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요출 후서-송나라소흥연간융서장림지주의제민요술목판각발행경위와권농의도리(後序)

📚 제민요출(齐民要术) · 제11편

후서-송나라소흥연간융서장림지주의제민요술목판각발행경위와권농의도리(後序)


송나라 소흥(紹興) 갑자년(서기 1144년) 여름 4월 18일, 용서(龍舒)의 지주(知州)이신 장사군(張使君, 장림)께서 나에게 사절을 보내 편지를 전하시며 이르기를, “최근 공무의 여가에 《제민요술》을 목판에 새겨 책으로 완성하였으니, 장차 그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고자 하오.”라 하시고, 나에게 이 책의 머리에 얹을 서문(序)을 지어달라 청하셨습니다.

내가 삼가 살펴보니, 《제민요술》은 옛날부터 주로 동주(東州, 중국 동부 지방) 지역에서 많이 유행하였습니다. 내가 태학(太學)의 양학(兩學)에 머물며 공부하던 시절, 동주의 사대부들이 이 《제민요술》에 실린 식물의 재배법과 가축의 기르는 법(种植畜养之法)을 들어 일대의 훌륭한 이야기(美談)로 삼곤 하였습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지극히 기뻐하며 훌륭한 판본(善本)을 구해 한번 읽어보고자 하였으나 끝내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장사군께서 향림거사(芗林居士) 향백공(向伯恭, 향자평) 어른에게서 이 책을 얻으셨다고 합니다. 백공 선생은 젊은 시절부터 늘 학문을 묻고 궁구하는 일에 깊은 뜻을 두었기에, 당대의 내로라하는 명사 및 대사부들이 대부분 그와 더불어 깊이 교유하였고, 귀한 책들을 서로 널리 전하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대저 이 판본은 송나라 천성(天聖) 연간(1023~1032년)에 황실 도서관인 숭문원(崇文院)에서 새긴 목판본으로, 조정의 요직에 있는 중요 인물이 아니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지극히 귀한 보물입니다. 장사군께서 이 귀한 책을 구하시어 자신이 다스리는 주 치소(州治)에서 다시 목판으로 깎아 널리 펴내셨으니, 온 천하 백성들로 하여금 농업에 힘쓰고 곡식을 소중히 여기는 근본의 도(务农重谷之道)를 알게 하고자 하신 장사군의 크고 높으신 뜻과 백성을 사랑하는 정성을 참으로 깊이 헤아릴 수 있습니다.


🌾 농사(稼穑)의 고단함과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의 근본

내가 일찍이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훈계하고자 지어 올린 《서경(書經)》의 〈무일(無逸)〉 편을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농사짓고 거두는(稼穑) 어려움을 알지 못하면 마침내 편안함만을 좇아 방탕해지고 상스럽게 되며, 끝내는 거짓으로 부모를 기만하고 부모를 업신여기기에(侮厥父母) 이른다.

옛 성현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배움과 지혜가 들리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은 오직 농사의 고단함과 땀방울의 무게를 알지 못하기에 그 화가 마침내 자신의 부모를 업신여겨 욕보이는 데까지 이르러도 두려워할 줄 모른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도덕과 교화를 해침이 어찌 작다고 하겠습니까!

나는 늘 예나 지금이나 백성과 가장 가까이 숨 쉬는 목민관(親民之官)으로는 고을의 수령(守令, 태수와 현령)만 한 자리가 없으며, 따라서 모든 수령은 백성에게 농사를 권장하는 것(勸農)을 가장 으뜸가는 공무의 직분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한(前漢)의 대표적인 순리(循吏, 법도를 지키며 백성을 사랑한 어진 관리)인 소신신(召信臣)과 공수(龔遂) 같은 훌륭한 선배들은 모두 몸소 논밭의 밭두둑(阡陌)을 누비며 백성들에게 부지런히 경작할 것을 권유하였고, 심지어 백성들로 하여금 칼을 팔아 송아지를 사고, 검을 팔아 밭 가는 소를 사도록(賣刀買犢, 賣劍買牛) 이끌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제 장사군께서 책에 농경과 수확의 긴요한 비결을 가득 담아 백성들에게 널리 베푸시니, 이는 가히 모든 보통 백성들이 법으로 삼아 본받을 만한 위대한 모범(齊民法)입니다. 그의 어질고 훌륭한 공적은 저 서한(西漢) 시절의 위대한 순리들 아래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용서(龍舒, 융서)라는 고을은 비옥한 토지가 천 리에 달하고 물고기와 쌀(魚稻)이 풍요로운 땅으로, 일찍이 오(吳)나라와 위(魏)나라의 삼국시대 이래로 군사들이 직접 둔전(屯田)을 일구며 변방을 튼튼히 다지던 유서 깊은 요충지입니다. 이곳에 어진 지주(장사군)께서 왕림하시어 농사를 지극히 권장하고 보살피시니, 용서 땅의 풍요로움과 백성들의 화평함은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 후서를 지으며 얻은 깨달음과 목민관의 다짐

