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록산사적권상(卷上)

📚 안록산사적(安禄山事迹) · 제1편

안록산사적권상(卷上)


1. 안록산의 출생과 기이한 아명 (軋犖山)

안록산(安祿山)은 영주(營州) 출신의 잡종 호인(胡人, 여러 이민족이 섞인 혈통)으로, 아명은 알락산(軋犖山)이다. 그의 어머니 아사덕씨(阿史德氏)는 돌궐(突厥)의 무당이었는데, 오랫동안 자식이 없어 알락산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여 그 신묘한 영험의 감응으로 록산을 낳았다.

그가 태어나던 날 밤, 신비로운 붉은 빛이 장막 주위를 환히 비추었고 온갖 들짐승이 사방에서 슬피 울부짖었으며, 기운을 살피는 천문관(望氣者)은 요사스러운 큰 별의 타오르는 불빛이 그의 천막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당시 유주장사 장한공(張韓公)이 군사를 보내 그 천막을 샅샅이 수색하여 잡으려 하였으나 찾지 못하자, 그 가문의 늙은이와 어린아이를 모조리 죽였다. 안록산은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몸을 숨겨 간신히 죽음을 면했다.

이처럼 태어날 때의 기이하고 괴상한 징조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이를 신령스러운 조화로 여겨 마침내 그를 낳게 해 준 신의 이름을 따서 ‘알락산’이라 이름을 지었다. 돌궐인들은 전투와 전쟁의 신을 ‘알락산’이라 불렀다. 안록산은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되어 어머니를 따라 돌궐 부족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어머니는 훗날 호인 장수인 안파주(安波注)의 형인 안연언(安延偃)에게 개가하였다.

2. 청년기의 방황과 범양절도사 장수규(張守珪)와의 만남

당나라 개원(開元) 초기에 안연언의 부족이 몰락하여 파괴되자, 호인 장수 안도매(安道買)의 아들 안효절(安孝節)과 안파주의 아들 안사순(安思順) 등이 돌궐을 탈출했다. 안도매의 둘째 아들 안정절(安貞節)이 람주별가(嵐州別駕)로 있으면서 이들을 거두어 주었다.

당시 안록산의 나이는 열대여섯 살 남짓이었는데, 안정절이 형인 안효절과 함께 안록산을 데리고 와서 안록산, 안사순 등과 함께 도원결의처럼 의형제를 맺게 했다. 이로 인해 안록산은 비로소 성을 안씨(安氏)로 참칭하여 이름을 ‘안록산’이라 하였다.

성장하면서 성품이 지극히 간사하고 잔인무도하였으나, 머리가 영민하여 꾀가 많았고 남의 속마음과 눈치를 기막히게 잘 살폈다. 주변 9개 외국어(九蕃語)에 능통하여 여러 이민족이 모여 교역하는 호시(互市)의 통역관이자 중개인인 야랑(牙郎)이 되었다.

당시 명장 장수규(張守珪)가 범양절도사(范陽節度使)로 부임해 있었는데, 안록산이 남의 양을 훔치다가 간사한 죄가 탄로나 끌려와 몽둥이질을 당해 장형으로 죽게 될 처지에 놓였다.

안록산이 죽기 직전 장수규를 향해 하늘을 우러러 대성통곡하며 외치기를, “대부(대감)께서는 서(奚)나라와 거란(契丹) 두 오랑캐 부족을 멸망시키고 싶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이 천하 장사를 하찮은 일로 몽둥이질하여 죽이려 하십니까!”라고 소리쳤다.

장수규가 그의 대담한 말솜씨와 늠름한 용모를 범상치 않게 여겨 마침내 몽둥이를 거두고 풀어주었으며, 군대의 전방에서 심부름을 하도록 부하로 삼았다. 그리하여 안록산은 훗날 또 다른 반란 수괴가 되는 사사명(史思明)과 함께 적을 생포하는 착생장(捉生將)이 되었다.

