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백성들보다 앞장서 일하며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니, 백성들의 마음이 모두 그에게 쏠려 감히 장사신 일당이 그를 건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하루는 장사신이 공사 현장을 순찰하다가 날이 어두워져 저녁노을이 붉게 타오르는데도 여전히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 무사공의 백성들을 바라보고 짐짓 거만하게 묻기를, 해가 지면 쉬는 것이 하늘의 이치이거늘 너는 어찌하여 백성들을 이토록 혹독하게 쥐어짜고 있느냐고 비아냥거렸다. 무사공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눈을 부릅뜬 채 답하기를, 우리 평장 대감께서는 나라의 거룩한 법을 받들어 온 백성을 지키고자 날이 저물어도 손에서 도끼를 놓지 않고 일하시거늘, 내 어찌 미천한 몸뚱이로 게으름을 피우며 하늘의 명을 저버리겠느냐고 당당하게 들이받았다. 이에 장사신이 당황하여 네 주둥이가 참으로 송곳 같구나 하고 칼자루를 만지작거리며 위협하자, 무사공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만약 지난날 삼청 강가에서 우리가 남풍을 타고 갈대에 불을 붙여 당신들의 함선을 사십 리나 불태웠을 때의 매서운 기세를 기억하신다면 오늘의 내 송곳 같은 주둥이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당당하게 쏘아붙였다. 장사신은 그의 거룩한 기개에 완전히 압도되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쓸쓸히 가마를 타고 돌아갔으니, 참으로 난세 속에서도 빛나는 위대한 애국 의인의 기상이로다.

16. 명궁 범렴경의 소금 밀매 평정

우리 해염 고을은 바다와 맞닿아 있어 천하의 귀한 소금이 무수히 생산되는 나라의 가장 요긴한 경제적 중심지였다. 그러나 전란이 일어나 행정이 마비되자 무법자들과 칼잡이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사납게 칼을 휘두르고 낚싯배를 타고 다니며 불법으로 소금을 밀매하여 거대한 재물을 갈취하였다. 고을의 관리들과 철갑 군사들조차 그들의 사나운 칼날이 두려워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골방에 숨어 지냈다. 지정 정유년, 온화한 성품의 유학자이자 뛰어난 무관인 범렴경 대감이 소금을 단속하는 순검으로 새로 부임하였다. 그는 평소에는 지극히 온화하고 겸손한 선비의 풍모를 지녔으나 활쏘기 실력에 있어서는 가히 천하의 독보적인 명궁이었다. 날아가는 새나 기어가는 들쥐도 그의 활시위 소리 한 번에 어김없이 고꾸라졌으며, 심지어 갯벌 위를 뛰어다니는 조그만 칠게나 망둥어까지 백 발을 쏘면 백 발 모두 꿰뚫는 신묘한 경지에 이르렀다. 하루는 깊은 밤 그가 부하들을 시켜 높은 장대 끝에 등불 하나를 매달아 두게 한 뒤,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둠 속에서 삼백 걸음이나 떨어진 곳에서 화살을 쏘아 보였는데, 화살이 등불의 심지를 정확히 스치며 지나가 등불이 한순간에 꺼져버렸으니 보는 이들이 모두 넋을 잃고 감탄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소금 밀매 도적들은 사지가 서늘해져 감히 해염 고을의 바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고 고을의 치안이 하루아침에 태평성대처럼 고요해졌다. 지난날 고을의 현명한 사법관이었던 현대감이 가혹한 세금 감옥에 갇힌 무고한 백성 수백 명을 공평하게 석방하여 온 고을의 칭송을 받았을 때, 고을의 높은 어른들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만약 우리나라의 모든 단속 관리들이 이 범대감처럼 맑고 굳건하며 신묘한 재능을 지녔다면 애초에 백성들이 감옥에 갇히는 억울한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를 칭송해 마지않았다.

17. 초석 대사의 페르시아 종양법 고찰

초석 대사께서는 당대 최고의 고승이자 황실의 두터운 존경을 받던 선지식으로, 황제의 수레를 호위하여 아득한 상도 땅을 방문하며 위대한 우주 시문들을 많이 남기신 분이었다. 내가 일찍이 대사의 시 구절 중에 양의 뼈를 땅에 심으면 봄에 새끼 양이 돋아난다는 신비로운 시구를 읽고 깊은 의문을 품어, 대사께 조용히 여쭙기를, 참으로 세상에 양을 식물처럼 심어 키우는 신비로운 법이 존재하느냐고 물었다. 대사께서 맑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이르기를, 저 아득한 서역의 사막 너머에 있는 페르시아라는 신비로운 나라에서는 참으로 양을 밭에 심어 키우는 법이 존재한다고 답하셨다. 그곳 백성들은 겨울철 양을 도축하여 고기와 가죽을 유용하게 쓴 뒤 남은 단단한 다리뼈들을 초겨울에 단단히 얼어붙은 밭 흙 속에 정성스레 묻어둔다고 했다. 이윽고 봄바람이 따스하게 부는 봄날이 오면 온 고을의 목동들이 피리를 불며 신비로운 축원의 노랫말을 읊조리는데, 며칠 뒤 놀랍게도 그 묻어둔 뼈다귀 사이에서 조그만 새끼 양들이 새싹처럼 땅을 뚫고 솟구쳐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뼈 하나를 심으면 서너 마리의 새끼 양을 얻을 수 있으니 이는 참으로 우주 만물의 신비로운 조화이자 어머니 대자연이 베푸는 경이로운 생명의 탄생이 아닐 수 없으며, 다만 우리 남방 땅에는 없는 기이한 전설이라 사람들이 헛소문으로 여길 뿐이라고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다. 과연 고대 시인 오입부의 시집에서도 노래하기를, 페르시아의 목동들이 양의 다리뼈를 흙 속에 묻어두고 둥근 성벽을 쌓은 채 북을 치며 노래하면 뼈끝에서 푸른 싹이 돋아나며 臍(배꼽) 줄기가 땅에 연결된 채 살아 숨 쉬는 어린 양이 솟구쳐 올라와 풀밭을 뛰어논다고 하였으니, 대사의 자상한 말씀과 일치하여 우주의 무한한 조화에 고개를 숙이게 되노라.

