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요출 자서(自序)
📚 제민요출(齐民要术) · 제0편
자서(自序)
옛날 신농(神農)씨는 보습과 쟁기(耒耜, 뢰사)를 발명하여 온 천하 백성을 이롭게 하였고, 요(堯)임금은 네 아들에게 신중히 명하여 백성들에게 정직한 농사철을 가르쳐 주게 하였으며, 순(舜)임금은 농업의 신인 후직(Houji)을 임명하여 먹을거리 농사짓는 일(食)을 국정의 가장 으뜸가는 급선무(政首)로 삼았습니다. 우(禹)임금은 토지와 전답의 법도를 정비하여 온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렸습니다. 은나라와 주나라의 찬란한 전성기 역사 또한 시와 서로 전해지는 바와 같이, 그 경영의 핵심 요체는 오직 백성을 평안히 살게 하고, 그들을 먼저 부유하게 일구어 준 연후에 참된 도덕을 가르치는 것(富而教之)에 있었습니다.
《관자(管子)》에 이르기를, ‘한 명의 농부가 밭을 갈지 않으면 굶주리는 백성이 생기고, 한 명의 여성이 베를 짜지 않으면 추위에 떠는 백성이 생긴다’ 하였고, ‘창고가 든든하게 가득 차야 비로소 예의와 염치를 알고, 먹고 입을 것이 풍족해야 영예와 치욕의 분별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옛 노인이 공자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사지를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고 오곡의 종류를 명철히 구별하지 못하면서, 대체 누가 당신을 스승이라 부르겠는가?’ 하였습니다. 전해오는 옛 기록에 이르기를, ‘사람의 한평생은 오직 부지런함(勤)에 달렸으니, 매사에 부지런하면 결코 살림이 핍절하지 않다’ 하였습니다. 옛 속담에 이르기를, ‘정직한 노력은 지독한 가난을 이겨내고, 매사를 삼가는 절제는 뜻밖의 재앙을 이겨낸다’ 하였으니, 부지런히 노력하면 결코 가난하지 않을 수 있고 제 처신을 삼가 다스리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전국시대 위나라의 명상 이회(李悝)는 문후를 위하여 토지의 생산력을 끝까지 개발하는 농법(盡地力之教)을 제정하여 나라를 부유하고 강성하게 만들었고, 진나라 효공은 상앙(商鞅)을 등용하여 부지런한 농사와 전쟁의 공로에 큰 포상을 아끼지 않아, 이웃 적국들을 무너뜨리고 마침내 제후들의 우뚝 선 맹주가 되었습니다.
《회남자(淮南子)》에 이르기를, ‘성스러운 어진 이는 제 신분이 비천함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직 위대한 도(道)가 세상에 펼쳐지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며, 자신의 수명의 길고 짧음은 염려하지 않고 오직 무고한 백성들이 곤경에 처해 굶주리는 것을 깊이 걱정한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임금은 홍수를 정평하게 다스리기 위해 제 몸을 성난 물줄기에 던지다시피 했고, 탕임금은 기근을 부르는 지독한 가뭄을 해소하고자 상림의 제단에서 몸소 제물이 되어 하늘에 비를 빌었습니다. 농사의 신 신농씨는 백성을 먹이느라 얼굴이 초췌해졌고, 요임금은 나랏일 걱정에 뼈만 앙상히 말랐으며, 순임금은 밭을 일구느라 얼굴이 까맣게 탔고, 우임금은 물길을 내느라 온몸에 굳은살이 박였습니다. 이를 통해 고찰하건대, 옛 성현들이 백성을 걱정하여 쏟아부은 노고와 눈물이 이토록 절실하고 깊었습니다. 그러므로 저 높은 천자로부터 가장 낮은 서민에 이르기까지, 사지를 부지런히 놀려 일하지 않고 깊이 염려하여 머리 쓰지 않으면서도 국사가 저절로 잘 다스려지고 살림살이가 넉넉하기를 바라는 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내 결코 들은 바가 없습니다. ‘농사꾼이 힘써 밭 갈지 않으면 창고가 풍요롭게 차지 않고, 재상과 장수가 제 몸을 던져 힘쓰지 않으면 나라의 큰 대업이 결코 성취되지 않는다’고 경고한 까닭입니다.
