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요출 1권 권일-밭갈기,씨앗수확,곡식파종(卷一)

📚 제민요출(齐民要术) · 제1편

권일-밭갈기,씨앗수확,곡식파종(卷一)


《주서(周書)》에서 이르기를: ‘신농(神農)씨 시절에 하늘에서 곡식 비가 내리니, 신농씨가 마침내 밭을 갈고 씨앗을 심었다. 질그릇을 빚고 쇠도끼를 벼려 쟁기와 쟁기 날, 호미와 고무래를 만들어 우거진 잡초를 개간하니, 비로소 오곡이 흥성하고 온갖 과실이 알차게 여물었다.’

《세본(世本)》에서는 ‘수(倕)가 쟁기(耒耜)를 발명했다’고 하였고, ‘수는 신농의 신하였다’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는 ‘쟁기 날의 너비는 여섯 치(六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아(爾雅)》에서는 ‘구축(斪斸)을 정(定)이라 부른다’고 했으며, 건위사인은 ‘구축은 호미(鋤)이며 그 이름이 정이다’라고 해설했습니다. 《찬문(纂文)》에서는 ‘싹을 기르는 도리로는 호미(鋤)가 고무래(耨)만 못하고, 고무래는 삽(铲)만 못하다. 삽의 자루는 길이가 두 자(二尺)이고 날의 너비는 두 치(二寸)이니, 땅을 깎아내어 잡초를 제거하는 데 쓴다’고 하였습니다.

허신(許慎)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뇌(耒)는 손으로 밭을 가는 굽은 나무이고, 사(耜)는 뇌의 끝에 달린 나무(보습)이다’라고 했으며, ‘축(斸)은 찍어 베는 도구로 제나라에서는 자기(鎡基)라고 부르고, 혹은 자루가 자연스레 굽은 도끼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밭(田)은 늘어서 있는 것을 뜻하며, 곡식을 심는 곳을 밭이라 하니, 네 개의 입(口) 모양과 십(十) 자 모양은 밭둑(阡陌)의 제도를 본뜬 것이다’라고 하였고, ‘밭갈이(耕)는 쟁기질하는 것이며 뇌(耒)를 따르고 정(井)의 소리를 취한 형성자이다. 일설에는 옛날의 정전제(井田制)에서 유래했다’고 해설했습니다.

유희(劉熙)의 《석명(釋名)》에서는 ‘밭(田)은 메우는 것(填)이니, 오곡이 그 가운데에 가득 메워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쟁기(犂)는 날카로움(利)이니, 날카로우면 흙을 뒤집고 풀뿌리를 끊어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호(薅)는 호미와 비슷하며 벼의 김을 매는 것이고, 축(斸)은 벤다(誅)는 뜻이니 주로 잡초의 뿌리와 밑동을 베어 없애는 도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산과 늪의 개간 및 밭갈이의 기본

무릇 산과 늪지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밭으로 만들 때는, 모두 7월에 잡초를 베어내어 풀이 마른 뒤에 불을 놓습니다. 봄이 오면 큰 나무들은 우갱절(𠠜)의 방법으로 껍질을 베어내어 말려 죽임으로써 잎이 그늘을 지지 않게 한 뒤, 마음껏 밭을 갈고 씨앗을 심습니다. 3년이 지나 뿌리와 줄기가 썩으면 불로 태워 땅속으로 완전히 흡수되게 만듭니다. 황무지를 갈아엎은 뒤에는 철니써레(鐵齒𨫒楱)로 두 번 갈아 다듬고 조와 기장의 씨앗을 흩뿌린 뒤에 흙 갈개(勞)로 다시 두 번 덮어 줍니다. 이듬해에는 비로소 훌륭한 곡식 밭이 됩니다.

고지대나 저지대의 밭을 갈 때는 봄갈이든 가을갈이든 흙의 마르고 젖음이 적당한 때를 맞추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만약 가뭄과 장마의 조화가 맞지 않는다면, 차라리 마른 상태에서 가는 것이 젖은 상태에서 가는 것보다 낫습니다. 마른 흙을 갈면 비록 흙덩이가 크게 져도 비를 한번 맞으면 저절로 고운 가루처럼 부서집니다. 그러나 젖은 상태에서 밭을 갈면 흙이 단단히 굳어버려(堅垎) 수년 동안 농사가 잘 되지 않습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젖은 밭을 갈고 늪에서 김을 매느니,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눕는 게 낫다’고 했으니, 젖은 경작은 이로움이 없고 해로움만 있음을 뜻합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젖은 상태에서 갈았다면, 겉이 마르기 시작할 때(白背) 재빨리 써레질을 해 주어야 큰 해가 없습니다. 봄갈이는 쟁기가 지나가는 즉시 뒤따라 흙 갈개로 다듬어야 하니, 이를 옛날에는 ‘우(耰)’라 불렀고 지금은 ‘노(勞)’라 부릅니다. 《설문해자》에서는 ‘우는 밭을 문지르는 도구’라 했고, 지금 사람들은 이를 ‘마(摩)’라고도 불러 속어로 ‘밭갈고 문지른다(耕田摩勞)’고 합니다. 가을갈이는 흙 표면이 하얗게 마르기(白背)를 기다려 다듬어 줍니다. 봄에는 바람이 많으므로 곧바로 다듬지 않으면 지력이 허해지고 바짝 마릅니다. 가을 밭은 잡초 뿌리가 썩어 땅이 단단해져야 하므로, 젖은 상태에서 다듬으면 땅이 너무 굳어집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밭만 갈고 흙을 다듬지 않는 것은, 뙤약볕에 땅을 노출시키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였으니, 이는 흡족한 대지의 기운(澤)을 만나기 어렵고 하늘의 때를 기뻐해야 함을 뜻합니다. 환관(桓寬)의 《염철론(鹽鐵論)》에서는 ‘우거진 나무 아래에는 풍성한 풀이 없고, 커다란 흙덩이 사이에는 고운 싹이 자라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가을갈이는 깊게 하기를 바라고, 봄과 여름갈이는 얕게 하기를 바랍니다. 쟁기질은 미세하고 조밀하게(犂欲廉) 해야 하고, 흙다듬기는 거듭(勞欲再) 해야 합니다. 쟁기질이 미세하고 촘촘하면 흙이 곱게 갈리고 소도 피로하지 않으며, 거듭 다듬어 흙이 부드러워지면 가뭄이 들어도 땅의 수분(澤)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가을갈이를 할 때는 푸른 잡초를 파묻는 것(䅖青)을 으뜸으로 삼습니다. 겨울에 이르러 푸른 풀이 다시 돋아나면 그 땅의 비옥함이 소두(팥)를 섞어 심어 기른 거름 땅과 같습니다. 처음 밭을 갈 때는 깊게 하고, 다시 갈아엎을 때는 얕게 해야 합니다. 처음에 깊게 갈지 않으면 흙이 부드러워지지 않고, 다시 갈아엎을 때 얕게 하지 않으면 속의 거친 생흙(生土)이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띠풀(菅茅)이 우거진 거친 땅은 마땅히 소와 양을 풀어 밟게 만들어야 뿌리가 위로 뜨게 됩니다. 7월에 갈아엎으면 풀이 죽지만, 7월이 아닐 때 갈면 풀이 다시 살아납니다.