18. 해염주학교의 세 명현

우리 해염 고을의 큰 배움터인 주학교는 도성 안 정업사라는 유서 깊은 사찰의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공자의 사당과 학당 건물들이 지극히 장엄하고 우뚝 솟아 공부하는 선비들의 마음을 맑게 씻어준다. 이 배움터에는 예로부터 고을을 다스렸던 세 분의 위대한 현명한 수령들이 남긴 거룩한 공덕비가 서 서 있었는데, 바로 조맹관 대감과 가희 대감, 그리고 엽언중 대감의 공덕비였다. 이 세 수령은 각자 다스리던 시절은 달랐으나 모두가 백성을 제 몸처럼 사랑하고 학문과 예법을 우주보다 귀하게 여겼던 참된 정치가들이었다. 조대감은 황실의 고결한 후손으로서 해염의 바닷바람을 가라앉히고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과 예법의 아름다움을 정성스레 가르쳐 백성들이 수백 년이 지나도 그의 이름을 눈물로 부르며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가대감은 엄격한 기강을 세우면서도 백성들의 억울함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정하게 풀어주어, 사나운 하급 관리들도 그 앞에서는 늙은 고양이 앞의 쥐새끼처럼 꼼짝 못 하고 율법을 받들게 만들었다. 엽대감은 젊어서부터 온화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배움터를 정성껏 보수하고 가난한 선비들에게 책과 장학금을 넉넉히 주어 고을의 문풍을 크게 일으켰다. 참으로 이 세 어진 목민관들의 위대한 사랑과 헌신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 해염의 푸른 선비들과 맑은 예법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니, 붓을 들어 그들의 아름다운 치적을 여기 기록하여 만대 후세의 영구한 본보기로 삼고자 하노라.

19. 두보 시집의 편찬자 노은의 공과 실

위대한 시성 두보의 시집인 《두少陵集》은 천하의 모든 선비들이 평생을 두고 외우며 인생의 도리를 배우는 보물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시의 선후 순서가 뒤죽박죽 섞여 있어 시인의 사색이 흘러간 궤적과 시를 지은 역사적 현장을 올바로 파악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해염 고을의 위대한 대석학이신 노은 대감께서 평생의 정밀한 연구와 고증을 바쳐, 두보가 젊은 날 용문을 유람할 때부터 늙고 병들어 동정호를 건너 쓸쓸히 서거할 때까지의 모든 시들을 그의 생애 연치와 역사적 사건의 흐름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과학적으로 재배열하여 마침내 불후의 연대기적 시집을 탄생시키셨다. 이 위대한 업적은 후세의 수많은 학자들에게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그의 시의 깊이가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정밀해지고 마침내 신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눈으로 보듯 맑게 보여주었다.

다만 한 가지 애석한 일은 대감께서 남방 해염의 오나라 방언에 지나치게 젖어 있어 시어의 맑은 발음과 음독을 해석함에 다소 사투리 오류를 남기셨고, 다른 시집을 해석하면서 진나라의 돌말이 땀을 흘렸다는 허황된 전설을 지나치게 맹신하여 시의 깊은 은유를 왜곡하거나 오자들을 그대로 남겨두는 등 자그마한 흠집들을 남기셨으니, 참으로 옥의 티라 할 수 있겠으나 그의 위대한 업적의 찬란함은 결코 가릴 수 없는 밤하늘의 북극성과도 같도다.

