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망론서(坐忘論序)

📚 좌망론(坐忘论) · 제2편

좌망론서(坐忘論序)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나누어지고 삼재(三才: 하늘, 땅, 사람)가 그 자리를 정하니, 사람이 하늘과 땅의 정중앙에 거처하게 되었다. 우주의 다섯 가지 맑은 기운(五氣)이 사람의 몸속에 조화롭게 결합하므로 사람은 본래 능히 건강하게 자라나고 오랫동안 오묘한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은 욕망에 가려 스스로 제 본성(性)을 어둡게 가리고, 헛된 명예를 위해 스스로 제 영묘한 정신(神)을 노예처럼 노역시켜 지치게 만들며, 세상일 때문에 스스로 제 기운(氣)을 어지럽게 뒤흔들어 괴롭히고, 육체의 쾌락을 쫓아 스스로 제 정수(精)를 헛되이 소모해 버린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늘과 땅의 위대한 자연 질서와 하나로 조화롭게 합일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고 스스로 단명하여 삶을 일찍 마감하는 비참한 결과를 마땅히 달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니, 매번 가슴 깊이 뼈에 사무치도록 비통함을 금할 길 없다.

《주역(易)》에서 이르기를 “만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제 참된 본성을 다하여 하늘이 정해준 거룩한 천명(命)에 이른다”고 하였고, 《노자(老子)》에서는 “그 마음의 아집을 텅 비우고 그 배의 참된 기운을 가득 채운다”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늘 욕심이 없는 무위(無)의 상태에서 도의 깊고 오묘한 실상(妙)을 올바르게 관찰한다”고 하였다. 《논어(論語)》에서는 “공자께서는 네 가지 집착을 완전히 끊어내셨으니, 사사로운 주관적 억측이 없으셨고(毋意),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고집이 없으셨으며(毋必), 고착된 편협한 완고함이 없으셨고(毋固), 내 의견만 절대 옳다는 아집이 없으셨다(毋我)”고 하였다. 《맹자(孟子)》에서는 “사람의 천성은 본래 선하다”고 하였고, 또 “나는 내 드높고 공명정대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훌륭히 기른다”고 하였다. 이 위대한 말씀들은 모두가 사람의 소중한 성품과 하늘이 내린 천명(性命)을 굳건히 다스리는 가장 요긴하고 핵심적인 근본 단서이다.

내가 도가(道家)의 깊은 비장 도서(藏書)를 널리 열람하다가, 당나라 정일선생(貞一先生, 시마承禎의 시호)이 지은 《좌망론》 7편과 거기에 덧붙여진 명상의 정수 비결인 추익(樞翼)을 우연히 얻어 보게 되었다.

식견이 실로 거룩하고 비범하며 대도(大道)를 명백하게 가리키고 있으니, 먼저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공경과 믿음(敬信)으로써 깨우치도록 인도하여 마음이 거칠게 날뛰며 미혹되지 않게 만들어 준다. 다음으로 속세의 번뇌스러운 얽매임의 인연인 업장(緣業)을 과감히 끊어내고, 흩어진 마음을 안으로 거두며, 번잡한 세상일을 극히 단순화하여(收心簡事) 육체는 스스로 고요함을 얻고 마음 내면은 밝게 비추도록 가르친다.

그리하여 또 다음 단계로 사물의 참된 실상을 꿰뚫어 보는 올바른 관찰인 진관(真觀)을 제시하니 안팎의 구별이 말끔히 사라지고, 그 뒤에야 비로소 지극하고 태평한 안정인 태정(泰定)의 경지에 우뚝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기운은 지극히 평온하고 신령스러운 정신은 온전히 고요하므로 이를 일컬어 ‘도를 얻었다(得道)’고 부르는 것이다.