밭을 비옥하게 만드는 방법으로는 녹두(綠豆)를 재배하여 갈아엎는 것이 으뜸이고, 소두(팥)와 참깨(胡麻)가 그 다음입니다. 모두 5월이나 6월에 흩뿌려 심은 뒤, 7월과 8월에 쟁기로 갈아엎어 풀을 썩혀서 봄 곡식 밭으로 삼으면, 1무당 무려 열 섬(十石)을 수확할 수 있으니, 그 비옥함이 누에 똥이나 잘 썩은 거름을 준 것과 똑같습니다.

가을 수확이 끝난 뒤에 소의 힘이 약하여 미처 가을갈이를 하지 못한 밭은 조, 기장, 수수 등을 수확한 그루터기 아래를 날카로운 써레(锋)로 즉시 긁어주어야 땅이 항상 촉촉함을 유지하고 단단히 굳지 않습니다. 그리하면 초겨울에 이르기까지 언제든 밭을 갈고 다듬을 수 있어 가뭄을 걱정하지 않게 됩니다. 만약 소의 힘이 많이 부족하다면, 단지 9월과 10월에 한 번 써레질을 해두었다가 이듬해 봄에 파종해도 풍작을 거둘 수 있습니다.


📖 예기 월령의 농업 지침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이르기를: ‘초봄(孟春之月)에… 천자가 비로소 길일(元日)을 택해 상제에게 오곡의 풍년을 기원한다.’ 정현(鄭玄)은 ‘상신(上辛)일에 교외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을 뜻한다. 《춘추전》에서 이르기를 봄에 교외에서 후직에게 제사 지내 농사 풍년을 비나니, 그러므로 경칩에 제사 지내고 제사 지낸 뒤 밭을 간다. 상제는 태미(太微)의 황제다’라고 풀이했습니다. 이에 좋은 별자리 때(元辰)를 골라 천자가 직접 보습과 쟁기를 수레에 싣고 삼공, 구경, 제후, 대부를 거느리고 친히 황제의 친경 밭(帝籍)을 갑니다. ‘원신은 제사 지낸 뒤의 길한 날이고, 제적은 천신을 위해 백성의 힘을 빌려 짓는 밭이다.’… 이 달에는 하늘의 기운이 내려오고 땅의 기운이 솟구치니, 천지가 서로 화합하여 풀과 나무가 싹트기 시작합니다. ‘이는 양기가 솟구쳐 오르는 밭갈이의 시기다. 농서에서 흙이 솟아올라 나무 말뚝을 덮고, 묵은 풀뿌리를 쉽게 뽑을 수 있게 되면 밭가는 이는 급히 쟁기질을 시작하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이에 전사(田司, 농관)에게 명하여… 구릉과 언덕, 평원과 습지의 높낮이를 잘 살펴 땅에 알맞은 파종 법을 지도하게 합니다. 농사일이 잘 정돈되어 기준을 곧게 세우면 농부들이 미혹되지 않습니다.

‘중춘(仲春, 2월)의 달에는… 밭가는 이가 조금 쉬면서 문과 빗장을 수리합니다. 정현은 들이며 닫는 문짝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대사(국가적 토목 공사)를 일으켜 농사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맹하(孟夏, 4월)의 달에는… 농부를 격려하고 백성들에게 권면하여 때를 잃지 않게 합니다. 전심으로 일에 힘쓰게 하여 도성 안에서 노닐며 쉬지 못하게 하니, 이는 농사를 재촉하는 것입니다.’

‘계추(季秋, 9월)의 달에는… 땅속에 숨는 벌레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흙으로 문을 바르고 들어앉습니다. 이는 가을의 차가운 살기를 피하기 위함입니다.’

‘맹동(孟冬, 10월)의 달에는… 날씨가 흐르고 땅의 기운이 내려가 천지가 통하지 않고 겨울이 완성됩니다. 농부들을 위로하여 쉬게 하니, 고을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나이순으로 자리를 정하는 때입니다.’

‘중동(仲冬, 11월)의 달에는… 흙 일을 하지 않고 집을 허물거나 지붕을 들치지 않습니다. 땅의 기운이 새어 나가 하늘과 땅의 방(房)을 열면 땅속의 벌레들이 죽고 백성에게 전염병이 돌기 때문입니다. 큰 음의 기운이 지배하니 굳게 감추는 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생각건대 오늘날 세상에 10월과 11월에 밭을 가는 자들이 있으니, 이는 천도를 거스르고 곤충을 해치며 땅에 기름짐을 없애 수확을 극히 적게 만드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계동(季冬, 12월)의 달에는… 전관(농관)에게 명하여 백성들에게 오곡의 씨앗을 준비하라 일러줍니다. 엄동설한이 지나 농사가 곧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농부들에게 짝을 지어 함께 갈 밭을 계산하게 하고, 보습과 쟁기를 수리하고 농기구를 온전히 갖추게 합니다. 이 달에는 해와 달의 운행이 끝을 향하고 별들이 돌아 수명이 다하니, 해가 바뀌어 새로 시작되는 때라 오직 농민들에게만 힘쓰고 다른 부역을 시키지 않습니다. 부역을 시키면 마음이 흩어져 농업을 잃기 때문입니다.’


📖 동양 고전 속 밭갈이의 지혜

《맹자(孟子)》에서 이르기를: ‘선비가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은 농부가 밭을 가는 것과 같다.’ 조기(趙岐)는 주석에서 ‘벼슬함이 급박함이 마치 농부가 밭 갈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음을 이른다’고 했습니다.

위나라 문후(文侯)는 ‘백성들은 봄에는 온 힘으로 밭을 갈고, 여름에는 힘껏 김을 매며, 가을에는 수확하여 거둔다’고 했습니다.

《잡음양서(雜陰陽書)》에서는 ‘해(亥)일은 하늘의 곡간(天倉)이니 밭갈이를 시작하는 날이다’라고 했습니다.

《여씨춘추》에서는 ‘동지 후 57일이 지나면 창포(昌)가 돋아난다. 창포는 온갖 풀 중에 가장 먼저 돋아나니, 이때 비로소 밭갈이를 시작한다’고 했고, 고유(高誘)는 주석에서 ‘창포는 물풀이다’라고 했습니다.