20. 장문묵공의 칸 앞에서의 꼿꼿함

내 친구 장형의 고결한 조부이신 장선(문묵공) 대감은 옛 세조 쿠빌라이 칸의 지극한 사랑과 총애를 한 몸에 받던 궁중의 대석학이었다. 하루는 세조 황제께서 한겨울의 모진 추위 속에 대감을 따뜻한 비서각으로 불러 나라를 살릴 급박한 개혁안을 물으셨다. 황제는 대감이 얇은 옷을 입고 추위에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가련히 여기시어, 친히 자신이 깔고 앉아 있던 따뜻하고 화려한 밍크 모피 담요를 걷어내어 대감에게 직접 깔고 앉으라 하사하시고 다른 담요를 가져오게 하셨으니, 군신 사이의 지극한 신뢰와 사랑이 가히 하늘 같았다. 대감은 황제의 은혜에 눈물을 흘리며, 나라의 썩은 벼슬아치들을 모두 파면하고 가난한 백성들의 세금을 깎아주며 소금 밀매를 다스려야 한다는 수십 조항의 매서운 개혁 상소문을 올렸다.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시행하라 명하였으나 당대의 세도가이자 간신이었던 상가 일당은 대감의 상소가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침탈하는 매서운 칼날임을 알아채고 대노하였다. 그들은 대관정 회의실에서 고함을 지르며, 도대체 저 시골구석에서 굴러온 미천한 개구리 같은 중놈이 뉘 앞이라고 혀를 놀려 우리의 권세를 빼앗으려 드느냐고 욕설을 퍼부었다. 심지어 어두운 밤 자객들을 길목에 매복시켜 대감을 처참하게 살해하려 음모를 꾸몄다. 다행히 인품이 넓은 조맹부 대감이 이 음모를 미리 알아채고 즉시 자신의 가마에 대감을 태워 몰래 도성 밖으로 탈출시켜 목숨을 구했다. 대감은 이튿날 황제의 조서로 높은 학술 承旨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간신들의 사나운 칼날이 들이닥칠 것을 두려워하여 즉시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깊은 고향 산속으로 은거하여 평생 동안 거문고를 타며 조용히 보냈다. 훗날 황제가 깨달아 간신 상가 일당을 모두 처형하고 대감의 명예를 완전히 회복시켰을 때 대감은 이미 늙고 병들어 다시는 도성으로 돌아오지 못했으니, 당대의 참된 지식인들이 간신들의 포악함에 꺾여 재능을 펼치지 못한 아픔이 참으로 눈물겹도다.

21. 감포 시박사의 갈취와 미래의 우환

우리 해염의 남쪽 항구인 감포의 해외 무역선 관세소(시박사)는 본래 옛 송나라 때는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소소한 소금 세금만을 거두던 조용한 포구였다. 그러나 원나라 건국 초기 조정의 신하들이 막대한 국부를 늘려야 한다고 상소하자, 넓은 바다를 건너오는 이국의 보물 무역선들에게 십오분의 일이라는 세금을 공식적으로 부과하여 관세소를 크게 설치하였다. 그러나 최근 세월이 흘러 행정이 문란해지자 탐욕스러운 관세소의 하급 관리들과 군사들이 떼를 지어 포구에 주둔하며, 먼바다를 건너 목숨을 걸고 찾아온 이국의 무역선이 포구에 닿기만 하면 사방에서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기를, 아아 기쁘도다! 드디어 쌀독과 돈주머니를 가득 채워줄 이국의 노다지가 당도했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다. 그들은 공식 세금인 십분의 일을 넘어선 온갖 허접한 세금 구실을 만들어 이국 상인들의 보물을 사정없이 갈취하고 강탈하였다.

참다못한 성난 이국 상인들이 마침내 품에서 날카로운 칼을 뽑아 관세소 관리들을 향해 돌진하였고 사나운 살상극이 벌어져 관세소 대장 이하 세 명의 관리가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참살당했다. 탐욕스러운 주모자들은 이 피비린내 나는 참극이 조정에 알려져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사건을 깊숙이 은폐하고 쉬쉬하며 숨겼다. 내 가슴을 치며 깊이 경고하노니, 이국의 상인들에게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탐욕을 부려 칼날을 부르고 원한을 쌓는 행태야말로 훗날 저 아득한 바다 너머에서 사나운 이국의 해적들과 대군이 몰려와 우리 해염 고을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 거대한 국가적 재앙의 불씨가 될 것임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명하도다.

22. 겁쟁이 지방관 야선불화의 밀물 소동

우리 고을의 치안과 행정을 책임지는 최고 사령관(달루화치)으로 부임했던 야선불화 대감은 본래 남방의 바다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머나먼 북방의 거대한 사막 출신 몽골인이었다. 지정 삼년 가을 그가 우리 해염에 부임하여 첫 밤을 보낼 무렵, 마침 음력 팔월 대보름을 맞아 한밤중에 거대한 바다의 대밀물 소리가 도성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웅장한 천둥소리 같은 밀물 파도 소리가 밤하늘을 가르며 해염성벽을 두드리자 침실에 누워 있던 대감은 사지가 바르르 떨리며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적들의 대군이 한밤중에 성문을 부수고 쳐들어온 줄로 오인한 그는 즉시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 대문을 두드리며 문지기를 애타게 불렀다. 낮술에 취해 ꯭골아 떨어져 자고 있던 문지기가 비척비척 일어나며 소리치기를, 대감! 거대한 바다의 밀물이 드디어 성안으로 들이닥치나이다 라고 잠꼬대를 했다. 대감은 들이닥친다는 말을 도적들이 이미 성문 안으로 들이닥쳐 우리 목을 베려 한다는 말로 완전히 오인하여, 혼비백산하여 방 안으로 뛰어들어가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움켜잡고 울부짖기를, 내 평생 소원이 이 고을의 어진 사령관이 되어 백성들의 우러러봄을 받고 높은 부인으로 호강시켜 주는 것이었거늘 어찌 첫날밤에 이 축축한 물귀신이 되어 비참하게 죽어야 한단 말인가 하고 아내를 껴안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방 밖에서 순찰을 돌던 철갑 군사들은 대감방 안에서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와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자 깜짝 놀라, 대감이 필시 사나운 자객의 습격을 받았거나 거대한 이변이 일어난 줄 알고 도끼를 들고 달려와 튼튼한 사랑방 문을 사정없이 부수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들이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야선불화 대감 부부와 남녀 머슴들이 온 가재도구를 딛고 천장 대들보 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있었다. 군사들이 자초지종을 묻고는 어이가 없어 뜰마당에 주저앉아 배를 잡고 뒹굴며 크게 웃었으니, 참으로 옛 시인이 노래했던 바다 밀물 소리는 처음 찾아온 이국의 나그네를 가장 무섭게 울린다는 시구가 한낱 거짓이 아님을 증명한 해학적이고도 눈물겨운 소동이로다.