안록산은 평소 변방의 험준한 산천과 우물, 샘터의 지리를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어, 겨우 서너 명의 기병만 거느리고도 적진에 침투해 거란족 수십 명을 산채로 붙잡아 오곤 했다. 장수규가 그의 전공에 탄복하여 갈수록 군사를 더 많이 떼어주자 사로잡는 적의 수가 매번 곱절로 늘어났다. 장수규는 마침내 안록산을 양아들로 삼았고, 그의 군공을 기려 조정에 보고하여 명예직인 원외좌기위장군 겸 야전討擊使로 삼았다.

3. 중서령 장구령(張九齡)의 놀라운 예언과 혜안

개원 21년, 장수규가 안록산을 장안 조정에 보내 일을 아뢰게 하였다. 당시 어진 재상이자 중서령이었던 장구령(張九齡)이 안록산의 관상을 보고 크게 경계하며 시중 배광정(裴光庭)에게 조용히 말하기를, “장차 유주(幽州)와 나라를 뒤흔들며 거대한 반란을 일으킬 자는 반드시 이 호인(胡人)일 것이다”라고 경고하였다.

개원 24년, 안록산이 평로장군(平盧將軍)이 되어 거란 토벌을 감행했으나 대패하여 아군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장수규가 군율에 따라 그의 목을 베어 참수할 것을 조정에 상소하여 요청했다.

장구령이 그 상소에 판결을 내리기를, “사마양저(司馬穰苴)가 군대를 이끌 때 군율을 어긴 황제의 총신 장가(莊賈)를 가차 없이 참수했고, 손무(孫武)가 훈련할 때 명을 어긴 총애하는 궁녀를 참수했듯이, 군대의 엄격한 법률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려면 안록산은 결코 죽음을 면해서는 안 된다”라며 참수를 주장했다.

그러나 당 현종(玄宗)은 안록산의 날쌔고 용맹한 재주를 몹시 아까워하여 관직만 면하고 평민의 신분(白衣)으로 백의종군하여 공을 세우게 길을 열어주었다. 장구령이 거듭 상소를 올리며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으나, 현종은 진나라 때 진의 현자 왕이필(王夷甫)이 어린 석륵(石勒)의 야심을 알아보고 경계했던 고사를 언급하며 “경은 어찌 왕이필이 석륵을 알아본 고사를 흉내 내어 섣불리 안록산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멋대로 단정 짓는가!”라며 끝내 건의를 기각했다.

훗날 안사(安史)의 난이 터지고 현종이 장안을 버리고 촉나라(蜀)로 비참하게 피난 갈 때, 과거 장구령의 충언을 듣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눈물을 흘리며 사신을 장구령의 고향인 곡강(曲江)으로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 훗날 건중 원년, 당 덕종(德宗)은 장구령이 난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꿰뚫어 본 놀라운 지혜를 기려 그를 최고 관직인 사투(司徒)로 추증하였다.

4. 아첨을 통한 권력 획득과 우상李林甫(이임보)의 비호

안록산은 평로군병마사를 거쳐 개원 29년 특진(特進)의 지위에 올랐다. 당시 조정의 실력자였던 어사중승 장이정(張利貞)이 하북 채방사로 변방에 부임해 오자, 안록산은 비굴할 정도로 장이정에게 온갖 아첨을 다 떨며 극진히 대접했고 그의 수하 부하들에게도 막대한 금과 비단을 뇌물로 안겨주었다.

장이정이 장안으로 돌아가 황제 앞에서 안록산의 훌륭한 덕망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자, 마침내 안록산은 변방의 최고 요직인 영주도독 겸 평로군절도사, 하북경략사 등의 감투를 독차지하며 조정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기 시작했다.

천보(天寶) 6년, 안록산은 어사대부(御史大夫)의 직첩을 겸하게 되었다. 당시 조정을 전횡하던 권신이자 승상이었던 이임보(李林甫)는 안록산과 사적으로 깊이 내통하고 있었으며 황제에게 거듭 안록산의 충성심을 극찬했다.

