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록산사적권중(卷中)

📚 안록산사적(安禄山事迹) · 제2편

안록산사적권중(卷中)


1. 황태자(당 숙종)의 꿈과 안록산의 황급한 도성 탈출

천보(天寶) 13년 정월 4일, 안록산이 장안으로 와서 황제의 거처를 알현하고 대궐 안에서 황제를 독대하여 영광스러운 보물과 은총을 산더미처럼 받았다.

당시 황태자(훗날의 당 숙종)는 안록산의 관상과 움직임에서 흉악하고 역모를 꾀하는 살기(凶逆)가 이미 백일하에 확연히 드러난 것을 보고 현종(玄宗)에게 간곡히 아뢰었으나, 현종은 그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황태자는 나라와 황실 사직이 통째로 뒤엎어질까 극도로 두려워하며, 향을 피우고 하늘을 향해 참된 꿈을 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날 밤 태자의 꿈속에 과거 내시였던 호프승(胡普升) 등 두 사람이 황색 보자기에 싸인 보랏빛 안장(紫鞍)을 하늘로부터 메고 내려와 태자 앞에 놓았다.

그 안장 위에는 붉은 글씨가 빽빽하게 적힌 나무 판결문(素板丹書)이 놓여있었는데, 수많은 글자들 중 오직 네 구절만이 태자의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어찌 말하지 않으리오, 오직 지금이 그때로다. 하늘이 내리신 천명이니, 복과 녹(福祿)이 결코 굽어보신다.”

안록산은 현종을 알현했을 때 거짓 눈물을 질질 흘리며 간교하게 호소하기를, “소신은 본래 비천한 오랑캐(胡人)에 불과하옵니다. 폐하께서 신분을 가리지 않고 파격적으로 중용해 주시어 변방 최고의 군권을 지키게 하셨으니, 이 은혜는 보통 사람보다 천 배나 과분합니다. 그러나 재상 양국충(楊國忠)이 소신을 몹시 투기하고 질투하여 사사건건 역모를 씌워 모害하려 드니, 소신은 조만간 억울하게 죽어 목숨을 부지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라고 곡했다.

이전에 권세를 쥐던 이임보(李林甫)는 성품이 음흉하고 치밀하여 안록산을 만날 때마다 그 간사함과 허실을 단박에 꿰뚫어 보고 다스렸기에 안록산이 쩔쩔맸으나, 새로 권세를 잡은 양국충은 성품이 경솔하고 조급하여 안록산이 그를 극도로 깔보고 업신여겼다.

양국충이 매일 황제에게 안록산이 반드시 반역할 것이라며 장안으로 소환하라 다그쳤으나, 안록산은 현종이 자신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자 도리어 제 발로 마차를 타고 번개같이 입궐해 알현해 버렸다. 이로 인해 현종은 안록산의 두터운 충성심을 더욱 철석같이 믿게 되었고 양국충의 탄핵을 모함으로 치부했다.

정월 9일, 황제는 안록산에게 상서좌복야(尚書左仆射)의 최고 영직을 더해주고 식실봉 1000호를 하사했으며, 그의 아들 한 명은 3품 관직을, 다른 아들은 5품 관직을 제수하고 열 가구의 노비와 호화 저택을 안겨주었다. 이어 좌우 목마장 및 둔전 등 변방의 모든 행정과 재정 대권을 그에게 추가로 독점시켰고, 어사중승 길온(吉温)을 그의 부사(副使)로 매끄럽게 붙여주었다.

안록산은 지난 몇 년 동안 서나라와 거란 부족을 토벌하며 공을 세웠다는 군사들의 등급을 적어 올리며 이들에게 무제한으로 파격적인 벼슬을 내릴 것을 조정에 상소했다. 현종이 즉각 기각하지 않고 상소를 모두 윤허(制曰: 可)해 줌으로써, 안록산의 수하 군사들 중 장군(將軍)의 감투를 쓴 자가 500여 명에 달했고 중랑장(中郎將)의 벼슬을 찬 무사가 2000여 명에 육박했다. 변방 군대가 온통 안록산의 수하 공신들로 도배된 것이다.