중장자(仲長子)가 이르기를, ‘하늘이 아무리 좋은 기후와 풍요로운 농사철을 내려줄지라도 내가 직접 농사짓지 않으면 한 알의 곡식도 얻을 수 없다. 화창한 봄날이 오고 때맞춰 따뜻한 비가 내릴 때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 것으로 시작하여 마침내 제기에 오곡을 정결히 담아 조상께 올리기까지, 게으르고 나태한 자는 겨우 한 가마의 보잘것없는 수확을 얻고 부지런한 자는 커다란 섬과 수레를 가득 채운다. 하물며 제 손으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오직 밥만 거저 얻어먹으려 하는 기생충 같은 자들을 어찌 입에 담겠는가?’ 하였습니다. 초자(谯子)가 이르기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저녁 늦게 묵을 정도로 부지런히 움직이면 한 소쿠리 가득한 신선한 나물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은 짐승과 달리 몸에 따뜻한 깃털도 털가죽도 없으니 스스로 베를 짜지 않으면 얼어 죽을 것이요, 들짐승처럼 풀을 뜯어 먹고 생수만 마시며 살 수 없으니 스스로 농사짓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내 힘으로 스스로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한나라의 현신 초고(晁錯)가 이르기를, ‘성스러운 임금이 위에 계실 때 백성이 굶주리거나 추위에 떨지 않는 까닭은, 임금이 손수 농사지어 그들을 먹이고 손수 베를 짜서 입히기 때문이 아니라 백성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재물을 일구고 곳간을 채울 수 있는 소중한 제도적 길을 활짝 열어주기 때문이다. 추위가 닥쳤을 때 옷은 찬 바람을 막아줄 수만 있으면 굳이 얇고 화려할 필요가 없고, 배가 고플 때 밥은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만 있으면 굳이 산해진미일 필요가 없다. 극심한 굶주림과 추위가 내 몸에 들이닥치면 염치와 도덕은 더 이상 돌볼 겨를이 없는 법이다. 하루에 단 두 끼를 못 먹으면 굶어 쓰러지고 일 년 내내 따뜻한 옷 한 벌 지어 입지 못하면 얼어 죽는다. 배가 고픈데 먹지 못하고 몸이 추운데 입지 못하면 아무리 인자한 어머니라도 품 안의 자식을 보존하지 못하니, 임금이 어찌 백성의 지지를 받아 나라를 보존할 수 있겠는가? 진주와 옥, 금과 은은 배고파도 씹어 먹을 수 없고 추워도 따뜻하게 입을 수 없다. 그러나 쌀과 밀, 삼베와 비단은 단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되는 백성의 생명 줄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오곡을 소중한 보배로 여기고 화려한 금옥은 돌덩이처럼 하찮게 여긴다’ 하였습니다. 유도(劉陶)가 이르기를, ‘백성은 백 년 동안 화려한 보물 없이 살 수는 있어도 단 하루도 굶주리고는 살 수 없으니, 먹을 것이 세상에서 가장 절실하고 시급하다’ 하였습니다. 조식(陳思王)이 이르기를, ‘추위에 떠는 빈민은 비싼 구슬을 탐내지 않고 오직 거친 털옷을 원하며, 굶주린 사람은 천금을 바라지 않고 오직 든든한 밥 한 끼를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게 여긴다. 천금과 진귀한 구슬이 비록 가장 존귀하지만 밥 한 끼와 거친 옷 한 벌만 못한 까닭은, 처한 상황에 따라 절실하고 급박한 쓰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였으니 참으로 만고의 진리입니다!
위대한 신농씨와 문자를 만든 창힐도 훌륭한 성인이었으나, 세상의 모든 기예에 다 통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한나라 조과(趙過)가 처음으로 소를 이용한 밭갈이(牛耕)와 효율적인 씨뿌리기 기구를 개발하여 원시적인 쟁기와 보습보다 월등한 이익을 선사했고, 채륜(蔡倫)이 지혜를 짜내어 종이를 발명하니 어찌 무거운 삼베나 비단, 대나무 죽간의 번잡함과 비교하겠습니까? 또한 경수창(耿壽昌)의 상평창(常平仓) 곡식 저장 제도와 상홍양(桑弘羊)의 균수법(均输法)은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하고 백성을 돕는 영원불멸의 비책이 되었습니다. 옛 속담에 이르기를, ‘우임금과 탕임금 같은 위대한 지혜가 있어도 농사 현장에서 삼전수전 직접 겪어본 늙은 농부의 경험(嘗更)만 못하다’ 하였습니다. 공자의 제자 번지(樊遲)가 공자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달라 청하자 공자가 답하기를, ‘나는 평생 흙을 일군 늙은 농부만 못하다’ 하였습니다. 이처럼 거룩한 성현의 지혜조차 미처 닿지 못하는 현장의 산지식이 있었거늘, 하물며 얕은 배움에 취한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어떠하겠습니까?