23. 하늘의 눈과 뱀 같은 돼지 창자의 천변

기해년 깊은 가을 구월 그믐날 새벽, 내가 급한 공무가 있어 배를 타고 가화 땅으로 향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마침 새벽별이 차가운 단풍나무 가지 끝에 겨우 걸려 비추는 이른 시각이었는데, 돌연西南 쪽 밤하늘이 수천 장 길이로 쩍 갈라지며 그 틈새로 용광로의 붉은 샘물 같은 찬란하고 거대한 불길이 뿜어져 나와 온 산천초목과 벌판을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었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놀란 시골 고을의 수많은 진돗개들이 일시에 사납게 짖어댔고, 둥지에서 잠자던 수많은 가마우지와 꾀꼬리들이 비명을 지르며 어지러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나는 숨을 죽이고 밤하늘의 갈라진 틈새를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쩍 갈라진 붉은 하늘 틈새 속에서 기이한 영험한 정령들이 용솟음치듯 꿈틀거리며 붉은 쇠물처럼 흘러내리더니 이윽고 한참 뒤에야 조용히 다시 합쳐져 감쪽같이 사라졌다. 배를 젓던 늙은 어부가 내게 무릎을 꿇고 절하며 말하기를, 대감! 이는 참으로 하늘이 백성들의 슬픈 처지를 굽어살피고자 그 거룩한 눈을 크게 뜨신 이적(天開眼)이라 하여 기뻐했다. 그러나 내 가슴을 치며 깊이 탄식하노니, 저 높은 하늘은 지극히 존귀한 존재이거늘 하늘이 찢어지고 상처를 입는 이적은 결코 백성의 축복이 아니요 장차 온 나라가 피비린내 나는 군사들의 칼날에 갈갈이 찢겨 나갈 거대한 재앙의 전조인 것이다.

과연 그해 겨울 십이월, 우리 고을 동쪽의 조씨 성을 가진 가난한 백성이 설날 제사에 쓸 돼지 한 마리를 도축하여 가죽을 벗기고 배를 갈라 허연 창자들을 마당 바닥에 꺼내 놓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죽은 돼지의 창자가 갑자기 살아서 용솟음치더니 사나운 구렁이처럼 갯벌을 향해 쏜살같이 기어가기 시작했다. 주인이 깜짝 놀라 몽둥이를 들고 미친 듯이 뒤쫓았으나 그 기어가는 속도가 날아가는 화살 같아 도저히 잡을 수 없었고, 마침내 창자는 성문을 빠져나가 저 도도히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 물결 속으로 깊숙이 뛰어든 후에야 멈추었다. 이는 참으로 나라의 핵심 요직에 있는 장수들과 신하들이 도덕을 저버리고 적국의 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나라를 통째로 넘겨줄 비극적인 망국의 징조가 아니고 무엇이리오.

24. 신동 박지의의 신통함과 죽음

우리 고을의 평범한 농사꾼 집안에 박지의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지극히 어리석고 둔하여 여덟 살이 되도록 엄마, 아빠라는 단 한 마디 말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벙어리 신세였다. 하루는 그가 마당가에서 흙장난을 하다가 홀연히 고개를 들어 부엌에서 일하던 어머니를 향해 맑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기를, 어머니! 지금 돌담 밖에서 이웃집의 거대한 황소 두 마리가 사납게 뿔을 맞대고 싸워 돌담이 무너질 것이니 어서 집 뒤편의 대나무 숲으로 피하소서 라고 외쳤다. 온 집안사람들이 벙어리였던 아이가 갑자기 또렷하게 말을 하자 귀신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기뻐하였다. 과연 아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돌담 너머에서 쾅 하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이웃집 황소들이 들이받아 튼튼한 돌담이 폭포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일이 있은 후 아이는 다시 입을 굳게 다물고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뒤 아이가 갑자기 다시 마당 한가운데 서서 하늘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무수한 붉은 깃발을 든 적국의 군사들이 마침내 온 바다를 뒤덮으며 밀려오고 있다고 나직하게 경고했다. 과연 이튿날 장사성의 거대한 함선 군대가 해일처럼 들이닥쳐 고을을 점령하였다. 이때부터 아이의 신묘한 예언은 온 천하에 퍼져 사방에서 부귀영화를 바라는 수많은 세도가들이 금바리와 은바리를 실은 수레를 타고 몰려와 길흉을 물었고, 그의 집안은 단숨에 고을 최고의 거대한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아이는 지나가던 명문가의 대감이나 어여쁜 처녀를 바라보면 손가락질을 하며 그들이 장차 어떤 비참한 병에 걸려 며칠 뒤에 피를 토하고 죽을 것인지를 차가운 목소리로 정확하게 예언하여, 길에서 그를 마주치는 백성들은 사지가 벌벌 떨리며 제발 자신에게 나쁜 예언을 하지 말아 달라고 땅바닥에 엎드려 눈물로 빌었다.