안록산이 변방의 범양으로 귀환할 때 현종은 친히 망춘정(望春亭)까지 나와 전송하며 황제 본인이 입고 있던 겉옷을 직접 벗어 안록산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안록산은 겉으로는 감격하여 황공히 받았으나, 속으로는 마음이 찔리고 혹여나 도성에 억류되어 처형당할까 극도로 공포에 떨며 대답도 제대로 못 했다.

그는 황제의 총애가 지나치니 도리어 도성에 붙잡힐까 겁을 내어, 하직 인사를 하자마자 고삐를 세차게 당겨 쏜살같이 성문을 빠져나갔다. 기문(淇門) 나루터에 당도해서는 배를 타고 물결을 따라 하루 3~4백 리씩 질주하여 도망쳤는데, 지나는 고을마다 사공들이 밧줄을 쥐고 대기하다가 록산의 배가 닿기가 무섭게 말을 몰듯 배를 세차게 끌고 내달렸다.

2. 안록산의 재상 등용 좌절과 이간질

3월 1일, 현종은 안록산에게 최고 재상(宰相)의 직을 하사하려 마음먹고 한림학사 장계(張垍)에게 명하여 재상 임명의 조서(白麻)를 미리 초안하게 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양국충이 황제에게 눈물로 간언하기를, “안록산은 까막눈이라 글자 한 자도 읽을 줄 모르는 무식한 자이옵니다. 그런 자를 대국의 승상(재상)으로 삼으신다면 변방 사방의 오랑캐들이 필시 당나라 조정을 우습게 여기고 업신여길 것입니다”라고 가로막았다. 현종이 마침내 깨닫고 재상 임명을 취소했다.

안록산이 장안을 떠날 때 고력사(高力士)가 장락파(長樂坡)까지 배웅해 전송한 뒤 돌아왔다. 현종이 “록이가 가면서 몹시 기뻐하더냐?”라고 묻자, 고력사는 한숨을 쉬며 대답하기를 “재상 자리를 얻지 못해 한을 품고 몹시 툴툴거리며 우울하게 돌아갔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양국충이 곁에서 이간질하기를 “재상 조서 초안을 작성했던 장계가 정보를 안록산에게 미리 누설한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참소하니 현종이 불같이 노여워하며 즉시 장계를 한직인 여수령 사마(司馬)로 좌천하여 내쫓았다.

범양에 도달한 안록산은 조정에서 마침내 자신을 잡아 죽일 것을 확신하고 뼈저린 음모를 굳혀, 마침내 도성을 향해 군사를 일으킬 반란의 결단을 내렸다. 이때부터 길가는 사람들이 서로 안록산의 반역 소문을 수군거렸으나, 황제는 도리어 고발자들을 산채로 포박하여 안록산에게 그대로 보내 처형하게 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길에서 마주쳐도 눈짓만 주고받을 뿐 감히 아무도 소리 내어 고발하지 못했다.

3. 양국충과의 불화 및 길온(吉温)의 참혹한 옥사

천보 14년 5월, 안록산은 심복인 장수 하천년(何千年)을 보내 상소를 올리며 변방의 조정 한족 장수들을 모조리 32명의 이민족 호인 장수들로 교체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현종은 재상들과 상의하지도 않고 그날로 상소에 서명(進畫)하여 임명장을 작성해 하천년에게 쥐여주었다.

재상 양국충과 위견소(韋見素)가 큰 충격을 받고 수군거리기를, “안록산이 딴마음을 품었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이제 변방 장수들까지 온통 제 수하 오랑캐들로 채우려 하니 그 역모의 칼날이 명백하다”라며 황제에게 달려가 오열하며 안록산의 반역 징조를 고했다. 현종은 귀찮아하며 “경들은 쓸데없이 록이의 충심을 의심하는구려. 이번 한 번만 내 임시방편으로 눈감아 줄 것이니 내가 알아서 다 처리하겠소”라며 오히려 재상들을 달랬다.

이에 위견소는 황제에게 “그렇다면 안록산에게 좌복야 평장사의 재상 직을 가봉하여 장안 조정으로 영전하는 척 소환하고, 범양절도사 자리에는 맹장 가순(賈循)을, 평로에는 여지회(呂知誨)를 임명하여 안록산의 군권을 평화롭게 회수하십시오”라고 기막힌 상책을 건의했다. 현종도 조서의 초안을 작성하라 허락했으나 양국충이 가로막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양국충은 오히려 안록산이 먼저 반란을 일으켜 자신의 예언이 백일하에 증명되기를 묵묵히 기다렸던 것이다.