루나라의 가난한 선비였던 의돈(猗頓)은 도주공(범려)이 천하의 대부호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부자가 되는 비결을 물었습니다. 도주공이 이르기를, ‘빨리 부유해지려거든 새끼를 잘 낳는 암컷 가축 다섯 마리(五牸)를 기르게’ 하였습니다. 이에 의돈이 가르침대로 소와 양을 지극 정성으로 기르니 새끼를 낳아 가축이 만 마리에 달했습니다. 구진과 여강 지역은 소로 밭을 갈아 농사짓는 법을 전혀 알지 못해 해마다 굶주리고 핍절했습니다. 이에 임연(任延)과 왕경(王景)이 관리를 맡았을 때 단단한 철제 농기구를 주조하여 공급하고 황무지를 개간하는 법을 가르치니 해마다 풍요로운 경작지가 늘어나 백성들이 넉넉하게 살았습니다. 옛 돈황 사람들은 씨앗을 뿌리는 농기구인 누리(耧犁)를 만들 줄 몰라 사람과 소의 노동력이 극도로 소진되고도 거두는 수확량은 형편없었습니다. 이에 현명한 황보륭(皇甫隆)이 그들에게 누리를 조립하여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니, 힘은 절반 이하로 덜 들고 수확량은 도리어 다섯 배나 늘었습니다. 또한 돈황의 옛 풍습에 여인들이 치마를 지어 입을 때 양의 창자처럼 잘게 주름을 잡아 무려 베 한 필을 다 낭비하곤 하였습니다. 황보륭이 이 사치스럽고 낭비적인 풍습을 엄금하고 단정한 치마로 고치게 하니 백성들이 아낀 옷감이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자충(茨充)이 계양 현령이 되었을 때 백성들이 뽕나무를 심지 않아 누에를 기르고 옷을 지어 입는 이익을 전혀 누리지 못했고, 한겨울에도 변변한 신발이 없어 발이 다 트고 갈라져 피가 질질 흐르곤 하였습니다. 자충이 백성들에게 뽕나무와 꾸지뽕나무를 널리 심게 하여 누에를 기르고 튼튼한 짚신을 짜서 신게 하니, 수년 만에 백성들이 따뜻한 옷과 신발을 얻어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지금 강남 지역이 뽕나무를 기르고 누에를 칠 줄 아는 것은 모두 자충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오원 지역은 토질이 삼베와 모시를 기르기에 아주 적합했으나 백성들이 실을 잣고 옷 지어 입는 법을 몰라, 한겨울에는 지푸라기를 수북이 쌓아두고 그 속에 기어들어가 추위를 피하다가 관리가 찾아오면 마른 풀때기를 몸에 대충 휘감고 나오곤 하였습니다.崔寔(최식)이 그곳에 태수로 부임하여 실 잣는 물레와 직조 기구들을 직접 제작하여 꼼꼼하게 다루는 법을 가르치니 백성들이 처참한 추위의 고통을 면했습니다. 이처럼 백성들에게 생업을 가꾸는 법을 명철하게 교육하고 장려하는 것이 어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황패(黃霸)는 여천을 다스릴 때 파출소와 관아에 닭과 돼지를 기르게 하여 외로운 과부와 홀아비, 가난한 이들을 먹여 돕게 했고, 뽕나무 심기와 나무 가꾸기, 그리고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빈민들에게 국가의 큰 대들보를 베어 관(棺)을 짜주도록 조치했습니다. 공수(龔遂)는 발해를 다스릴 때 백성들에게 농업을 권장하여 집마다 휜 느릅나무 한 그루, 부추 백 다발, 파 쉰 뿌리, 달래 한 이랑을 심고 어미 돼지 두 마리와 닭 다섯 마리를 기르게 했습니다. 