본래 현종은 즉위 초기에 곽원진, 장열 등 문무를 겸비한 훌륭한 한족 대신들을 대장으로 삼았으나, 이임보는 어진 문관들을 모함하여 내쫓고 자신의 승상 권력을 영원히 공고히 다지기 위해 변방 장수들을 오직 말만 잘 듣는 이민족 호인(蕃人)들로 채워 넣기 시작했다.

이임보는 황제에게 “문관 출신 장수들은 겁이 많고 나약하여 오랑캐를 이길 수 없으니, 네 오랑캐를 멸망시키고 온 나라에 위엄을 떨치려면 오직 평생을 말 위에서 자라나며 전투의 본능을 타고난 변방의 호인 장수들을 중용해야 마당합니다”라고 황제를 구슬려 현종을 크게 기쁘게 만들었다. 안록산을 가장 먼저 최고 사령관으로 발탁하여 마침내 나라를 집어삼키는 전란의 주동자(戎首)로 키워낸 것은 실로 사리사욕에 눈이 먼 이임보의 거대한 죄악이었다.

초기에 안록산은 황제의 두터운 총애만 믿고 승상 이임보를 만났을 때 몹시 거만하고 불손하게 굴었다. 이임보가 그의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놓고자 일부러 다른 일을 아뢰는 척 연기하며 부하들에게 황제의 두터운 은총을 받던 조정의 실력자 왕홍(王鉷) 대감을 불러오라 명했다. 왕홍이 들어오자마자 이임보 앞에서 쩔쩔매며 허리를 90도로 꺾고 굽신거리자 안록산은 제 기세에 눌려 큰 충격을 받고 제정신을 잃었다. 이후 안록산은 이임보 앞에만 서면 식은땀을 흘리며 극도로 비굴할 정도로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게 되었다.

5. 현종과 양귀비(楊貴妃)의 눈먼 총애와 ‘삼일세아(三日洗兒)’ 해프닝

당 현종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국사를 돌보기 싫어하자 변방의 모든 군사 대권을 전적으로 안록산의 두터운 충성심에 기탁했다. 안록산은 황제의 비위를 귀신같이 맞추며 궁중 잔치 때마다 아첨하기를, “소신은 오랑캐 출신의 미천한 신하에 불과하오나 주군의 과분한 은혜를 입었으니, 저에게 무슨 재주가 있겠습니까마는 오직 이 늙은 몸뚱이를 바쳐 폐하를 위해 죽고자 할 뿐입니다”라고 조아렸다. 현종은 그의 우직한 말에 속아 눈물을 흘리며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현종이 훗날 즉위할 황태자(당 숙종)를 만나보라 하자 안록산은 절을 하지 않았다. 주변 신하들이 꾸짖자 안록산은 시치미를 떼며 “저는 무식한 오랑캐라 조정의 예법을 잘 모르옵니다. 황태자라는 직책은 도대체 무슨 벼슬입니까?”라고 물었다. 현종이 “내가 죽은 뒤 내 왕위를 이어받을 존귀한 세자(儲君)이다”라고 설명해주자, 안록산은 더욱 아첨을 부리며 머리를 조아려 외치기를 “소신이 무지하고 어리석어 조정의 돈과 뇌물만 바칠 줄 알았지 오직 폐하 한 분만 계시는 줄 알았고 황태자라는 분이 계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만번 죽어 마땅합니다”라며 엎드려 절했다. 현종은 그의 계산된 멍청함과 아첨을 도리어 ‘순수하고 소박한 우직함(純誠)’으로 여겨 더욱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당시 천하를 뒤흔드는 총애를 누리던 양귀비(양태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안록산은 다 큰 덩치에 스스로 양귀비의 양아들(養兒)이 되기를 기꺼이 청했다. 매번 대궐에서 황제 부부를 알현할 때마다 안록산은 황제보다 늘 양귀비에게 먼저 큰절을 올렸다. 현종이 그 해괴한 불경을 웃으며 묻자 안록산은 뻔뻔하게 아뢰기를, “오랑캐의 풍습에서는 늘 어머니(母)를 앞세우고 아버지를 뒤로하는 법입니다”라고 대답하니 현종이 몹시 흡족해하며 기뻐 날뛰었다.