현종은 은밀히 총신 보구림(輔璆琳)을 범양에 특사로 보내 안록산의 거동을 훔쳐보게 했으나, 보구림은 안록산에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막대한 황금 뇌물을 듬뿍 챙겨 받고 장안으로 돌아와 안록산이 지극히 충성스럽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황제에게 허위 보고를 올렸다.

이에 크게 안심한 현종은 보무당당히 재상들 앞에서 “록이는 결코 두 마음을 품지 않았소! 내 친히 의심하던 조서를 불태워 버렸소!”라고 선언했다. 안록산은 이후 거란을 대파하여 수만 마리의 가축을 얻었다고 끊임없이 허위 승전 보고를 올려 황제의 눈을 멀게 했다.

양국충은 안록산의 역모 증거를 잡기 위해 제 문객들을 풀어 안록산의 장안 사택을 기습 포위하여 안록산의 심복들을 사로잡아 어사대부 옥사에서 은밀히 교형에 처했다.

나아가 안록산의 최측근이었던 길온(吉温)을 가혹한 부정부패와 사통 죄목을 씌워 체포한 뒤, 혹독한 몽둥이질을 가해 옥사시켜 안록산의 기운을 꺾으려 했다. 길온은 10여 년 동안 사사로운 칼자루를 쥐고 수많은 사람들을 모함해 죽여 온 잔인한 악질 관리였는데, 마침내 양국충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안록산은 자신의 심복들이 조정에서 처형당하고 길온이 매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머리끝까지 불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참모 엄장(嚴庄)에게 명하여 양국충의 뇌물 수수와 부정부패 죄상 20여 가지를 상세히 적은 경고 상소문을 올렸다. 현종은 안록산이 크게 노해 군사를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도리어 장안 태수 이현(李峴)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 영릉태수로 좌천시켜 안록산을 달랬다.

4. 안록산의 반란 선언과 10만 대군의 서진

천보 14년 11월 9일, 안록산은 마침내 범양에서 웅장하게 격문을 띄우고 반란의 횃불을 들었다.

동라, 거란, 실위 족 출신의 정예 돌격 기병인 예락하(曳落河) 전사들과 범양, 평로, 하동의 대군 10만 명을 규합하여 스스로를 ‘부자군(父子軍, 부모와 자식 같은 끈끈한 결속의 군대)’이라 부르며 북소리를 하늘이 깨어지도록 울리며 서쪽 장안을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반란의 명분은 “간신 양국충을 척살하여 나라를 구한다”는 척간(誅楊國忠)이었다.

11월 15일, 반란의 봉화가 대궐에 당도하자 현종이 사색이 되어 재상들을 긴급 소집했다. 그러나 역모의 주동자인 양국충은 오히려 제 예언이 맞았다며 실실 웃는 거만한 낯빛으로 아뢰기를, “지금 반역을 꾀하는 자는 오직 안록산 한 놈뿐이며 그의 휘하 10만 군사들은 개죽음을 당하기 싫어 싸울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보름 안에 반드시 안록산의 목이 베여 아군에 투항해 올 것이니,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폐하께서 대의의 깃발을 들고 토벌군을 보내시면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평정할 수 있습니다”라고 큰소리를 쳐댔다. 이임보와 양국충의 실책을 뻔히 아는 대신들은 양국충의 뻔뻔함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5. 안록산의 양아들 손효철(孫孝哲)과 참모 고상(高尚)

안록산의 좌우를 지키던 으뜸 공신은 참모 엄장과 글재주가 뛰어난 고상(高尚), 그리고 양아들 손효철(孫孝哲)이었다.

손효철은 본래 거란족 출신이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빼어난 미인이라 안록산과 통하였으므로 안록산의 두터운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 키가 7척에 달하고 힘이 장사였으며 꾀가 비범했다.

한번은 안록산이 대궐 문 앞에서 현종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을 때, 뚱뚱한 안록산의 옷단추가 툭 하고 끊어져 바지가 흘러내릴 뻔하여 록산이 사색이 되어 안절부절못했다.