《회남자(淮南子)》에서는 ‘밭을 가는 것은 고되고 베를 짜는 것은 번거롭습니다. 번거롭고 고된 일임에도 백성들이 이를 그만두지 않는 까닭은 의식을 얻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상정은 의식이 없이는 살 수 없으니, 의식의 도리는 반드시 농사와 길쌈에서 시작됩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매우 고되나 마침내는 모든 이에게 큰 이익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밭을 갈 줄 모르면서 수수와 기장을 탐하고, 길쌈할 줄 모르면서 좋은 옷 입기를 즐겨하니, 일은 하지 않고 공적만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판승지서(氾勝之書)》에서는 ‘밭갈이의 근본은 때를 맞추고(趣时), 흙을 조화롭게 하며(和土), 거름과 수분을 보존하고(务粪泽), 일찍 김매고 일찍 거두는 데(早锄早获) 있다’고 하였습니다.

‘봄에 얼음이 풀려 땅의 기운이 비로소 통하면 흙이 조화롭게 부서집니다. 하지에는 날씨가 더워지고 음의 기운이 솟아나 흙이 다시 풀립니다. 하지 후 90일이 지나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면 천지의 기운이 화합하니, 이때 밭을 갈면 한 번의 수고로 다섯 배의 수확을 올릴 수 있어 이를 기름진 혜택(膏澤)이라 부르고 모두 제때의 공을 얻는 것입니다.’

‘봄에 땅의 기운이 통할 때 견고하고 단단한 검은 점토 밭(黑垆土)을 깊이 갈 수 있습니다. 쟁기질을 하자마자 흙을 평평하게 갈아 덮어 풀이 돋아나게 하고, 풀이 돋아나면 다시 갈아엎습니다. 보슬비가 내리면 또다시 갈아엎고 조화롭게 다듬어 흙덩이가 없게 하여 때를 기다립니다. 이것이 단단한 흙을 부드럽게 만드는 방법(強土而弱之)입니다.’

‘봄에 땅의 기운이 통하는 징후를 보려면: 길이 한 자 두 치의 말뚝을 박아 한 자는 땅에 묻고 두 치만 겉으로 보이게 합니다. 입춘이 지난 뒤 흙덩이가 흩어지고 흙이 부풀어 올라 말뚝 끝이 묻히며 묵은 풀뿌리를 쉽게 뽑을 수 있을 때가 바로 때입니다. 이때로부터 20일이 지나면 따뜻한 기운이 사라지고 흙이 다시 굳어지니, 제때에 갈면 한 번의 노력으로 네 배의 결실을 맺으나 때를 놓쳐 갈면 네 번을 갈아도 한 번만 못합니다.’

‘살구꽃이 처음 피어날 때는 가볍고 부드러운 흙(弱土)을 갈아엎습니다. 살구꽃이 질 무렵에 다시 한번 갈고 흙덩이를 잘 다듬어 줍니다. 풀이 돋아나고 비가 내리면 다시 갈고 거듭 다듬어 줍니다. 만약 지극히 가벼운 모래흙이라면 소와 양을 풀어 밟게 만들어 단단하게 해야 하니, 이것이 부드러운 흙을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弱土而強之)입니다.’

‘봄기운이 미처 통하지 않았을 때 밭을 갈면 땅이 메마르고 수분을 머금지 못해 연중 농사에 적합하지 않으며 거름을 주지 않으면 풀리지 않습니다. 가뭄에 성급히 밭을 갈아서는 안 됩니다. 풀이 돋아나 밭갈기에 알맞은 때가 오면 비가 내릴 때 즉시 갈아엎습니다. 그리하면 흙이 부드럽게 융합되고 잡초는 썩어 문드러져 훌륭한 밭이 되니, 한 번 가는 것이 다섯 번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 가뭄에 갈아엎으면 흙덩이가 돌처럼 단단해져 싹과 잡초가 같은 구멍에서 솟구쳐 나와 김을 맬 수 없게 되니 도리어 밭을 망치게 됩니다. 가을에 비가 내리지 않는데 밭을 갈면 땅의 기운이 끊어지고 흙이 갈라져 굳어지니 이를 납전(腊田)이라 부릅니다. 한겨울에 밭을 갈면 음의 기운이 빠져나가고 흙이 건조해지니 이를 포전(脯田)이라 부릅니다. 납전과 포전은 모두 땅을 상하게 하므로 2년 동안 농사를 짓지 못하고 1년 동안 묵혀두어야 합니다.’

‘무릇 밀밭은 항상 5월에 갈고, 6월에 다시 갈며, 7월에는 갈지 않고 오직 평평하게 흙을 다듬어 파종 시기를 기다립니다. 5월에 갈면 한 번으로 세 배의 공이 있고, 6월에 갈면 두 배의 공이 있으나, 만약 7월에 갈면 다섯 번을 수고해도 한 번만 못합니다.’

‘겨울에 비나 눈이 멈추면 즉시 흙 갈개로 다듬어 눈을 흙으로 덮어두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합니다. 다시 눈이 내리면 거듭 다듬어 덮어 줍니다. 그리하면 입춘에 대지의 수분을 머금고 해충이 얼어 죽어 이듬해 농사가 지극히 화창해집니다.’

‘하늘의 조화로운 제때를 얻고 대지의 이로움을 온전히 맞춘다면, 비록 척박하고 거친 황무지라 할지라도 1무당 무려 열 섬(十石)을 거둘 수 있습니다.’

《사민월령(四民月令)》에서 이르기를: ‘정월에는 대지의 기운이 솟아나 땅이 부풀고 묵은 뿌리를 뽑을 수 있으니, 단단한 검은 점토 밭을 서둘러 일굽니다. 2월에는 얼어붙은 땅이 완전히 풀려 수분이 가득하니 기름진 밭과 부드러운 강변 밭을 일굽니다. 3월에는 살구꽃이 흐드러지니 모래흙이 섞인 가벼운 밭을 개간합니다. 5월과 6월에는 밀밭을 갈아엎습니다.’