그의 어머니가 가슴을 치며 아이를 나무라기를, 네 신묘한 입술이 백성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으니 장차 하늘의 벌이 두렵지 않으냐고 울부짖자, 이때부터 아이는 오직 어머니가 허락할 때만 조용히 입을 열어 길흉을 말해 주었다. 세월이 흘러 열아홉 살이 된 아이가 장가를 들어 아름다운 신부와 첫날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가 신부의 따뜻한 품에 안겨 첫날밤을 치르자마자, 갑자기 온몸의 맑은 영기가 안개처럼 빠져나가며 그 자리에서 굳어 피를 토하고 서거하고 말았다. 이는 참으로 우주 만물의 지극히 높은 하늘의 비법을 엿듣고 천기누설을 일삼던 영험한 신동이라 할지라도, 세속의 육체적인 욕망에 눈을 떠 정기를 한 번 쏟아내고 나니 그를 수호하던 영혼들이 일시에 거두어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니 참으로 슬프고도 당연한 자연의 이치로다.

25. 금속사 강승회 진영의 상서로운 불광

금속사라는 유서 깊은 사찰에는 예로부터 위대한 불법을 동방에 처음 전파하셨던 강승회 대선사의 거룩한 초상화(진영)가 소중하게 모셔져 있었다. 지정 계사년 봄, 나는 이 사찰을 참배하여 경건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이듬해 봄, 내가 사랑하는 큰형님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에 잠겨 있을 때, 마음을 달래고자 이 사찰을 다시 찾아와 매일 백성들과 함께禮懺제사를 올렸다. 마침 사찰에 정통한 친구 판택민 대감과 더불어 사찰 서고에 깊숙이 보관되어 있던 당나라 때 선현들이 붓으로 정성스레 필사했던 위대한 대장경 경전 수천 권을 꺼내어 먼지를 털어냈다. 세월의 풍파에 닳아 이미 절반 이상이 흔적도 없이 훼손되었으나 다행스럽게도 화엄경과 법화경, 능엄경 등 위대한 우주의 진리가 적힌 귀한 경전들은 여전히 깨끗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내가 열흘이 넘도록 경전을 翻閱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해질녘에 선사의 초상화 앞에 무릎을 꿇고 마지막 절을 올리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선사의 초상화 양 미간 사이에서 번개 같은 찬란한 백선 한 줄기가 은빛 채찍처럼 뿜어져 나오더니, 온 법당 안을 둥글게 선을 그리며 비추고 올라가 불단 위에 걸려 있던 화려한 연꽃 화개 위를 수십 번 감싸 돌았다. 나는 온몸에 거룩한 소름이 돋아 즉시 커다란 법종을 세차게 울려 온 사찰의 승려들과 백성들을 일시에 법당 앞으로 모이게 하였다. 대중들은 일시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선사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그 찬란한 백선 은빛 서광은 밤이 이슥해져 사방에 어둠이 깔릴 무렵에야 서서히 선사의 미간 속으로 다시收攝되어 사라졌다. 동행했던 친구 판대감이 크게 탄식하며 이 거룩한 상서로움을 목격하고 기문을 짓기를, 선사의 맑은 깨달음의 빛은 서거한 지 천 년이 지나도 불멸하여 이렇듯 중생들의 어리석은 눈동자를 맑게 비추어 주며, 특히 큰 형님을 잃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요대감의 숭고한 효심과 우애가 마침내 하늘의 신령을 감동시켜 이토록 상서로운 불광의 이적을 온 대중에게 몸소 증명해 보여주셨으니 참으로 길이길이 역사에 기록하여 배움의 거울로 삼을 징조로다.

26. 상씨 가문의 뼈아픈 무식과 진회의 초상화

우리 해염 고을의 가장 유서 깊은 명문가인 상씨 가문은 본래 옛 송나라 때 간신 진회와 단호하게 맞서 싸우다 전 가산이 몰수당하고 이 바닷가 구석으로 쫓겨나 정착했던 위대한 애국 충신 상대감의 자랑스러운 자손들이었다. 그 가문의 후손 중에 푸계라 불리는 이가 있어 새 조정에서 높은 벼슬을 지냈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자손들은 대대로 학문을 게을리하여 문장에 지극히 어두웠다. 하루는 푸계의 손자가 나를 찾아와 자랑하기를, 우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위대한 조상 상대감의 숭고한 초상화 한 폭이 있었는데 지난 전란 중에 도적들에게 도난당했다가 최근에 엄청난 재물을 치르고 겨우 저잣거리에서 되찾아 모셔왔으니 한 번 보아달라고 간청하였다. 그가 조심스레 초상화를 펼쳐 보이는데 그림 속 인물은 지극히 나약하고 간사해 보이는 얼굴에 턱수염을 기르고 귀한 밍크 모자를 쓴 영락없는 간신의 얼굴이었다.