이때 곁을 지키던 손효철이 품속에서 침선 바늘과 실을 꺼내어 눈 깜짝할 사이에 록산의 옷단추를 기막히게 꿰매어 단속해 주었다. 안록산이 그의 순발력과 정교함에 감격하여 그를 친아들보다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손효철은 바느질과 재단 기술이 신의 경지에 달해, 몸이 몹시 비대하고 뱃가죽이 축 늘어진 안록산의 특이한 옷은 오직 손효철이 손수 재단하여 지어 바친 옷만이 그의 몸에 편안하게 어울렸다.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킨 후 손효철은 대장군이 되어 장안을 점령했을 때 양국충과 고력사의 수하 세력들, 그리고 자신과 척을 졌던 종실과 황실 대신 수십 명을 잔인하게 체포하여 쇠몽둥이로 머리통을 쳐서 뇌수가 쏟아지게 만들어 잔인하게 처형하여 온 장안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글재주가 비범했던 고상(본명 고불위)은 젊은 시절 곤궁하게 살면서 늘 한탄하기를 “장차 대업을 도모하다가 비참하게 죽을지언정 결코 풀뿌리나 씹으며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진 않겠다”며 드높은 야심을 키웠던 인물이다.

그는 안록산의 참모가 되어 모든 거짓 조서와 역모 격문을 손수 지어 올렸으며 나라를 참혹한 전란에 빠뜨렸다.

6. 낙양의 함락과 안진경, 안고경의 의로운 의병 투쟁

안록산의 대군이 파죽지세로 진격하자 하북과 하남 전역의 수많은 고을들이 총 한 번 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평화로운 세월이 오래되어 무기고의 무기들은 썩어 문드러져 쓸 수 없었고 군사들은 겨우 나무 몽둥이(白棒)를 쥔 채 도망치기 바빴다.

마침내 당나라의 동쪽 수도인 낙양(洛陽)이 함락되었고 낙양을 사수하던 유수 이징(李憕)과 어사중승 노역(盧奕)이 체포되어 의연하게 참수당했다.

당시 평원태수(平原太守)로 의병을 일으켰던 명필 안진경(顏真卿)은 적들이 보내온 이징과 노역의 머리를 빼돌린 뒤, 적의 사신을 참수하고 그들의 머리를 깨끗한 물로 정성스레 씻어내며 대성통곡한 뒤 양지바른 곳에 정중히 장사 지내어 천하 군사들의 의로운 눈물을 자아냈다.

안진경의 사촌 형이자 상산태수(常山太守)였던 안고경(顏杲卿) 또한 분연히 일어나 장수 이흠주(李欽凑)의 목을 베고 하북의 15개 군현을 규합하여 안록산의 배후를 끊었다.

이에 당나라 조정은 명장 가섭한(哥舒翰)을 부원수로 삼아 13개 번인 부족의 기병과 한족 군사 등 총 21만 8천 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철옹성 같은 동관(潼關)을 지키게 하니, 안록산은 배후와 전방이 막혀 크게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7. 안록산의 불안과 전건진(田乾真)의 격려

사방에서 토벌군이 구름처럼 몰려들자 안록산은 안절부절못하며 참모 엄장과 고상을 채찍질하려 분노하며 “네놈들이 나에게 반란을 일으키면 백발백중 성공한다고 꼬드겨 놓고, 이제 사방에 관군이 첩첩산중으로 깔렸으니 도대체 성공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네놈들이 나를 파멸의 구렁텅이에 처넣었으니 내 먼저 네놈들을 처형하겠다!”라며 발광했다.

이때 안록산의 맹장인 전건진(아명 아법)이 나서서 침착하게 록산을 설득하기를, “대저 어지러운 세상을 평정하고 창업을 이루는 주군께서 어찌 시작부터 곤경이 없었겠습니까! 한나라 고조 유방도 형양 전투에서 항우에게 목숨을 잃을 뻔하며 낭패를 보았고, 조조 또한 적벽 대전에서 온 군사가 몰살당하는 참패를 겪었으나 마침내 천하를 다스렸습니다. 지금 사방의 관군이 비록 많으나 급조된 신병 오합지졸에 불과하니 우리의 예락하 철기군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설령 역모의 대업이 실패하더라도 옛날 원소(袁紹)처럼 수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굳건한 하북 땅을 점거하고 지키면 족히 5~10년은 황제처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엄장과 고상은 주군을 모신 일등 개국 공신인데 어찌 한때의 조바심 때문에 그들을 내치려 하십니까! 장수들이 이를 들으면 군심이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라고 간언했다.