급기야 천보 10년 안록산의 생일이 지나고 사흘째 되던 날, 양귀비는 다 큰 어른인 안록산을 커다란 신생아 오색 천 싸개(繡繃子)에 꽁꽁 싸매고 시녀들을 시켜 오색 찬란한 유모 가마(彩輿)에 태운 뒤 대궐 마당을 돌며 시끄럽게 축하 구호를 외치는 해프닝을 벌였다.

온 대궐이 떠나갈 듯한 큰 웃음과 환호 소리에 당황한 현종이 무슨 일인지 물어보러 사람을 보내자, 양귀비는 “안록산의 생일 사흘째를 맞이하여 갓난아기 목욕시키고 오줌 싸개 천으로 몸을 감싸는 ‘삼일세아(三日洗兒)’ 놀이를 하느라 웃음꽃이 핀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현종이 직접 마당으로 나와 구경하다가 몹시 유쾌해하며 양귀비와 궁녀들에게 거액의 금은보화를 세아 축하금으로 듬뿍 안겨주었다. 이후 대궐 구중궁궐 안의 모든 비빈과 환관들은 안록산을 아기 부르듯 ‘녹아(祿兒, 우리 록이)’라고 다정하게 불렀고, 황실 내실과 비빈들이 거처하는 침소까지 안록산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자재로 나들 수 있도록 방치했다. 안록산은 이로 인해 마침내 딴마음을 품고 반역의 역모를 더욱 굳히게 되었다.

6. 극도에 달한 부귀영화와 친인방(親仁坊)의 황금 대저택

안록산은 3개 도의 절도사(평로, 범양, 하동)를 독식하며 그의 부귀영화가 우주 끝까지 솟구쳤다. 늙을수록 몸이 극도로 비대해져 살찐 뱃가죽이 무릎 아래까지 축 늘어졌고 제 몸무게를 달아보니 무려 350근(약 210kg)에 달했다.

조정에 들어올 때마다 현종이 그의 불룩한 배를 놀리며 “짐이 방금 보니 경의 커다란 배가 땅바닥에 닿아 긁히겠구려”라며 껄껄 웃었다. 안록산이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양옆에서 힘센 역사들이 그의 어깨와 겨드랑이를 들어 올려 부축해야 겨우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그러나 현종이 총애하여 춤을 추라 명령하면, 황제 앞에서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도는 격렬한 이민족 춤인 ‘호선무(胡旋舞)’를 기막히게 추어대어 황제를 경탄시켰다.

현종은 안록산의 기존 저택이 좁고 초라하다고 여겨, 장안에서 가장 노른자위 땅이자 호화로운 주택가인 친인방(親仁坊)에 드넓은 터를 직접 고르고 황실 내탕고의 현금을 아낌없이 털어 세상에 다시없을 황금 대저택을 지어주었다.

황제는 관청에 엄명을 내려 재정을 무제한으로 투입하여 극도로 화려하게 짓도록 지시하니, 웅장한 대청마루와 정원, 겹겹이 들어선 깊은 안채와 높은 정자, 구불구불 흐르는 아름다운 연못이 마치 천상의 신선 세계처럼 자연스럽게 빚어졌고 집안 구석구석을 진귀한 보물과 황실 비단 커튼으로 가득 채웠다.

안록산이 전쟁 포로들을 이끌고 장안에 개선 입성하여 이 새 저택에 처음 입주하던 날, 현종은 길이 1장 7척에 달하는 진귀한 은평탈(銀平脫) 8각 화조 풍수 병풍 장막을 비롯해, 순금과 구리로 도금한 장식물, 은으로 정교하게 조각한 자물쇠, 은실로 엮은 바구니와 금은 식기 등 황실 주방에서나 쓰던 수백 가지 최고급 보물들을 모조리 하사했다. 심지어 황실 마차와 황실 침구, 보석으로 장식한 침대, 황금 요광 등 대궐 안의 황제 처소조차 감히 따라가지 못할 만큼 초호화 가구들을 하사했다.

