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밭에서 마주친 기괴한 존재, 교중괴(蕎中怪)
밤안개가 자욱한 메밀밭, 누군가 내 소중한 수확물을 훔쳐 가려 한다면? 단순히 도둑인 줄 알았던 존재가 상상도 못 할 거대 귀신이었다면 어떨까요? 《요재지이》에 수록된 짧지만 강렬한 공포담, 교중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 원문 (原文)
蕎中怪
長山安翁者,性喜操農功。秋間蕎熟,刈堆隴畔。時近村有盜稼者,因命佃人乘月輦運登場,俟其裝載歸,而自留邏守。遂枕戈露臥。目稍瞑,忽聞有人踐蕎根咋咋作響。心疑暴客,急舉首,則一大鬼高丈餘,赤發盨須,去身已近. 大怖,不遑他計,踴身暴起狠刺之。鬼鳴如雷而逝。恐其復來,荷戈而歸。迎佃人於途,告以所見,且戒勿往。衆未深信。
越日曝麥於場,忽聞空際有聲。翁駭曰:「鬼物來矣!」乃奔,衆亦奔。移時復聚,翁命多設弓弩以俟之。異日果復來,數矢齊發,物懼而遁。二三日竟不復來。麥既登倉,禾黠雜遝,翁命收積為垛,而親登踐實之,高至數尺。忽遙望駭曰:「鬼物至矣!」衆急覓弓矢,物已奔翁。翁僕,齕其額而去。共登視,則去額骨如掌,昏不知人。負至家中,遂卒。後不復見。不知其為何怪也。
2. 직역 (直譯)
장산의 안씨 노인은 성품이 농사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가을철에 메밀이 익어 밭두둑 가에 베어 쌓아두었다. 당시 근처 마을에 곡식을 훔치는 자가 있어, 전호(소작인)들에게 명령하여 달빛을 타고 수레로 실어 타작마당으로 운반하게 하고, 그들이 실어 돌아가는 것을 기다리며 자신은 남아서 순찰하며 지켰다. 드디어 창을 베고 노숙하였다.
눈을 조금 감았는데, 문득 누군가 메밀 뿌리를 밟아 바스락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다. 마음으로 사나운 손님(도둑)이라 의심하여 급히 머리를 드니, 한 큰 귀신이 높이가 일 장 남짓이고 붉은 머리카락에 덥수룩한 수염을 하였는데, 몸과의 거리가 이미 가까웠다. 크게 공포스러워 다른 계책을 낼 겨를도 없이 몸을 솟구쳐 갑자기 일어나 모질게 찔렀다. 귀신이 천둥 같은 소리를 지르며 사라졌다. 그것이 다시 올까 두려워 창을 메고 돌아갔다. 길에서 전호들을 만나 본 바를 고하고 또한 가지 말라고 경계했다. 무리는 깊이 믿지 않았다.
날이 지나 마당에서 보리를 말리는데 문득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다. 노인이 놀라 말하기를 “귀신이 왔다!” 하고는 달아나니 무리 또한 달아났다. 시간이 지나 다시 모이자 노인이 명령하여 노궁(활)을 많이 설치하고 기다리게 했다. 다른 날 과연 다시 오니 여러 화살이 일제히 발사되었고 괴물은 두려워하며 달아났다. 2~3일 동안 끝내 다시 오지 않았다.
보리가 이미 창고에 들어가고 볏가리가 어지러이 쌓이자, 노인이 그것을 거두어 쌓아 더미를 만들게 하고는 친히 올라가 밟아서 다졌는데 높이가 수 척에 이르렀다. 문득 멀리 바라보다 놀라 말하기를 “귀신이 왔다!” 하였다. 무리가 급히 활과 화살을 찾았으나 괴물은 이미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노인이 넘어지자 그 이마를 깨물고 사라졌다. 함께 올라가 보니 이마뼈가 손바닥만큼 없어져 혼미하여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업어서 집에 도착했으나 곧 죽었다. 후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니 그것이 어떤 괴물인지 알 수 없다.
3. 번역 (意譯)
장산에 사는 안 노인은 농사일에 유독 애착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가을, 잘 익은 메밀을 베어 들판에 쌓아두었는데, 도둑이 극성을 부린다는 소문에 안 노인은 밤새 직접 밭을 지키기로 결심했습니다. 달빛 아래 창을 베개 삼아 잠시 눈을 붙이려던 찰나, 메밀 밑동을 밟는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도둑인 줄 알고 벌떡 일어난 노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키가 3미터가 넘고 붉은 머리에 텁수룩한 수염을 기른 거대한 귀신이었습니다! 노인은 본능적으로 창을 휘둘러 귀신을 찔렀고, 귀신은 천둥 같은 비명을 지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후로도 귀신의 괴롭힘은 계속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활을 쏘며 대항하자 한동안 잠잠해지는 듯했지요.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습니다. 수확한 곡식을 정리하던 어느 날, 귀신이 다시 나타나 순식간에 안 노인을 덮쳤습니다. 귀신은 노인의 이마를 한입 베어 물고는 사라져 버렸고, 노인은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괴물이 대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4. 고대 언어 해석 및 주석 (註釋)
- 操農功(조농공): 농사일에 힘쓰다. ‘操’는 잡다, 다루다의 뜻으로 여기서는 가업에 종사함을 의미합니다.
- 輦運(연운): 수레로 실어 나르다. ‘輦’은 원래 손수레를 뜻합니다.
- 枕戈(침과): 창을 베고 자다. 잠시도 방심하지 않고 경계하는 모습을 비유하는 성어 ‘침과대단(枕戈待旦)’에서 유래했습니다.
- 咋咋(사사): 물건을 씹거나 밟을 때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입니다.
- 盨須(수수): ‘盨’는 고대 청동 그릇을 뜻하며, 여기서는 수염이 그릇처럼 둥글고 덥수룩하게 난 모양을 묘사합니다.
- 不遑(불황): ~할 겨를이 없다. 매우 급박한 상황을 나타냅니다.
- 齕(흘): 깨물다, 씹다. 귀신이 노인의 이마를 잔인하게 공격했음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 禾黠(화할): 볏가리. 수확한 곡식을 쌓아둔 더미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