안록산이 그 합리적인 말에 몹시 기뻐하며 “아법(전건진)의 말이 100번 옳도다! 내가 이미 성질을 내어 그들을 내쫓았으니 이제 어찌 한단 말이냐?”라고 묻자, 전건진은 “술자리를 베풀어 그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키면 온당합니다”라고 답했다. 안록산은 즉시 안방에서 거창한 잔치를 열고 록산 본인이 친히 술잔을 들고 황실 노래인 《경배락(傾杯樂)》을 목청껏 부르며 고상과 엄장에게 술을 권하며 그들의 마음을 극진히 달래니 군심이 다시 단단하게 응집되었다.

8. 안고경과 원려겸의 장렬하고 참혹한 최후

안록산은 맹장 사사명(史思明)과 채희덕에게 보병과 기병 5천 명을 주어 의병의 근거지인 상산성을 포위 공격하게 했다. 상산태수 안고경은 원군이 오지 않아 온 힘이 다하고 성문이 뚫려 마침내 포로가 되었다.

안록산은 배신감에 크게 격노하여 안고경을 낙수교(洛水橋) 기둥에 단단히 묶어두고 “내가 너를 태수로 삼아 은혜를 베풀었거늘 어찌 나를 배신했는가!”라고 꾸짖었다.

안고경은 눈을 부릅뜨고 안록산에게 침을 뱉으며 죽음에 임박해서도 그칠 줄 모르고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안록산의 대죄를 꾸짖었다. 록산이 격노하여 안고경의 혀를 칼로 잘라 버렸으나, 안고경은 잘린 혀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안록산의 얼굴에 내뿜으며 굴복하지 않고 참혹하게 능지처참(脔割)을 당해 장렬히 순국했다.

장사 원려겸(袁履謙) 또한 안록산의 면전에 피를 내뿜으며 극렬하게 항거하다가 온몸이 조각조각 잘려 나가는 끔찍한 형벌을 겪었으니, 구경하던 길가던 세속 백성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차마 눈을 뜨고 보지 못했다.

이후 상산성이 다시 함락되고 하북의 10개 군이 도리어 안록산의 수하에 강제 점령당했다. 천보 15년 6월 8일, 곽자의(郭子儀)와 이광필(李光弼)의 구원군이 가산(嘉山)에서 사사명의 반군을 대파하고 기세를 올렸으나, 동관(潼關)이 끝내 뚫렸다는 비보를 듣고 어쩔 수 없이 북방의 연조(燕趙) 땅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 주요 한자 · 고사성어 풀이

  • 尚書左仆射 (상서좌복야) — 당나라 시기 행정부의 최고 핵심 부서인 상서성(尚書省)의 차석 재상직이자 실질적인 국정을 주재하는 막강한 정2품 관직.
  • 白麻 (백마) — 당나라 조정에서 재상(승상)을 임명하거나 국가의 최고 중대사를 발표할 때 사용하던 황실 전용 최고급 하얀색 마지(麻紙) 조서.
  • 曳落河 (예락하) — 돌궐어로 ‘용맹한 전사(brave warrior)’를 뜻하며, 안록산이 자신의 사병 집단으로 양성한 돌궐 및 거란 출신 8,000명의 최정예 번인 무사 부대.
  • 脔割 (연할/련할) — 살점을 칼로 아주 얇게 하나하나 발라내어 극심한 고통 속에 죽어가게 만드는 동양 역사상의 가장 참혹한 극형이자 능지처참의 일종.
  • 潼關 (동관) — 장안(西安)으로 들어가는 동쪽의 가장 험난하고 거대한 천혜의 요새 관문. 동관이 함락되면 도성인 장안은 고스란히 노출되어 멸망에 직면하게 됨.
  • 糟粕 (조박) —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지게미)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옛 성현들의 훌륭한 역사서나 서적을 겉할기로 읽어 참뜻을 알지 못하고 껍데기만 배우는 것을 경고하는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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