더욱이 그림 윗부분에는 그를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는 화려한 시문이 적혀 있기를, 하늘이 이 위대한 재상을 내리시어 임금의 근심을 덜어주고 온 나라를 태평성대로 이끄셨으니 온 나라 백성들이 그의 어진 얼굴을 바라보며 황제의 제국이 영원할 것을 축원하노라 라고 엄숙하게 적혀 있었으며, 그 시문의 끄트머리에는 송나라 소흥 연간에 그의 문하생이었던 루율이 정성스레 찬양하여 올린다고 또렷하게 한글로 적혀 있었다. 내가 그 글을 읽어 내려가다 깜짝 놀라 이마를 치며 깊은 탄식에 젖었다. 대저 이 화려한 찬양 시문은 다름 아닌 송나라를 팔아먹고 충신 악비를 참살했던 천하의 흉악한 간신 진회를 찬양하기 위해 그의 개가 되었던 문하생 루율이 바쳤던 악명 높은 아부의 문장이 아니더냐! 상씨 가문의 조상들은 이 가문의 철천지원수이자 나라의 역적인 진회와 목숨을 걸고 싸우다 몰락했거늘, 정작 그 어리석은 후손들은 제 조상의 역사도 모르고 문장도 제대로 읽지 못해 가문의 원수인 진회의 초상화를 제 위대한 조상의 초상화인 줄로 철석같이 믿고서 사당 한가운데 모셔두고 아침저녁으로 눈물을 흘리며 절을 올리고 향을 피우며 보물처럼 아끼고 있으니, 이 어찌 가슴이 찢어지고 뼈가 아픈 역사적 코미디가 아니란 말인가! 내가 그 역사적 전말을 차근차근 일러주며 그림을 즉시 불태우라 권하였으나, 어리석은 손자는 오히려 얼굴을 붉히며 내 말을 듣지 않고 더욱 초상화를 깊은 금고 속에 감추고珍惜하였다. 아아 슬프도다! 가문의 자손들이 배움을 게을리하여 역사와 학문에 어두워지면 이토록 제 가문의 철천지원수를 제 거룩한 조상으로 오인하여 절을 올리는 극심한 치욕을 겪게 되니, 어찌 후세의 선비들이 학문을 게을리할 수 있으리오.

27. 의인 무사공의 의연한 지조

의로운 관리이자 우리 고을의 자랑인 무사공 대감은 무림성의 혹독한 부역 현장에서 오직 솔선수범의 숭고한 지조로 백성들의 마음을 맑게 씻어주었다. 그는 다른 감독관들이 가죽 채찍을 휘두르며 백성들을 쥐어짤 때, 손수 가장 거친 옷을 입고 직접 무거운 바위를 짊어지며 백성들보다 한 시간 먼저 흙바닥에 누워 일어났고, 밥그릇이 채워질 때도 가장 늦게 수저를 들었다. 이러한 그의 지극한 사랑에 감복한 수만 명의 부역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하늘같이 따랐다. 비열한 세도가 장사신이 무사공을 처벌하기 위해 매일 벼랑 끝의 공사 현장을 뒤지며 시비를 걸었으나 백성들이 사방에서 철갑처럼 무대감을 에워싸고 옹호하니 감히 건드릴 손길조차 내밀지 못했다.

하루는 장사신이 가마를 타고 현장에 나타나 으름장을 놓기를, 해가 이미 서산 너머로 완전히 기울어 밤안개가 피어오르는데 너는 어찌하여 백성들의 삽질을 멈추지 않고 가혹하게 노동을 강요하느냐고 비열하게 시비를 걸었다. 무대감은 이마의 땀을 씻으며 단호히 외치기를, 우리 조정의 위대한 신하들과 성군들께서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한밤중에도 잠들지 못하고 국정을 고찰하시거늘, 내 비록 미천한 말단 관리나 나라의 성벽을 우뚝 세워 도적들의 칼바람을 막는 거룩한 대사에 어찌 밤과 낮의 핑계를 대며 게으름을 피우겠느냐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이에 장대감이 기가 질려 네 송곳 같은 주둥이는 여전히 서슬이 퍼렇구나 하고 가마를 돌려 비참하게 물러갔으니, 참으로 군자의 의로운 기개는 도적들의 시퍼런 칼날 앞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만고의 횃불이로다.

28. 조화를 잃은 편종 소리와 주의 몰락

내가 해염주학교의 사당 벽면에 걸린 오래된 음악 서적들을 읽던 중, 우리 고을의 악장이신 황선생이 지은 명문을 읽게 되었다. 비문에는 예전에 배움터의 아악용 놋쇠 종을 주조할 때 고대 황실의 정교한 놋쇠 음계를 본떠 만들었으므로 그 음률이 지극히 아름답고 맑아 천하의 으뜸가는 조화를 이루었다고 칭송해 두었다. 나는 그 기사를 보고 깊은 흥미를 느껴 내 서재에 소중히 소장하고 있던 옛 송나라 휘종 황제 시절의 진짜 왕실 아악 편종 두 개를 직접 배움터로 가져와 대조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배움터의 편종을 채로 두드렸을 때 울려 퍼지는 음조가 우리 가문의 보물 편종의 소리에 비해 기형적으로 음조가 너무 높고 팽팽하여, 귀를 찢는 듯한 비장하고 부조화한 소리를 내뿜고 있었다.

나는 즉시 채를 내려놓고 가슴 깊이 탄식하며 다른 선비들에게 경고하기를, 음악이란 국가와 고을을 다스리는 백성들의 마음의 표현이거늘, 음조가 비정상적으로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것은 그 나라 백성들의 마음이 극도로 초조하고 억울함에 젖어 있으며 정치가 가혹해져 나라가 곧 멸망할 불길한 징조라고 말했다. 옛날 송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에도 간신 채경이 아첨하기 위해 황제의 손가락 길이보다 훨씬 높게 아악의 음계를 억지로 높여 주조하여 온 궁중에 귀를 찢는 구슬픈 소리가 퍼지게 만들었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정강의 대참변이 일어나 강산이 쑥밭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해염의 편종 소리가 이토록 비장하고 조화를 잃었으니, 장차 포악한 무리들의 시퍼런 칼바람이 불어와 우리 고을이 참혹한 전란 속에 영원히 파괴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슬프게 예견하노라.