또한 칼이나 무기를 차고 다니는 불량한 백성들이 있으면 무기를 팔아 소나 송아지를 사게 유도하며 ‘어찌 칼을 차고 다니는 대신 소를 매달고 다니지 않는가?’ 하고 타이르고 농업을 적극 장려하니 온 군민이 풍족하고 실속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신(召信臣)은 Nanyang을 다스릴 때 백성의 살림을 풍요롭게 함을 으뜸으로 삼아, 날마다 밭둑을 돌아다니며 물줄기를 터주고 수십 군데의 저수지와 관개 수로를 뚫어 농사를 도왔으며, 사치스러운 혼례와 상례를 엄금하고 검소하게 살도록 솔선수범하니 백성들이 그를 부모처럼 존경하여 ‘소부(召父, 자신신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안배(顏斐)는 경조를 다스릴 때 백성들에게 수레 만드는 법을 서로 가르치게 하고, 소가 없는 가난한 집에는 돼지를 기르게 해 비쌀 때 팔아 소를 사도록 유도하여 마침내 집집마다 튼튼한 수레와 큰 황소를 가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왕단(王丹)은 천금의 재산을 지녔으면서도 매년 수확기가 끝나면 고을의 부지런한 농부들을 직접 술과 고기를 싣고 찾아가 밭머리 나무 그늘 아래서 대접하며 격려하고, 게으른 자들은 아예 대접하지 않아 온 마을이 스스로 부끄러워하여 열심히 농사짓게 만드니 고을 전체가 큰 거부가 되었습니다. 두기(杜畿)는 Hedong을 다스릴 때 암소와 암말, 그리고 집안의 가축 기르는 법을 세세한 조항으로 제정해 도우니 집집마다 풍요로워졌습니다. 이 훌륭한 관리들이 어찌 백성을 부질없이 번거롭고 귀찮게 하여 나라의 힘을 낭비하려 했겠습니까?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성정이란, 윗사람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독려하면 스스로 열심히 힘써 농사짓지만, 그냥 방치하고 방종하게 내버려 두면 절로 게으르고 둔해져 쇠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장자가 이르기를, ‘무성한 숲 아래를 터서 곡식 창고를 짓고 물고기가 들끓던 수렁을 메워 기름진 논밭으로 일구는 것, 이것이 바로 백성을 이끄는 수령이 마땅히 마음을 쏟아 해결해야 할 핵심 업무이다. 태공망이 제나라에 봉해져 소금기 도는 황무지 땅에 기름진 가을 곡식을 처음 심어 풍요를 이루었고, 정국거와 백가거의 관개 수로를 완성하니 거친 관중 땅에 영원히 굶주림이 사라졌다. 물줄기를 명철히 관찰하여 땅의 깊은 기틀을 일구어 다스려야 한다’ 하였습니다. 또한 ‘농사짓는 일을 게을리하고 뽕나무와 과수원을 우거지게 기르지 않으며 집안의 가축을 포동포동 기르지 못하는 자는 태형과 채찍으로 엄히 다스려 독려해야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백성들을 현장에서 꼼꼼하게 부지런히 농사짓도록 교육하고 감독하는 훌륭한 방책(督課之方)입니다. 무릇 저 높은 천자도 매년 친히 쟁기를 잡고 밭을 갈며 황후도 뽕잎을 갉아먹는 누에를 치며 솔선수범하거늘, 하물며 밭을 가는 가난한 백성이 가슴에 게으름을 품어서야 되겠습니까?