《정론(政論)》에 이르기를: ‘한나라 무제 때 조과(趙過)를 수속두위로 삼아 백성에게 경작법을 가르치게 했다. 그 법은 쟁기 세 개를 소 한 마리가 끌게 하고 한 사람이 고삐를 잡고 씨를 뿌리며 쟁기를 끄니 온갖 도구가 다 갖추어졌다. 하루에 무려 1경(頃)의 땅을 파종하니 오늘날 삼보의 백성들이 여전히 그 이로움에 의지한다. 지금 요동의 쟁기는 자루의 길이가 4자나 되어 회전하기가 지극히 거추장스럽고, 소 두 마리를 부리며 두 사람이 끌고 한 사람이 쟁기를 잡으며 또 한 사람이 씨를 뿌리고 두 사람이 써레를 끄니, 모두 소 두 마리와 여섯 사람의 노동력이 들어가 하루에 겨우 25무를 심을 뿐이다. 그 현격한 차이가 이와 같다.’ (세 개의 쟁기를 소 한 마리가 끄는 것은 오늘날의 세 발 써레와 같을 것이나, 그 구체적인 갈이 법은 알기 어렵습니다. 지금 제주 서쪽 지역에서는 여전히 긴 자루 쟁기와 두 발 써레를 씁니다. 긴 자루는 평지에서는 쓸 만하나 산간 골짜기에서는 부릴 수 없고 회전하기가 매우 곤란하여 힘이 드니, 제나라 사람들의 부드럽고 편리한 울려(蔚犂, 굽은 쟁기)만 못합니다. 두 발 써레는 이랑에 너무 조밀하게 심어지므로 외발 써레의 적당함만 못합니다.)


《제민요술(齐民要术)》 권일 : 제2장 씨앗 수확(收种第二)

양천(楊泉)의 《물리론(物理論)》에서 이르기를: ‘량(粱)은 기장과 조(黍稷)의 총칭이고, 도(稻)는 물을 대어 기르는 모든 벼의 총칭이며, 숙(菽)은 모든 콩 종류의 총칭이다. 이 세 가지 곡식이 각각 스무 가지 종류가 있어 예순 가지가 되고, 채소와 과일 종류가 각각 스무 가지가 되어 곡식의 수확을 도우니 합하여 백 가지 종류가 된다. 그러므로 시경에서 백 가지 곡식을 널리 심는다고 노래한 것이다.’


📖 오곡 씨앗의 엄격한 선별과 보관

무릇 오곡의 씨앗은 습기가 차고 눅눅하게 묵혀두면 싹이 나지 않으며, 간신히 싹이 나더라도 이내 시들어 죽습니다. 여러 품종이 잡다하게 섞인 씨앗을 심으면 자라나고 여무는 시기가 들쭉날쭉하여 수확할 때 덜 여문 것이 많고 찧을 때 손실이 큽니다. 또 시장에 내다 팔아도 잡것이 섞였다 하여 제값을 받지 못하며, 밥을 지어도 어떤 것은 설익고 어떤 것은 타버려 밥맛의 법도를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씨앗의 선별은 지극히 마음을 쏟아 정성을 다해야지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조, 기장, 수수, 팥 등은 매년 수확할 때 반드시 구역을 나누어 별도로 거두며, 이삭이 크고 튼튼하며색이 순수한 최고급 이삭만을 골라 낫으로 조심스레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바짝 말립니다. 봄이 오면 이를 털어 내어 별도로 갈무리해 두고 이듬해의 씨앗으로 삼습니다. 써레를 부려 파종할 때는 1무당 정확히 씨앗 1되(一斗)가 들어갑니다. 집안 밭의 크기를 헤아려 필요한 씨앗의 양을 가늠해 파종합니다. 씨앗을 거두기 위한 특별한 번식 밭은 잡초를 수없이 베어 김을 매주어야 합니다. 김을 많이 맬수록 알곡에 겨가 끼지 않고 속이 꽉 찹니다. 씨앗은 먼저 털어서 다른 곡식과 섞이지 않도록 정결하게 마당을 치운 뒤 별도의 움집 구덩이(窖)를 파서 묻습니다. 구덩이에 묻는 것이 그릇에 담아 보관하는 것보다 훨씬 우수합니다. 곡식을 털고 남은 짚풀(蘘草)로 구덩이 입구를 단단히 덮어 봉해둡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잡곡과 섞여버리는 우환이 생깁니다. 씨앗을 심기 약 20일 전에 구덩이를 열어 깨끗한 물로 씨앗을 씻어내고(水洮), 물 위로 둥둥 뜨는 쭉정이와 가라앉는 잡초 씨앗을 깨끗이 걸러내면 밭에 강아지풀(莠)이 자라지 않습니다. 걸러낸 알곡은 뙤약볕에 바짝 말려 파종합니다. 《주관(周官)》의 법도에 따라 땅의 성질을 잘 관찰하여 거름과 씨앗을 조화롭게 섞어 줍니다. 《판승지서》에서 이르기를 ‘말을 곡식 더미 근처로 끌고 가 몇 모금 먹이고, 말 발걸음으로 곡식을 밟고 지나가게 한 뒤 씨앗으로 삼으면 벌레가 꼬이지 않고 해충을 능히 물리친다’고 했습니다.

《주관》에 이르기를: ‘초인(草人, 토양을 담당하는 관원)은 토지를 아름답게 개선하는 법(土化之法)을 맡아, 땅의 색과 모양을 보고 그 성질에 알맞은 씨앗을 골라 권장한다.’ 정현은 ‘토화의 법은 땅을 비옥하게 가꾸는 것으로 판승지의 농법과 같다. 땅의 형상과 색을 보고 노랗거나 하얀 땅에는 조와 기장 같은 곡식을 심는 법이다’라고 풀이했습니다. 무릇 거름물에 씨앗을 적실 때(糞種): 붉고 단단한 강토(騂剛)에는 소 뼈 즙을, 붉은 황토(赤緹)에는 양 뼈 즙을, 부드럽고 기름진 흙(墳壤)에는 고라니 뼈 즙을, 마른 연못 자리(渴澤)에는 사슴 뼈 즙을, 소금기 많은 염전 밭(咸舄)에는 오소리 뼈 즙을, 부풀어 올라 부스러지는 흙(勃壤)에는 여우 뼈 즙을, 끈적하면서 척박한 진흙(埴垆)에는 돼지 뼈 즙을, 지극히 거칠고 굳은 땅(強㯺)에는 삼 씨 즙을, 가볍고 잘 부서지는 모래밭(輕爂)에는 개 뼈 즙을 씁니다. 이것이 초인의 직무입니다. 정현은 ‘씨앗을 기름지게 하는 방법은 모두 그 동물의 뼈를 고아낸 즙에 씨앗을 담그는 것이다. 적티는 옅은 붉은색이고, 갈택은 옛 물웅덩이이며, 석은 짠 소금땅이고, 환은 오소리이며, 발양은 고운 가루 흙이고, 식로는 차진 점토이며, 강람은 단단한 땅이고, 경착은 무른 모래흙이다’라고 해설했습니다.

《회남술(淮南術)》에 이르기를: ‘동지(冬至)날부터 시작하여 이듬해 정월 초하루까지의 날수를 세어, 그 날수가 꼬박 쉰 날(五十日)에 달하면 백성들이 먹을 양식이 지극히 넉넉할 징조이다. 만약 50일에 미치지 못하면 하루가 모자랄 때마다 1무당 수확이 1되씩 줄어들고, 50일을 초과하여 날수가 남으면 하루마다 수확이 1되씩 늘어난다’고 했습니다.