앞부분은 모두가 좌망으로 들어가는 단계적 순서와 층차를 질서정연하게 조목조목 친절히 설명하고 있으나, 그 좌망의 전체적인 요지를 총괄하여 요약하면 결국 외부 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제 아집마저 텅 비워(無物無我) 마음속에 단 한 갈래의 사특한 망상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一念不生)에 불과하다.

마치 본문 《경신편(敬信篇)》에서 숨김없이 정면으로 이야기하듯이, 안으로는 제 한 몸뚱이의 감각을 지각하지 못하고 밖으로는 거대한 우주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여, 도(道)와 더불어 아득하게 하나로 합일되고 온갖 쓸데없는 잡념과 시름이 깨끗이 내버려지는 것이다.

성현들의 드높은 클래식과 깊은 경전의 진리를 상고해 보아도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으니, 진실로 좌망의 심오하고 깊은 조화에 도달하게 된다면, 맑은 정신과 참된 기운이 스스로 조화를 이루어 지켜주고, 온몸의 백 가지 맥(百脈)이 기름지게 윤택해지며, 척추를 타고 올라가는 세 개의 기운 통로 관문(三關)이 막힘없이 거침없이 뚫리고, 하늘의 맑은 양기(天陽真氣)가 몸속에 스스로 내려와 포근히 안주하게 된다.

이것이 곧 늙지 않고 오래도록 맑은 통찰을 지니고 살아가는 비결인 장생구시(長生久視)이자, 아무에게나 함부로 전해주지 않는 불전(不傳)의 지극한 대도이기에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온 세상이 가장 높이고 우러러 받들었던 바이다.

참된 신선들이 비참하게 고통받는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참다못해 부득이하게 드러내어 말씀해 주신 비결이니, 도를 배우는 후학들은 조용히 생각을 가라앉혀 깊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마음 써서 몸소 실천해야 할 것이며, 부디 옛사람의 쓸모없는 말라빠진 찌꺼기(糟粕) 따위로 가볍게 넘겨 헛되이 제 스스로 하늘이 준 고귀한 성취의 축복을 걷어차 조롱거리가 되는 우를 범치 말아야 할 것이다.


때는 정미년(丁未年) 가을 중양절(重陽節), 널리 이 숭고한 보물 같은 책을 널리 퍼뜨리고 널리 전파하고자 이 판각 나무판에 새겨 인쇄를 넓히니, 진정거사(真靜居士)가 경건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머리말(序)을 삼가 바친다.


📖 주요 한자 · 고사성어 풀이

  • 三才 (삼재) — 동양 우주론에서 만물을 구성하고 지탱하는 세 가지 근본 기틀인 하늘(天), 땅(地), 사람(人)을 아울러 부르는 말.
  • 長生久視 (장생구시) — 노자 도덕경 제59장에 등장하는 말로, 육신의 기운이 시들지 않고 오랫동안 생명을 보존하여 맑고 신령스러운 대도의 관찰력을 오래 지니는 이상적인 경지.
  • 三關 (삼관) — 도교 내단학 수행에서 기운이 등줄기 척추를 따라 머리끝까지 올라가는 세 개의 핵심 관문(미려관, 협척관, 옥침관)이자 몸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 통로.
  • 一念不生 (일념불생) — 참선과 도가 명상의 드높은 경지로서, 마음에 단 한 갈래의 잡념이나 주관적인 편견, 번뇌하는 망상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극도로 투명하고 조용한 내면 상태.
  • 糟粕 (조박) — 술을 짜내고 남은 말라빠진 지게미(찌꺼기)를 의미함. 옛 성현들의 지혜서나 경전을 읽을 때 깊은 참뜻(에센스)을 얻지 못하고 껍데기 활자만 가볍게 읽는 것을 경계하는 비유.
  • 重陽 (중양) — 음력 9월 9일 중양절을 뜻하며, 양(陽)을 상징하는 홀수 9가 겹치는 상서로운 날로 예로부터 산과 들의 맑은 자연 속에서 도학과 학문을 토론하던 드높은 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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