오나라의 이형(李衡)은 무릉에 살 때 집 뒤뜰에 귤나무 천 그루를 심어 가꾸며 자식들에게 이르기를, ‘내 뜰에 옷과 밥을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해마다 비단 천 필의 이익을 다달이 바치는 나무 노예(木奴) 천 마리가 있으니 너희들은 굶주리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과연 귤나무가 다 자라자 해마다 수천 필의 비단을 얻어 거부가 되었으니, 사마천이 《사기》에서 ‘강릉의 귤나무 천 그루는 제후의 부와 맞먹는다’고 한 예언과 똑같이 들어맞았습니다. 번중(樊重)은 훗날 집안의 가구와 기물을 만들고자 미리 가래나무와 옻나무를 심었는데 세상 사람들이 멍청하다고 크게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흘러 나무들이 자라나자 훌륭한 자재로 모두 요긴하게 썼으니, 일찍이 비웃던 자들이 도리어 자재를 빌려달라고 애걸복걸 찾아왔습니다. 이는 농사와 임업의 실익을 결코 멈춰서는 안 됨을 설파하는 귀한 교훈입니다. 옛 속담에 이르기를, ‘일 년의 위대한 계획은 오직 곡식을 심는 것만 한 것이 없고, 십 년의 소중한 계획은 오직 나무를 심는 것만 한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농사짓고 거두는 일(稼穑)의 지독한 고초와 지난함을 알아야 한다’ 하였습니다. 《효경》에 이르기를, ‘하늘의 기후를 잘 쓰고 땅의 이로운 비옥함을 명철히 활용하며, 제 몸을 삼가고 소비를 절약하여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논어》에 이르기를, ‘백성이 굶주려 넉넉하지 못한데 군주라 하여 어찌 혼자 배불리 먹으며 넉넉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한나라 문임금은 ‘나는 오직 천하 백성들의 재산을 맡아 보관하여 수호하는 임시 파수꾼일 뿐이거늘, 어찌 내 맘대로 함부로 돈을 쓸 수 있겠는가!’ 하며 평생 가죽신을 기워 신으며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공자께서 이르기를, ‘집안을 조화롭게 이끄는 이치를 조정에 나아가 국가의 직무로 그대로 옮겨 처신하면 그것이 바로 참된 다스림이다’ 하였습니다. 가정의 경제를 다스리는 이치와 나라를 다스리는 법칙은 완전히 하나인 셈입니다.
나라의 온갖 재물과 양식은 이처럼 피땀 흘려 일구는 고초 속에 참으로 고단하게 생산되거늘, 쓰는 자들은 절도가 없이 사치스럽게 낭비하고, 보통 사람의 성정은 평소 일하기를 싫어하고 놀기를 좋아하며, 윗사람의 법령과 정치는 궤도를 잃어 어지럽고 매년 가뭄과 홍수가 덮치면 처참한 기근과 주검이 사방에 끝없이 널리 이어집니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히 해결해야 할 가장 아픈 재앙이었습니다. 굶주린 사람은 밥 한 그릇을 천금보다 원하고 목마른 자는 물 한 잔을 절실히 갈망하지만, 배가 불러 따뜻해진 뒤에는 밥과 옷의 고귀한 가치를 가볍게 잊어버리는 법입니다. 풍년이 들었을 때 다가올 흉년을 대비하여 비축하기를 귀찮아하고, 옷감이 흔해졌을 때 함부로 낭비하다가 마침내 참혹한 곤궁이 닥쳐서야 후회합니다. 관자가 이르기를, ‘폭군 하걸은 온 천하를 다 가지고도 양식이 부족해 멸망했고, 성군 탕임금은 겨우 사방 칠십이 리의 작은 영토로도 풍요를 이루었다. 하늘이 오직 탕임금만을 사랑해 콩과 쌀을 보슬비처럼 따로 내려준 것이 아니다’ 하였으니, 오직 군주와 나라 상하가 백성의 농사를 신중히 가꾸고 소비를 극진히 절제하며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중장자가 이르기를, ‘썩은 절인 생선 가게(鮑魚之肆)에 뒹구는 사람은 그 지독한 악취를 제 코로 깨닫지 못하고, 변방의 이민족들은 저희가 먹는 조잡한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것인 줄 꿈에도 알지 못한다. 평소 살아오며 찌든 잘못된 나태함과 나쁜 관습 속에 오래 뒹굴면, 제 삶이 무너져 가고 있는데도 그것이 잘못인 줄을 결코 모른다. 이는 마치 쓴 나물더미 속에 구르는 나비 벌레가 저 달콤한 쪽풀(인디고)의 단맛을 영원히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였습니다.