현종이 백관들을 거느리고 근정루(勤政樓)에 올라 큰 잔치를 열 때마다, 황제의 옥좌 동쪽에 안록산만을 위한 황금 닭 장막(金鷄帳)과 안락의자를 특별히 세워두고 발을 걷어 올린 채 대궐 안을 훤히 내려다보며 앉아 있게 하여 막강한 특권을 백관들 앞에서 과시했다.

동생인 태자(당 숙종)가 황제에게 간곡히 눈물을 흘리며 “예로부터 황실 정전에서 신하가 황제와 맞먹게 앉아 권세를 누리는 예법은 없었사옵니다. 아바하마께서 저 오랑캐를 이처럼 버릇없이 총애하시니 훗날 반드시 교만해져 나라의 큰 재앙이 될 것입니다”라고 간언했다. 현종은 코웃음을 치며 태자의 손을 잡고 조용히 대답하기를, “저 록이의 뼈 모양과 상을 보니 실로 괴이하고 험악하기 짝이 없구나. 내가 일부러 이처럼 드높은 벼슬과 영화를 안겨주어 그의 험악한 살기와 역모의 기운을 무마하고 억제하여 꺾어놓으려는(厭勝) 고도의 정치적 계산일 뿐이다”라며 황태자의 걱정을 어리석게 치부했다.

7. 범양의 웅무성(雄武城)과 8천 명의 무사 양아들 ‘예락하(曳落河)’

안록산은 황제의 눈먼 은총을 방패 삼아 머지않아 현종이 늙어 죽고 장안 조정에 큰 변란이 일어날 것을 확신하고 마음속에 품어왔던 반란의 대업을 노골적으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범양에 거대하고 단단한 요새인 웅무성(雄武城)을 견고하게 쌓아 겉으로는 변방의 적들을 막는 척 사기 치면서, 성내 깊숙한 밀실에 막대한 양의 최신 병기와 군량미를 몰래 비축했다.

변방의 사납고 용맹한 돌궐, 거란 출신 이민족 무사들과 포로 등 총 8천여 명의 천하장사들을 포섭하여 그들을 모조리 자신의 양아들(假子)로 삼아 ‘예락하(曳落河, 돌궐어로 용맹한 전사라는 뜻)’라 불렀다. 집안의 하인들과 가마꾼 등 수백 명에게도 날마다 활쏘기와 마술을 혹독하게 가훈련시켰으며 그들에게 막대한 토지와 황금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어 환심을 샀다. 8천 명의 예락하 전사들은 안록산의 드높은 은혜에 감복하여 목숨을 바쳐 충성할 것을 굳건히 맹세하니 한 사람이 능히 적 백 명을 당해낼 만큼 최정예 살인 병기들이 되었다.

동시에 전투에 길들여진 튼튼한 군마 수만 마리와 황소, 양 5만여 마리를 목장에 비축하고, 3개 도의 군사 행정과 군수 물자를 완전히 독점하여 변방의 세금과 상벌을 제멋대로 주재했다. 수하 참모진인 장통유, 고상, 엄장 등과 안수충, 채희덕, 최건우, 윤자기 등 변방 최고의 맹장들을 굳건히 포섭해 두었다.

또한 매년 수십 개에 달하는 아랍과 위구르 등 서역 무역 상단(商胡)을 하북 전역에 보내 인삼과 비단 등 독점 무역업을 벌여 매년 수백만 관에 달하는 막대한 은과 보석을 쓸어 모아 전쟁 자금으로 은밀히 세탁했다.