29. 관운석의 가락과 해염 잡극의 기원

우리 해염 고을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옛날부터 저잣거리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연극을 연출하는 잡극과 악부의 기예에 지극히 뛰어나 온 나라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아왔다. 내가 그 음악적 원천을 상세히 고찰해 보니, 이 아름다운 노래들의 맑은 가락은 모두澉川의 명문가인 양씨 가문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음악 비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옛날 양씨 가문의 어른이셨던 강혜 대감께서는 성품이 지극히 호탕하고 의기로워 천하의 무수한 예술가들과 교유하셨는데, 특히 서역 위구르 출신의 위대한 천재 시인이자 당대 최고의 예학자인 관운석 선생과 평생의 깊은 의형제를 맺고 음악을 함께 논하셨다. 관운석 선생은 비범한 출신이면서도 세속의 부귀영화를 걷어차고 우리 남방 땅을 유람하며 천하의 맑은 가락과 잡극 시나리오들을 무수히 창작하셨는데, 그의 노래 한 소절이 울려 퍼지면 맑은 구름도 가던 길을 멈추고 온 바다가 고요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강혜 대감은 그의 위대한 음악적 비법을 고스란히 전수받았고, 집안의 수많은 광대들과 선비들에게 거문고와 피리 부는 법을 정교하게 훈련시켰다. 대감께서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대를 이어 당대 최고의 소리꾼들과 교유하며 그 가통을 굳건히 지켰고, 양씨 집안의 머슴들과 머슴들도 노래 소절 하나를 부르면 저잣거리의 명창들을 뺨칠 정도로 기예가 출중했다. 그리하여 온 해염 고을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그 가락을 맑게 배워 오늘날 온 천하가 칭송하는 자랑스러운 해염 잡극의 위대한 예술적 자취를 이룩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이하고 아름다운 예술의 생명력이로다.

30. 낮잠 대결을 벌인 오만한 현승

옛날 우리 해염 고을에 성품이 지극히 오만방자하고 세속의 높은 권세나 양반들을 손톱 밑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기이한 현승 대감이 부임하였다. 하루는 고을의 세도가이자 학덕 높은 대부 어른이 대감을 제 집으로 정중하게 초청하여 마당가에 거창한 연회를 차렸다. 그러나 대감은 약속된 시각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작하여 뜰마당 사랑방에 대자로 누워서는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곯아떨어져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대부 어른이 화려한 의복을 입고 손님을 맞으러 뒤늦게 방 안으로 들어서니 대감이 이미 침을 흘리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대부 어른은 성격이 또한 지극히 고집스럽고 은근한 자존심이 세어 감히 손님을 흔들어 깨우지 못하고, 자존심이 상하여 자신도 대감의 옆자리에 누워서는 코를 골며 똑같이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한참 뒤에 대감이 부스스 눈을 떠보니 주인어른이 제 옆에 누워 천장이 떠나가라 잠을 자고 있었다. 대감 역시 사대부의 오만함이 발동하여 주인을 소리쳐 깨우지 않고, 괘씸하다 하여 다시금 베개를 베고 벽을 향해 누워 두 번째 낮잠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이윽고 저녁노을이 붉게 타오르고 어둠이 사방에 깔려 잔칫상의 막걸리가 다 식을 때까지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잠에서 깨어났으나, 상대방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지기 싫어 또다시 누워 낮잠을 자는 기이한 자존심 대결을 서너 차례 반복하였다. 마침내 해가 서산 너머로 완전히 넘어가고 달이 둥글게 떠오를 무렵 대감이 벌떡 일어나 관복 소매를 털며, 주인어른이 참으로 잠이 많으시도다 하고는 단 한 마디 대화나 인사는커녕 차 한 잔도 마시지 않고 유유히 가마를 타고 제 관아로 가버렸다. 훗날 조자고 대감이 이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일화를 전해 듣고 크게 감탄하여, 참으로 이 두 오만한 인물들이야말로 세속의 위선적인 예법과 쓸데없는 명예욕을 통쾌하게 비웃어 준 참된 자유로운 신선들이라 극찬하며 그림을 그려 책상 옆에 붙여두고 평생의 맑은 거울로 삼았도다.

31. 양유정의 올곧은 문예 심사와 엄격함

당대 최고의 대시인이자 엄격하기로 이름난 양유정(양렴프) 선생이 우리 고을의 강가 사랑방에 머물 때였다. 겨울날 매서운 밤바람이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는데, 온 고을의 내로라하는 시인들과 선비들이 선생의 시집에 제 시 구절 하나를 올려 세상에 이름을 드날리고자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들은 소매 속에 은금보화와 비단 꾸러미를 가득 숨겨와 선생의 책상 위에 올려두며 제발 제 얕은 시를 문집에 실어달라고 애원하고 긴 무릎을 꿇었다. 양렴프 선생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들을 엄숙하게 꾸짖기를, 내 평생 동안 나라의 법률은 간혹 사사로운 정으로 한 번쯤 눈감아 준 적이 있을지언정, 천하 백성들이 대대로 읽어 내려갈 숭고한 문학의 문장만큼은 내 마음이 맑은 눈을 빌려 쓰는 거룩한 성전이거늘 어찌 푼돈 몇 푼에 양심을 팔아 세상을 속이고 후세를 기만하겠느냐고 호통을 쳤다.