《판승지서》에서 이르기를:

‘씨앗이 눅눅한 습기를 머금고 찌는 듯한 열기를 입으면 반드시 해충이 생겨납니다.’

‘밀 씨앗을 거둘 때는 완전히 익어 수확하기 직전에 가장 우뚝 솟고 튼실한 이삭만을 엄선하여 베어내고, 타작마당 한가운데에 바람이 잘 통하고 해가 잘 드는 곳에 단단히 묶어 세워 극도로 건조하게 말립니다. 벌레(白魚)가 먹지 않도록 유심히 살피고, 벌레가 보이면 즉시 키질하여 털어냅니다. 말린 쑥(艾)을 섞어 갈무리해 두되, 밀 한 섬(一石)당 쑥 한 줌을 섞어 줍니다. 질그릇이나 대나무 항아리에 밀봉하여 두었다가 제때에 심으면 수확이 항상 곱절이 됩니다.’

‘기장과 조의 씨앗을 거둘 때는 키가 가장 크고 우람한 대를 골라 마디 아래를 베어낸 뒤 다발로 묶어 높고 건조한 바람 길에 매달아 두면 싹이 결코 썩지 않습니다.’

‘한 해에 어떤 작물이 가장 풍년을 이룰지 미리 알아보려면: 삼베 주머니에 조와 여러 곡식 씨앗을 각각 같은 분량으로 평평하게 담아 그늘진 땅속에 묻어 둡니다. 동지 후 쉰 날(五十日)이 지난 뒤 꺼내어 그 부피를 재어보아, 알이 가장 굵게 차오르고 부풀어 오른 곡식이 그해에 가장 알맞은 풍년 작물입니다.’

최식은 ‘오곡을 각각 1되씩 평평하게 재어 작은 항아리에 담아 담장 북쪽 그늘진 곳에 묻어 둔다…’고 하여 그 구체적 방법은 위와 같았습니다.

《사광점술(師曠占術)》에 이르기를: ‘살구나무에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고 벌레가 먹지 않으면 이듬해 가을 조 농사가 대풍년을 이룰 징조입니다. 다섯 가지 나무(五木)는 오곡의 선구자이니, 오곡의 운세를 알고자 한다면 오직 다섯 나무의 무성함을 관찰하면 됩니다. 가장 무성하게 자라나는 나무의 성질을 보고 이듬해 그에 알맞은 곡식을 많이 심으면 만에 하나도 실수하는 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제민요술(齐民要术)》 권일 : 제3장 곡식 파종(种谷第三)

곡(谷)은 직(稷)이며 이름은 율(粟, 조)입니다. 곡이라는 글자는 오곡 전체를 아우르는 이름이지 조만을 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오직 직(稷)만을 곡식이라 부르니 속세의 관습을 따랐을 뿐입니다.

《이아(爾雅)》에서 ‘자(粢)는 직(稷)이다’라고 하였고, 《설문해자》에서는 ‘조(粟)는 아름다운 곡식의 알맹이이다’라고 했습니다.

《광지(廣志)》에서는 ‘붉은 조, 흰 줄기 조, 검은 참새 조, 장공반, 함황창, 청직, 설백조 등 수많은 명품 종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조의 품종 이름은 대개 사람의 성씨를 따서 짓거나, 그 모양을 보고 붙이거나, 뜻을 취해 부르니 대략 기록해 둡니다.


📖 조의 다양한 품종과 재배 전략

조에는 주곡, 고거황, 유저해, 도민황, 괄곡황, 체오황, 숙명황, 백일량 등 일찍 익고 가뭄에 강하여 벌레의 해를 면하는 조생종(早熟) 14종이 있습니다. 이 중 괄곡황과 욕도량은 밥맛이 지극히 뛰어납니다.

또한 타차, 하마간, 백군양, 현사적미, 파호황, 청경청, 흑호황 등 이삭에 보송보송한 잔털(毛)이 돋아 있어 거친 바람을 견디고 참새 떼의 약탈을 피하는 풍저항성 종 24종이 있으니, 이 중 일현황은 찧기가 아주 수월합니다.

그리고 보주황, 속득백, 장린황, 백조곡, 구천황, 갈호황, 치미청, 손연황, 아거황 등 알이 굵고 가득 차는 중만생종 38종이 있으며, 이 중 백조곡과 조모량은 맛이 뛰어나고, 황겁참과 낙비청은 껍질이 잘 벗겨져 방아 찧기가 매우 쉽습니다.

그 외에 죽엽청, 수흑곡, 안두청, 청자규 등 물기를 머금은 젖은 땅과 수해를 잘 견디는 만생종(晚熟) 10종이 있으나 벌레의 습격을 받으면 일시에 전멸하고 맙니다.

무릇 곡식이 여무는 시기는 저마다 빠르고 늦음이 있고 키의 높낮이가 다르며 알곡의 알참이 제각각입니다. 조생종은 대가 짧으나 수확이 풍성하고, 만생종은 대가 길지만 수확이 적습니다. 대가 단단한 품종은 대개 노란 조 종류이고, 무른 품종은 청, 백, 검은 조 계열입니다. 수확량이 적은 품종은 밥맛이 빼어나나 쉽게 닳아 없어지고, 수확량이 많은 품종은 거칠지만 든든하게 오래갑니다. 땅의 형세와 비옥함에 따라 비옥한 땅에는 만생종을 심는 것이 마땅하고, 척박한 거친 밭에는 조생종을 심어야 이롭습니다. 비옥한 땅은 조생종을 심어도 해가 없으나, 척박한 땅에 만생종을 억지로 심으면 결코 알곡이 여물지 않습니다. 산지 밭에는 거센 바람과 서리를 이겨내도록 대가 튼튼한 강묘(強苗) 품종을 심고, 습지 밭에는 줄기가 부드러운 약묘(弱苗) 품종을 심어 꽃과 열매를 잘 맺게 유도합니다. 하늘의 철을 순종하고 대지의 이로움을 치밀하게 헤아려 일하면 적은 노력으로도 크나큰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만약 제멋대로 자연의 도리를 거슬러 일한다면 뼈 빠지게 수고해도 거둘 것이 없습니다. 물속에 들어가 나무를 베고 산에 올라 물고기를 낚으려 들면 빈손으로 돌아올 뿐이며, 맞바람에 물을 뿌리고 가파른 비탈길에 쇠구슬을 굴리는 것마냥 그 형세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법입니다.

조를 심을 밭의 전작물(前作物)로는 녹두와 팥을 재배한 땅이 으뜸이고 삼, 기장, 참깨 밭이 그 다음이며 순무와 대두(콩) 밭이 가장 아래입니다. 참외를 심었던 밭도 녹두 밭 못지않게 기름집니다.