상인들이 전방에 당도할 때마다 안록산은 화려한 호인 군복을 차려입고 금은보화를 첩첩이 쌓아둔 안방의 대형 카펫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백여 명의 무사들을 양옆에 도열시키고 오랑캐식 제사를 요란하게 지내며 하늘에 역모의 대업을 기도했다. 8~9년 동안 조직적이고 은밀하게 전쟁용 군복 비단 100만 필과 황금 무기를 은밀히 비축해 두었으니, 이미 하북 전역은 안록산의 완벽한 1인 지배 왕국이자 화약고가 되어 있었다.

8. 거란(契丹) 토벌의 실패와 구사한(哥舒翰)과의 격렬한 설전

안록산은 성품이 극도로 잔인무도하여, 자신의 전공을 크게 꾸며 황제에게 허풍 치기 위해 귀순해 살아가던 온순한 변방 거란족과 서나라 부족 추장 수십 명을 잔치에 초청해 술을 먹인 뒤, 그 술에 맹독인 짐독(鴆)을 몰래 타서 한 번에 몰살시키고 그들의 목을 베어 상자에 담아 장안에 바치며 “흉악한 오랑캐 장수들을 대파하여 목을 베어 바칩니다”라며 대전공으로 가짜 보고를 일삼았다.

천보 10년 가을, 대규모 군사를 일으켜 거란 토벌을 감행하면서 서나라 군사 2천 명을 길잡이로 삼아 요하 근처 토호진하에 당도했다. 안록산은 전쟁의 속전속결 법칙을 과시하고자 오랜 장마비에도 불구하고 군사들을 가혹하게 몰아붙여 밤낮없이 300여 리를 강행군했다. 군사들이 흙탕물 속에서 며칠 동안 굶주리고 지쳐 나가떨어지자 활시위마저 비에 젖어 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혜로운 대장 하사덕(何思德)이 “우리 군사들이 먼 길을 밤낮없이 행군하여 몹시 지치고 활조차 쓸 수 없으니, 부디 잠시 부대를 멈추어 휴식을 취하고 위엄을 뽐내며 협박하면 사흘 안에 거란이 스스로 항복할 것입니다”라고 현명하게 간언했다. 안록산이 대노하여 제 말을 거역했다며 하사덕을 현장에서 목 베어 군령을 세우려 하자 하사덕이 울면서 최전방 선봉으로 나아가 개죽음을 자청했다.

하사덕의 늠름한 용모와 체격이 평소 안록산과 매우 흡사하여, 멀리서 바라보던 거란 군사들이 그가 안록산인 줄로 굳게 착각하고 수만 발의 화살과 창을 집중하여 일시에 날려 쏘아 맞추니 하사덕의 몸이 뼈와 살이 흩어져 끔찍하게 부서져 분쇄되었다.

거란군이 안록산을 잡았다고 환호성을 지르며 서나라 군사들과 힘을 합쳐 좌우에서 협공하자 당나라 대군이 혼비백산하여 몰살당하기 시작했다. 안록산 또한 적의 화살이 말 안장에 꽂히고 채찍과 신발, 투구까지 내팽개친 채 겨우 20여 명의 호위 기병만 거느리고 산속으로 비참하게 도망치다가 진흙 구덩이 속에 굴러떨어졌다. 양아들인 손효철과 아들 안경서가 흙 속에서 그를 밧줄로 겨우 건져내어 한밤중에 칠흑 같은 어둠을 틈타 평로성으로 도망쳐 기어 들어갔다.

천보 11년, 안록산은 지난번 패전을 설복하고자 대군 20만 명을 몰아 거란 토벌을 재감행했고, 삭방절도부사 아포사(阿布思)의 동라 부족 군사 수만 명과 합류하려 했다. 그러나 아포사는 교만하고 잔인한 안록산의 밑에 들어가 수모를 겪기 싫어하여 군사를 이끌고 갑자기 사막 북쪽(漠北)으로 도망쳐 버렸다.