이에 나는 옛 조상 대대의 성현들이 남기신 경전과 기록을 남김없이 널리 수집하고, 저잣거리의 노래와 민간의 유행가까지 꼼꼼히 채록하였으며, 평생 농사를 지어 온 늙은 농부들에게 물어 지식을 구하고 실제 농가에서 거둔 임상의 효험들을 낱낱이 검증했습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농업의 시초부터 술을 빚고 간장과 식초, 젓갈을 발효하여 다듬는 가정 실업의 끝에 이르기까지, 백성이 먹고살며 생명을 기르는 모든 실용적인 기술들을 단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기록하여 책을 지어 편찬하고, 책의 이름을 《제민요술(齐民要术)》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이 책은 총 92편으로 이뤄져 있으며 10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각 권의 첫머리에는 꼼꼼하게 목차를 덧붙였으니, 독자들이 책장을 넘겨 필요한 기술을 찾아보기에 무척 간편할 것입니다.
다만 본문 중에 오곡이나 과일, 채소 등 중국의 기후에는 기르기 어렵고 다른 지역에서 자라는 특이한 작물들은 오직 그 이름과 실재만을 가볍게 기록해 두었을 뿐이며, 기르지도 못하는 억지 농법은 부질없이 싣지 않았습니다. 삶의 참된 뿌리이자 본질인 농업(本)을 내팽개치고 오직 얄팍한 상업의 말단적인 이익(末)을 좇는 짓은 현명한 선비들이 가장 싫어하는 어리석은 타락입니다. 그런 얄팍한 짓은 하루아침에는 돈을 벌지 몰라도 해가 갈수록 나라를 빈곤하게 만들어 참혹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백성을 몰고 가기에, 상업의 자질구레한 장사 수단은 책에 싣지 않고 철저히 누락시켰습니다. 또한 겉모습만 화려하여 눈을 즐겁게 하는 꽃이나 원예 식물 가꾸기 등은 봄날에 반짝 꽃은 피울지라도 가을에 백성을 살리는 든든한 알곡과 열매(秋實)를 맺지 못하므로, 부질없고 뜬구름 같은 헛된 허식에 불과하여 귀중한 책의 지면을 낭비하지 않도록 싣지 않았습니다.
나의 얕고 투박한 뜻은 오직 우리 가문의 아랫사람들과 일하는 가솔들을 철저히 가르치고 실용적인 눈을 뜨게 하는 데 머물러 있을 뿐이니, 감히 식견 높은 일류 석학들 앞에 내보여 뽐내려 지은 책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매 장마다 백성을 살리는 귀한 기술들을 마치 아랫사람의 귀를 잡아당겨 귓속말을 타이르듯(言提其耳) 극도로 정밀하고 꼼꼼하며 다정하게 서술하였고, 모든 농사 기법을 눈앞에서 부리듯 엄격하게 조목조목 직설적으로 가르쳤을 뿐 부질없는 미사여구나 헛된 장식용 문장은 한 글자도 싣지 않았습니다. 삼가 이 책을 읽으시는 어진 독자들께서는 나의 투박하고 직설적인 조언들을 하찮다 하여 결코 비웃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 주요 한자 · 고사성어 풀이
- 富而教之 (부이교지) — 백성들의 실질적인 살림을 먼저 풍요롭게 만들어 준 연후에, 비로소 예의와 도덕적 학문을 교육해야 한다는 유가와 통치 철학의 엄격한 애민(愛民)적 국정 원칙입니다.
- 盡地力之教 (진지력지교) — 토지의 무한한 생산력과 작물의 생육 질서를 농학적 지식으로 명철히 보살피고 개발하여, 농업의 실익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훌륭한 실학적 농법을 이르는 말입니다.
- 不服藥爲中醫 (불복약위중의) — 한의학의 배합을 전혀 모르는 엉터리 의사의 처방약을 먹어 제 소중한 몸을 망치느니, 차라리 아무 약도 안 먹고 자연 치유를 기다리는 것이 어설픈 의사를 만나는 것보다 낫다는 고대의 뼈아픈 경고입니다. (본문에서는 먹을거리의 생명적 절대 가치를 비유하기 위해 인용됨)
- 稼穑之艱難 (가색지간난) — 씨를 뿌리고 경작하여 땀 흘려 가을 알곡을 수확하는 농사일의 지독한 힘겨움과 백성들이 흘리는 노고의 숭고한 가치를 이르는 말입니다.
- 舍本逐末 (사본축말) — 삶과 국가의 가장 튼튼하고 정직한 근본인 농업과 실업(本)을 내팽개치고, 얄팍하고 이기적인 말단 이익인 장사나 상업(末)만을 쫓아 사치와 타락을 일삼는 어리석은 세태를 꼬집는 경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