비옥한 땅 1무에는 씨앗 5되(升)를 뿌리고, 척박한 땅에는 3되를 뿌립니다. 조 밭은 반드시 해마다 작물을 교체하여 윤작(歲易)해야지, 같은 땅에 계속 조만 심으면 강아지풀(莠)이 들끓고 수확이 지극히 척박해집니다. 2월 and 3월에 파종하는 것을 식화(稙禾, 일찍 심는 곡식), 4월 and 5월에 파종하는 것을 치화(穉禾, 늦게 심는 곡식)라 합니다. 2월 상순 살구꽃과 느릅나무가 움틀 때 심는 것이 상시(上시)이고, 3월 상순 청명절 즈음 꽃이 만발할 때가 중시(中시)이며, 4월 상순 대추나무 잎이 나고 뽕나무 꽃이 질 때가 하시(下시)입니다.

봄에 파종할 때는 깊이 묻히도록 골을 파고 반드시 무거운 흙 갈개(重撻)를 끌어 단단히 밟아 주어야 합니다. 여름에 파종할 때는 얕게 묻고 쟁기로 덮지 않아도 저절로 잘 돋아납니다. 봄에는 대지의 기운이 차가워 싹이 더디 나므로 흙 갈개로 단단히 눌러주어 뿌리가 흙과 밀착되게(撻) 하지 않으면 뿌리가 둥둥 떠서 싹이 트자마자 말라 죽습니다. 여름에는 대지의 열기가 가득하여 싹이 눈 깜짝할 사이에 돋아나므로, 흙을 밟아준 뒤 비를 맞으면 땅이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 싹이 뚫고 나오지 못합니다. 만약 봄에 밭의 물기가 충분하다면 굳이 흙 갈개로 밟아줄 필요가 없습니다. 흙을 밟아 주고자 할 때도 반드시 겉흙이 약간 말랐을 때(白背) 밟아야지 젖은 흙을 문지르면 돌처럼 굳어져 농사를 망칩니다.

조를 심을 때는 비가 온 직후에 심는 것이 가장 훌륭합니다. 보슬비가 내릴 때는 대지의 촉촉한 물기를 놓치지 말고 즉시 씨앗을 넣어야 하고, 큰비가 쏟아졌을 때는 대지의 표면이 마르기를 진득하게 기다렸다가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가물었을 때 가을에 갈아둔 밭은 이랑을 세워 하늘의 비를 앙망하며 기다려야지, 봄에 가물 때 억지로 밭을 갈아엎으면 농사를 그르칩니다.

싹이 자라나 참새나 말의 귀(馬耳) 크기만큼 돋아났을 때는 가늘고 예리한 호미(镞锄)로 첫 번째 김매기를 정밀하게 시작합니다. 싹이 듬성듬성 비어 있는 곳은 다른 싹을 파다가 정성껏 메워 줍니다. 이 조그마한 수고는 힘이 드는 것도 아니건만 그 보답과 이익은 백배 천배에 달합니다. 모든 곡식 농사에서 호미질은 작게 쪼개어 자주 해주는 소호(小锄)가 으뜸입니다. 작은 호미로 김을 매면 노동력이 절약될 뿐만 아니라 수확도 배나 불어납니다. 커다란 괭이로 땅을 푹푹 파헤치면 잡초 뿌리가 사방으로 번성하여 헛수고만 늘고 거둘 것이 적습니다. 비옥한 땅에는 조 싹을 사방 1자(尺)의 간격마다 튼실한 놈으로 딱 한 포기씩만 남기고 다 솎아 냅니다. 유장의 《경전가(耕田歌)》에 이르기를 ‘밭은 깊이 갈고 씨앗은 촘촘히 뿌리되, 싹이 돋아나면 넓게 솎아주고 잡것들은 호미로 가차 없이 베어 내라’고 했습니다.

싹이 이랑 위로 우뚝 솟아오르면 깊이 김매기를 해 줍니다. 김매기는 횟수를 불문하고 정성을 다해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며, 밭에 풀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호미을 놓아두어서는 안 됩니다. 김매기란 단순히 잡초를 죽이는 일에 그치지 않고, 흙을 잘게 부수고 부드럽게 숙성시켜 대지의 호흡을 돕고 알곡을 터질 듯이 채우며 겨의 두께를 얇게 만드는 비결입니다. 호미질을 열 번(十遍) 채우면 쭉정이가 없는 100% 꽉 찬 알곡(八米)을 얻습니다. 봄철의 김매기는 대지를 부풀려 깨우는 밭갈이와 같고, 여름철의 김매기는 잡초를 죽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봄의 김매기는 절대 땅이 젖어 있을 때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6월이 지나 싹이 우거진 뒤에는 젖어 있어도 무방합니다. 봄 싹은 얕게 내리고 그늘이 땅을 덮지 못해 젖은 흙을 건드리면 단단히 굳기 때문이고, 여름 싹은 울창한 그늘이 대지를 가려주어 해가 비치지 않으므로 젖은 채 다듬어도 해가 없습니다. 《관자(管子)》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농부들이 추울 때 밭 갈고 더울 때 김매게(寒耕熱芸) 만들어야 한다’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싹이 한 자쯤 자랐을 때는 보습(锋)으로 고랑을 밀어 흙을 북돋아 준다. 세 번쯤 밀어주면 아주 훌륭합니다. 밭의 흙을 돋아주는 경기(耩) 농법은 싹의 밑동을 굳건히 다지고 잡초를 베어 내며 알곡을 여물게 하는 데는 좋으나, 땅을 굳어지게 만들고 수분을 빼앗아 이듬해 경작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호미질을 다섯 번 이상 지극히 부지런히 해주었다면 굳이 쟁기로 흙을 돋우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싹이 완전히 잘 여물면 신속하게 낫으로 베어 내고, 건조해지면 즉시 타작마당에 쌓아 올려야 합니다. 너무 일찍 베면 알곡이 쪼그라들고, 너무 늦게 베면 이삭이 뚝 부러져 바람에 흩날려 잃는 것이 절반에 달합니다. 젖은 채로 벼를 쌓아두면 속에서부터 썩어 문드러지고, 타작을 늦추면 들쥐와 새가 다 먹어 치우며 장마를 만나면 싹이 터서 버리게 됩니다.


📖 구전법(區田法)의 과학적 우수성

《판승지서》의 ‘구전법(區田法)’에 이르기를: ‘은나라 탕왕 시절에 지독한 가뭄이 닥치자, 재상 이윤(伊尹)이 구전법을 창안하여 백성에게 씨앗을 거름에 버무려 심고 물을 직접 길어다 주며 풍작을 올리게 가르쳤다.’