이에 당 현종은 명장 가섭한(哥舒翰)과 안록산을 동시에 장안으로 불러들여 화해시키고자 궁중 동쪽 뜰에서 큰 잔치를 열어주었다. 가섭한의 어머니는 우전국(위구르 계열) 출신의 여인이었고 안록산은 하동절도사 안사순과 평소 뼈저린 갈등을 겪고 있었다.

안록산이 술에 취해 거만하게 가섭한을 쏘아보며 아첨 섞인 시비조로 말하기를, “내 아버지는 소그드 호인이고 내 어머니는 돌궐 여인이오. 귀공의 부친은 돌궐인이고 모친은 소그드 호인이니, 우리 두 사람의 피와 핏줄이 이처럼 똑같이 아름답게 섞여 서로 완전히 동종인데 어찌 서로 친하게 지내며 의형제를 맺지 않는단 말이오?”라고 거들먹거렸다.

가섭한이 차갑게 응수하기를, “옛말에 이르기를 ‘들판의 들여우(野狐)도 죽을 때는 제 태어난 굴을 향해 머리를 두고 절한다(首丘之情)’고 하였으니, 이는 제 미천한 근본을 끝내 잊지 않으려는 본성 때문이라 하였소. 내 어찌 귀공과 한마음으로 친하게 지내지 않겠소?”라고 뼈 있는 한마디를 쏘아붙였다.

안록산은 가섭한이 자신을 근본 없는 야생 여우새끼(野狐)라고 은근히 조롱하여 모욕을 준 것임을 알아채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여 크게 대노하여 벌떡 일어나 쌍욕을 퍼부으며, “어디 미천한 돌궐 놈이 감히 내 앞에서 이 따위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는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가섭한이 이에 맞받아쳐 칼을 뽑으려 하자 옆에 서 있던 대환관 고력사(高力士)가 눈짓으로 말려 겨우 소란이 멈추었다.

이후 안사순의 고발대로 안록산이 마침내 안사의 난을 일으켰을 때, 가섭한이 숭고한 한나라 장수로서 潼關(동관)을 굳건히 지키며 천하 군권을 쥐고 안록산의 대군을 굳건히 저지하며 가문의 원수를 갚는 결전의 주역이 되었다.