나 갈우지(葛佑之) 또한 여러 주현(州縣)을 떠돌아다니며 벼슬살이를 하다가, 늙그막에 비로소 작은 고을(無爲軍)의 수령을 맡아 백성을 다스리고 사직을 지키는 소임을 받았습니다. 이 고을에서 다행히 장사군께서 보내주신 정성스러운 목판 인쇄본을 선물로 받게 되어 매일 책장을 넘겨 종관(縱觀, 마음껏 자세히 읽음)하고 있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이 책의 지혜를 온전히 실천하여 나의 관할 백성들을 돕고 가난에서 구해낸다면, 나라에서 농사를 권장하라고 세워준 권농관(勸農之官)의 무거운 직분을 저버리지 않게 될 것이니, 이 어찌 나에게도 지극한 행운이자 큰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장사군의 이름은 린(辚, 장림)이고 자(字)는 예성(彦声)이며, 지난날 제남(濟南) 땅이 배출한 지극히 훌륭하고 의로운 선비입니다. 일찍이 월나라 지방인 상우현(上虞縣)의 현령으로 재직할 때, 고을에 농사일에 힘쓰는 부지런한 백성들이 무척 많았는데 현령(장림)께서 친히 몸소 정성으로 농사를 권장하셨기에, 관아의 세금과 공물(租賦)이 독촉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한 전에 다 걷히는 치세를 이루었습니다. 또한 구강군(九江郡)의 승(丞)을 지내시며 그 훌륭한 교화와 사랑을 넓은 장강과 한수(江漢)의 물길 사이에 가득 퍼뜨리셨습니다. 그 뒤 구강군에서 은혜로운 치세를 인정받아 용서(龍舒)의 지주로 발탁되시니 명예로운 소문은 더욱 아름다워졌고 백성들이 입은 실제 공덕의 이익은 날로 넓고 깊어졌습니다.

이제 관무의 여가인 남은 힘을 다하여 이 방대한 실학 농서를 목판에 정교하게 깎아 후세에 영원한 훈계와 지침으로 남겨주셨으니, 훗날 조정의 부름을 받아 큰 도를 온 천하에 펼치실 날에 그 이루실 위대한 공적을 어찌 감히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소흥 갑자년 여름 4월 18일, 좌조산랑(Left Chaosan Lang, 左朝散郎)이며 권발견무위군(Acting Prefect of Wuwei, 權發遣無為君)이자 주관학사(Chief Academic Administrator, 主管學事) 겸 관내 권농영전사(Agricultural Encouragement Administrator, 管內勸農營田事)인 진강(鎮江) 출신 갈우지(葛佑之)는 삼가 머리 숙여 이 후서를 올립니다.


📖 주요 한자 · 고사성어 풀이

  • 稼穑 (가색) — ‘稼(심을 가)’는 파종하여 농작물을 심는 것을 뜻하고, ‘穑(거둘 색)’은 다 자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수확을 뜻합니다. 농사의 고단함과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부의 노고를 비유하는 전통적인 한자어입니다.
  • 無逸 (무일) —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으로, 주나라 주공(周公)이 조카인 성왕(成王)에게 안일하고 방탕한 생활을 경계하고 농사짓는 백성의 괴로움을 깊이 헤아려 정사에 힘쓸 것을 당부한 제왕학의 바이블입니다.
  • 循吏 (순리) — 준법정신이 투철하고 청렴결백하면서도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하여 교화와 권농에 힘쓴 어진 관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사마천의 《사기》 순리열전에서 유래했습니다.
  • 賣刀買犢 (매도매독) — ‘칼(무기)을 팔아 송아지(농기구)를 산다’는 뜻으로, 한나라의 어진 수령 공수(龔遂)가 도적이나 무뢰한들에게 무기를 버리고 농경에 전념하여 선량한 농민으로 돌아오도록 권장한 유명한 권농 일화에서 유래한 성어입니다.
  • 權發遣 (권발견) — 송나라 관직 제도에서 정식 임명 절차를 밟기 전에 임시로 해당 고을의 책임자(지주 또는 태수)로 임명되어 파견되는 임시 수령 관직 명칭입니다. ‘權’은 임시(Acting)를 뜻합니다.
  • 崇文院 (숭문원) — 송나라 시대의 황실 도서관이자 비서 성역으로, 국가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고 목판 인쇄를 전담하던 핵심 중앙 학술 기관입니다. 이곳의 천성 연간 판본은 극도로 희귀한 명품 판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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