구전법은 대지의 거름 기운(糞氣)을 으뜸으로 삼으므로 굳이 기름진 비옥한 땅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험준한 산비탈, 도시 인근의 척박한 언덕, 성곽 위 등 아무리 쓸모없는 황무지라도 모두 훌륭한 구전(區田) 밭으로 일굴 수 있습니다. 구전법은 씨앗을 심는 작은 구덩이 외에 주변의 노는 땅은 일절 갈지 않고 내버려 두어 대지의 힘을 한곳으로 응축시킵니다.

1무의 밭을 기준으로, 길이가 18장(丈)이고 너비가 4장 8치(尺)인 땅을 가로로 조밀하게 나누어 15개의 밭두둑(町)을 만들고, 두둑 사이마다 농부가 걸어 다니며 보살필 1자 5치의 좁은 길을 내어 통행하게 합니다. 각 두둑에 가로세로 1자 너비의 구덩이(溝)를 1자 깊이로 깊게 파냅니다. 구덩이에서 퍼낸 비옥한 겉흙을 구덩이 사이에 쌓아 둡니다.

이 구덩이 속에 거름과 씨앗을 심습니다. 조와 기장을 심을 때는 구덩이 양옆으로 2.5치씩 간격을 두고 두 줄로 심으며, 구덩이 속에 정확히 44포기의 싹을 세웁니다. 1무의 구전 밭에는 무려 15,750포기의 싹이 들어가며, 파종한 뒤에는 정확히 1치 두께의 고운 흙을 덮어 주어 한 치의 오차도 없게 합니다.

구전법으로 보리(麥)를 심을 때는 2치 간격으로 한 줄씩 심어 1무에 무려 93,550포기를 밀식하며 흙은 2치 두께로 덮습니다. 대두(콩)는 1자 2치 간격으로 넓게 심어 1무당 6,480포기를 세운다.

구전 밭은 가뭄이 닥치면 바가지로 물을 길어다 구덩이마다 정성껏 적셔 주니, 1무당 수확이 무려 백 섬(百斛)에 달합니다.

상급 농부의 구전은 사방 6치의 구덩이를 6치 깊이로 파고 구덩이끼리 9치 간격을 둡니다. 1무에 무려 3,700개의 구덩이가 들어가니, 하루 부지런히 일하면 천 개의 구덩이를 팝니다. 구덩이 하나에 조 씨앗 20알과 최고급 거름 1되(升)를 고운 흙과 잘 버무려 채웁니다. 가을에 수확하면 구덩이 하나에서 조 3되를 거두니, 1무에서 백 섬의 대풍작을 올립니다. 건장한 사내와 아낙 한 쌍이 10무의 구전 밭을 넉넉히 돌보고 10무에서 천 섬(千石)의 양식을 얻습니다. 부부의 한 해 양식이 36섬에 불과하니, 단 1년 일하여 얻은 양식으로 온 가족이 무려 26년 동안 굶주림 없이 배불리 먹고 지낼 수 있는 기적 같은 농법입니다.

중급 농부는 사방 9치의 구덩이를 6치 깊이로 파고 구덩이 간격은 2자로 넓힙니다. 1무당 1,027개의 구덩이를 두어 조 51섬을 거둡니다.

하급 농부는 사방 9치 구덩이를 6치 깊이로 파고 구덩이 간격을 3자로 둡니다. 1무당 567개 구덩이를 두어 28섬을 수확합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경(頃) 단위의 넓은 땅을 대충 지어 잡초만 기르는 것보다, 1무의 작은 땅을 정밀하게 다스려 대풍을 올리는 것이 백배 낫다’고 한 것이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서연주자사 유인지가 내게 이르기를 ‘내 일찍이 낙양의 저택 안마당 70보 남짓한 조그만 자투리땅에 구전법을 시험 삼아 해 보았더니, 가을에 무려 36섬의 알곡을 거두었다’고 하였으니, 구전법의 1무당 수확은 실로 백 섬을 훌쩍 뛰어넘는 위대한 지혜입니다. 경작지가 적은 가난한 백성들은 마땅히 이 법을 뼈에 새겨 따라야 합니다.

구덩이 속에 잡초가 돋아나면 손으로 정성껏 뽑아 주고, 구덩이 사이의 땅에 돋아나는 잡초는 깎개(剗)나 호미로 베어 냅니다. 만약 싹이 너무 울창하여 호미를 부릴 수 없다면 낫을 비스듬히 뉘어 잡초의 목을 쳐 줍니다.