📖 주요 한자 · 고사성어 풀이

  • 胡人 (호인) — 당나라 시기 소그드인, 돌궐인 등 한족 이외의 북방 및 서역 계열 이민족들을 아울러 부르던 명칭. 안록산은 소그드인 아버지와 돌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 牙郎 (야랑) — 당나라 시기 변방의 무역 시장(互市) 등에서 상인들 간의 교역을 중개하고 외국어를 번역해 주던 공식 중개인 및 통역관.
  • 捉生將 (착생장) — 전투 시 적진에 은밀히 침투하여 정보를 캐내거나 적의 장수 및 요인을 산채로 포획(生擒)해 오는 임무를 맡은 정예 특수 부대장.
  • 三日洗兒 (삼일세아) — 아기가 태어난 지 사흘째 되는 날 친척들이 모여 아기를 목욕시키고 장수를 축복해주던 당나라 황실 풍습. 양귀비가 거구의 안록산을 싸개로 싸서 놀려 온 조정의 비웃음을 삼.
  • 厭勝 (염승) — 주술이나 방책으로써 상대의 나쁜 살기나 액운, 혹은 반역의 기운을 억누르고 이겨내어 제압한다는 뜻. 당 현종이 안록산의 역모를 억누르기 위해 과도한 작위를 준 핑계로 삼음.
  • 曳落河 (예락하) — 돌궐어로 ‘용맹한 무사(brave warrior)’를 뜻하며, 안록산이 자신의 사병 집단으로 양성한 돌궐 및 거란 출신 8,000명의 최정예 번인 무사 부대.
  • 首丘之情 (수구지정) — 여우가 죽을 때 자신이 살던 굴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고사성어로, 자신의 근본이나 조국, 고향을 잊지 않는 숭고한 본성을 비유함. 가섭한이 안록산의 근본을 조롱하는 뼈 있는 한마디로 사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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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자지귀(老子指归) · 제1편 권일:상덕부덕편(卷一) 「가장 높은 덕을 지닌 이(上德)는 인위적인 덕을 행하려 애쓰지 않으므로 참된 덕을 지니고 있으며, 낮은 덕을 지닌 이(下德)는 덕을 잃지 않으려 늘 의식적으로 얽매여 있으므로 참된 덕을 지니지 못합니다. 가장 높은 덕을 지닌 이는 억지로 도모함이 없이 행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는 바가 없고(상덕무위이무불위), 낮은 덕을 지닌 이는 억지로 목적을 품고 행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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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상동연삼매신주재청단행도의(太上洞渊三昧神呪斋清旦行道仪) · 제0편 태상동연삼매신주재청단행도의(太上洞淵三昧神呪齋清旦行道儀) 1. 새벽녘 법회(청단행도)의 시작과 향(香)을 사르는 의식 당나라 최고의 도사 광성선생(廣成先生) 두광정(杜光庭)이 증보하고 교정한 본 의식은, 하루 중 가장 맑고 순수한 원기가 충만한 새벽녘(清旦)에 삼매신주(三昧神呪) 법단을 세우고 행도(行道, 불단 주위를 도는 의식)를 행하며 온 세상의 재앙을 예방하고 질병을 쫓는 엄숙하고 장엄한 도교 의례이다. 도량이 정돈되고 신장들이 대열을 갖추어 서면, 스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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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민요출(齐民要术) · 제5편 권오-잠업·임업·옻나무·대나무·천연염색·고대화장품연지제조법(卷五) 《이아(爾雅)》에서 이르기를: ‘오디가 열리는 뽕나무를 지(栀)라 하고, 잎이 길고 어린 뽕나무를 여상(女桑)이라 하며, 산뽕나무를 엽상(檿桑)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엽상은 목질이 대단히 견고하고 질겨 고대 무기인 쇠궁(활)을 깎거나 튼튼한 마차의 수레바퀴 뼈대를 만들 때 최고의 용재로 쓰입니다. 《搜神记(수신기)》에 이르기를 옛날 태고 시절에 한 장수가 멀리 정벌을 떠나 집안에 오직 딸 하나와 백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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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안개가 자욱한 메밀밭, 누군가 내 소중한 수확물을 훔쳐 가려 한다면? 단순히 도둑인 줄 알았던 존재가 상상도 못 할 거대 귀신이었다면 어떨까요? 《요재지이》에 수록된 짧지만 강렬한 공포담, 교중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 원문 (原文) 蕎中怪 長山安翁者,性喜操農功。秋間蕎熟,刈堆隴畔。時近村有盜稼者,因命佃人乘月輦運登場,俟其裝載歸,而自留邏守。遂枕戈露臥。目稍瞑,忽聞有人踐蕎根咋咋作響。心疑暴客,急舉首,則一大鬼高丈餘,赤發盨須,去身已近. 大怖,不遑他計,踴身暴起狠刺之。鬼鳴如雷而逝。恐其復來,荷戈而歸。迎佃人於途,告以所見,且戒勿往。衆未深信。 越日曝麥於場,忽聞空際有聲。翁駭曰:「鬼物來矣!」乃奔,衆亦奔。移時復聚,翁命多設弓弩以俟之。異日果復來,數矢齊發,物懼而遁。二三日竟不復來。麥既登倉,禾黠雜遝,翁命收積為垛,而親登踐實之,高至數尺。忽遙望駭曰:「鬼物至矣!」衆急覓弓矢,物已奔翁。翁僕,齕其額而去。共登視,則去額骨如掌,昏不知人。負至家中,遂卒。後不復見。不知其為何怪也。 2. 직역 (直譯) 장산의 안씨 노인은 성품이 농사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가을철에 메밀이 익어 밭두둑 가에 베어 쌓아두었다. 당시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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