선생은 즉시 붓을 들어 번개처럼 시 구절들을 검수하더니, 오직 참된 예술적 기품을 지닌 네 편의 훌륭한 시만을 엄격하게 골라내고 나머지 로비꾼들의 조잡한 시문들은 마당 흙바닥에 사정없이 내팽개쳤다. 그리고 억울하다며 뜰마당에 엎드려 우는 자들을 향해, 참으로 문장의 맑은 도가 땅에 떨어져 개들의 밥그릇처럼 타락했구나 하고 호통을 치며 군사들을 시켜 대문 밖으로 완전히 쫓아내고 빗장을 걸어 잠근 채 촛불을 꺼버렸다. 참으로 돈과 권력 앞에서도 단 한 치의 굽힘 없이 문학의 거룩한 존엄성을 지켜낸 만고의 강직한 대시인의 거룩한 풍모로다.

32. 아버지를 잃은 바다를 증오한 화가 진언렴의 효심

우리 고을의 뛰어난 시인이자 동양화의 거장이었던 진언렴 선생은 기괴한 풍경화와 독보적인 산수화로 온 나라의 칭송을 받던 고결한 선비였다. 그의 아버지는 젊은 날 배를 타고 이국의 바다로 나가 무역을 하던 중 집채만 한 사나운 밀물 폭풍을 만나 차가운 바다 깊숙이 빠져 서거하셨다. 당시 홀로 남은 그의 부인은 가난과 싸우며 오직 남편의 억울한 넋을 기리고자 평생 개가하지 않고 일곱 살 된 어린 진선생을 지극정성으로 가르쳐 당대 최고의 고결한 선비로 키워냈다. 진선생은 평생 동안 바닷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오는 해염성곽 근처에는 단 한 발자국도 다가가지 않았고 바다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극도로 혐오하고 무서워했다. 당대 최고의 동양화 거장이자 그의 평생 지기였던 황공망(자구) 선생이 해마다 한 번씩 그를 찾아와 함께 손을 잡고 바다로 가 거대한 밀물의 장엄함을 구경하자고 억지로 그를 끌고 나갔다.

마침내 수령들의 강요로 간신히 도성의 동쪽 성곽 위로 올라가 도도히 밀려드는 푸른 바다의 거대한 물결을 처음 마주하던 순간이었다. 진선생은 온몸을 바르르 떨며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기를, 저 파랗게 넘실거리는 무정한 바다 물결이야말로 내 사랑하는 아버지를 잔인하게 집어삼킨 평생의 철천지원수이거늘, 내 힘만 있다면 저 전설 속의 기이한 영험한 정위새처럼 만 장의 나무와 큰 돌덩이를 입에 물고 날아가 저 흉악한 바다 구멍을 모조리 메워버려 아버님의 원수를 갚고 싶거늘, 내 어찌 사나운 눈빛으로 저 원수를 바라보며 즐거워하겠느냐고 통곡을 하였다. 황대감은 그의 애절하고 눈물겨운 지극한 효심에 깊이 감동하여 차마 바다를 더 보지 못하고 그의 손을 잡고 숙소로 돌아왔으며, 밤새 눈물로 붓을 놀려 진선생의 위대한 효심을 만대에 기리는 불후의 대작 시문인 《구해부》를 지어 헌정하였으니, 참으로 난세 속에서도 빛나는 위대한 효성의 기적이요 지고한 예술가들의 숭고한 우정이로다.


📖 주요 한자 · 고사성어 풀이

  • 반고복시 (반고복시) — 인위적인 모든 꾸밈과 가식을 걷어내고 태초의 맑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예스러움으로 귀환하여 선한 인간 본성과 대자연의 근본을 다시 찾음을 이르는 거룩한 도덕적 지향입니다.
  • 안불망위 (안불망위) — 세상이 지극히 편안하고 평화로울 때에도 결코 방심하지 않고 장차 닥쳐올 위험과 전란의 불씨를 늘 경계하여, 스스로의 기강과 지조를 단단히 단련하는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 지조정생 (지조정생) — 모진 풍파와 시련 앞에서도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고 험난한 벼랑 끝에서 우뚝 자라나는 대나무처럼, 세속의 유혹에 꺾이지 않는 군자의 굳건한 태도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 신청의원 (신청의원) —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거나 자연을 우러러보며 가슴속 깊은 곳에 맺힌 잡념을 완전히 맑게 씻어내어, 정신과 사색의 아득한 폭이 더없이 넓고 깊어짐을 의미합니다.
  • 내불기기 (내불기기) — 자신의 깊은 내면과 도덕적 양심을 한 치도 속이거나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단 한 점의 거짓도 없이 철저히 정직하고 당당하여 떳떳함을 이르는 유교적 덕목입니다.
  • 천변지이 (천변지이) — 하늘과 땅에서 일어나는 신비로운 이적과 천재지변을 뜻하며, 이를 통하여 군주와 신하들이 스스로의 무덕함을 뼈아프게 참회하고 정치를 경계하라는 대자연의 거룩한 경고입니다.
  • 목민선정 (목민선정) — 백성을 다스리는 고을의 수령이 오직 백성을 친부모처럼 사랑하여 어진 정치를 베풀어 다스리는 것을 뜻하며, 그 은혜는 천백 세가 흘러도 백성의 가슴에 영구히 지워지지 않습니다.
  • 포절挺生 (포절정생) — 푸른 마디와 절개를 마음속 깊이 품은 채 험난한 시련 속에서도 굳건하게 자라남을 의미하여,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홀로 고고한 절개를 지키는 선비정신의 예찬입니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