📖 거름물에 씨앗을 적시는 비법

《판승지서》에서 전하는 비법으로: ‘말 뼈, 소 뼈, 양 뼈, 멧돼지 뼈 등을 한 섬(一斗) 모아 눈 녹은 깨끗한 눈물(雪汁) 세 섬과 가마솥에 넣고 세 번 끓여 냅니다. 우려낸 맑은 뼈 국물 1되에 한약재 부자(附子) 5개를 넣어 닷새 동안 우려낸 뒤 부자를 건져 냅니다. 여기에 고라니, 사슴, 양의 똥을 같은 분량으로 곱게 빻아 넣고 걸쭉한 죽처럼 될 때까지 정성껏 젓습니다. 파종하기 20일 전부터 맑은 날을 골라 씨앗을 이 거름 즙에 푹 적셨다가 뙤약볕에 펼쳐 말리기를 서너 번 반복하여 씨앗 겉면에 비옥한 영양분이 단단히 코팅되게 만듭니다. 만약 동물의 뼈를 구하지 못했다면 누에고치를 삶아낸 고치 삶은 물(缲蛹汁)을 써도 지극히 훌륭합니다. 이 비법으로 구전 밭에 씨앗을 심으면 대가뭄이 올지라도 물 한 바가지만 주면 1무당 100섬 이상의 기적 같은 수확을 보장합니다. 이는 말(馬)과 누에(蠶)가 곤충의 조상과 같아 그 기운이 벌레를 물리치고, 독초인 부자가 해충과 메뚜기 떼의 침입을 원천 차단하며, 뼈 국물과 누에고치 즙이 최고의 고농축 질소 비료 역할을 하여 싹이 가뭄을 견디며 울창하게 자라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한서 식화지 등의 국가 농업 정책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 이르기를: ‘곡식을 심을 때는 반드시 오곡(조, 기장, 삼, 밀, 콩)의 품종을 골고루 섞어 심어 기후 변화와 천재지변의 위험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밭 한가운데는 절대 큰 나무를 심어 그늘을 두어서는 안 되니, 나무 그늘이 오곡의 대지 호흡을 막고 지력을 빼앗기 때문입니다. 밭둑에 유실수를 심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입니다. 속담에 복숭아와 자두나무는 말하지 않아도 그 아래에 저절로 길이 난다고 했으니, 이는 밭을 망칠 뿐만 아니라 머슴들이 일하다 말고 딴청을 피우며 노닐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밭을 밟아 뭉개며 소일하는 부작용만 낳기 때문입니다. 제나라 환공이 재상 관자에게 묻기를 ‘백성들이 춥고 굶주려 집이 무너져도 고치지 않고 담장이 무너져도 다시 쌓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하자, 관자가 ‘도성 안의 가로수와 밭둑 나무들의 아랫가지들을 싹둑 베어 내십시오’라고 답했습니다. 환공이 영을 내려 나무 가지를 다 치게 하였더니 1년 만에 백성들이 스스로 비단옷을 지어 입고 집과 담장을 튼튼히 고쳤습니다. 환공이 놀라 물으니 관자가 ‘제나라는 본래 들판이 넓은 곳이라 나무 한 그루가 우거지면 수레 백 대가 그 그늘 아래 쉬어 갈 수 있었습니다. 가지를 치지 않아 그늘이 짙으니 아낙들과 사내들이 그 아래 모여 노닥거리느라 해가 지는 줄 몰랐고, 아이들은 총지(탄총)를 들고 참새를 잡느라 종일 밭을 지키지 않았으며, 노인들은 나뭇가지 아래 모여 세상사 한담을 나누느라 일터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무의 아랫가지를 베어 그늘을 없애 버리니 한낮에도 쉴 그늘 한 치 없어 길손들은 걸음을 재촉하고, 노인들은 집으로 돌아가 살림을 돌보며, 건장한 젊은이들은 제 일터로 돌아가 농업에 힘쓰게 된 까닭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밭을 갈 때는 부지런히 소를 몰아 깊이 갈고 김을 끊임없이 매며, 가을에 수확할 때는 마치 이웃 나라의 도적 무리가 국경을 넘어와 내 곡식을 약탈하러 달려드는 것처럼(如寇盗之至) 맹렬하고 신속하게 온 가족이 매달려 거두어들여야 합니다. 혹시라도 거센 가을 태풍과 장마를 만나 1년의 고된 땀방울이 일시에 대지에 흩어질까 두려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농가 주택 뒤뜰과 담장 밑에는 뽕나무를 빽빽이 심어 누에를 치고, 집안 안뜰에는 채소 밭을 지어 가꾸며, 닭과 돼지, 개 등 가축을 철에 맞춰 정성껏 길러낸다면, 50세가 된 백성은 비단옷을 든든하게 입고 70세가 된 노인은 밥상에 고기반찬이 끊이지 않는 태평성대를 누릴 것입니다.’

‘초겨울이 되어 추위가 닥치고 백성들이 집안으로 들어오면, 한 골목의 아낙들이 한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밤새도록 등불 하나를 켜 두고 길쌈을 하니, 한 달 동안 부지런히 일하여 무려 마흔다섯 날(四十五日)의 공적을 올려 냅니다. 이처럼 아낙들이 모여 앉아 밤샘 길쌈을 하도록 한 것은, 등잔불 기름값과 땔나무 값을 절약하고 솜씨가 좋은 이와 서툰 이가 서로 가르치며 마을의 정답고 아름다운 풍속을 두텁게 하기 위함입니다.’

《동중서(董仲舒)》가 이르기를 《춘추(春秋)》 역사서에는 다른 자질구레한 작물들의 흉작은 기록하지 않았으나 밀(麥)과 조(禾)가 흉작을 내면 반드시 역사에 기록해 두었으니, 이로써 성인이 오곡 중에서도 백성의 목숨 줄인 밀과 조를 가장 엄숙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속두위 조과(趙過)가 밭의 고랑을 번갈아 가며 묵히는 대전법(代田法)을 창안하여 백성에게 가르쳤습니다. 1무의 밭에 세 개의 고랑(甽)을 파고 해마다 고랑의 위치를 이랑과 교대로 바꾸어 갈았으므로 대전(代田)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후직의 고대 법도를 계승한 것입니다. 고랑과 이랑을 교대로 파종하니 싹이 굳건하게 자라고 뿌리가 대지 깊숙이 내려앉아 여름날의 거센 태풍과 지독한 가뭄을 능히 버텨 냅니다. 조과는 쟁기 두 마리가 끄는 우려(耦犂) 농기구와 씨앗을 솔솔 뿌리는 수레(耧)를 개량하여 대대적으로 보급했습니다. 나라에서 농기구를 만들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고, 소가 없는 가난한 농가에는 여러 사람이 짝을 지어 쟁기를 함께 끌며 밭을 가는 인력 쟁기법(人挽犂)을 전수하니, 온 대지가 비옥하게 개간되어 천하의 백성들이 굶주림을 면하고 나라가 부강해졌습니다.’


📖 주요 한자 · 고사성어 풀이

  • 治生之道 (치생지도) — 집안의 살림살이를 튼튼하게 꾸려 삶을 평화롭고 정직하게 이끌어가는 실업(농업)의 근본적인 도리이자 가훈을 뜻합니다.
  • 堅垎 (견학) — 땅이 비를 품지 못하고 젖은 상태에서 성급히 경작되어 시멘트나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린 척박한 흙 상태를 뜻합니다.
  • 區田法 (구전법) — 은나라 탕왕 시절 재상 이윤이 창안한 구획 밀식 농법으로, 넓은 밭 전체를 갈지 않고 오직 가로세로 1자 크기의 작은 구덩이를 파 거름과 씨앗을 조밀하게 심어 집중 관리함으로써 가뭄을 극복하고 1무당 100섬의 기적 같은 초고수확을 올리는 과학적인 농업 지혜입니다.
  • 如寇盗之至 (여구도지지) — 이웃 나라의 도적 무리가 국경을 넘어 약탈하러 급히 들이닥친 것처럼 사력을 다해 서두른다는 뜻으로, 가을 수확기에 장마나 거센 가을 태풍을 만나 1년의 농사를 망치지 않기 위해 온 가족이 초비상 상태로 신속하게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농가의 비장한 태도를 비유한 성어입니다.
  • 代田法 (대전법) — 한나라 무제 때의 수속두위 조과가 후직의 농법을 고증하여 개량한 밭갈이 혁신으로, 1무당 세 개의 고랑과 이랑을 파고 해마다 고랑과 이랑의 위치를 번갈아 바꾸어(代) 파종함으로써 지력의 소모를 막고 싹의 뿌리를 대지 깊숙이 내려 가뭄과 태풍을 이겨내게 만드는 고도의 순환식 경작 농법입니다.
  • 弱土而強之 (약토이강지) — 모래가 많이 섞여 쉽게 부스러지고 수분을 머금지 못하는 지나치게 무른 모래흙(弱土)에 소와 양을 떼로 몰아 밟게 만들어 대지를 단단하고 비옥하게 다듬는 모래밭 토질 개선 기술을 비유한 농학적 격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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