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요출 2권 권이-기장·조·수수·콩·삼·보리·밀·벼·참깨·참외·박·토란재배법(卷二)

📚 제민요출(齐民要术) · 제2편

권이-기장·조·수수·콩·삼·보리·밀·벼·참깨·참외·박·토란재배법(卷二)


《이아(爾雅)》에서 이르기를: ‘거(秬)는 검은 기장(黑黍)이고, 비(秠)는 한 겨껍질 안에 쌀알 두 개가 든 것(一稃二米)이다.’ 곽박(郭璞)은 주석에서 ‘비 또한 검은 기장의 일종이나, 단지 속 알갱이의 모양이 특이할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공자(孔子)께서 이르시기를 ‘기장(黍)은 술을 빚는 훌륭한 재료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무릇 기장과 조(黍, 穄)를 심고자 할 때는 토양의 마르고 젖은 상태(燥湿)를 지극히 세심하게 관찰하여 적절함을 맞추는 것이 농사의 으뜸가는 비결입니다. 기장은 본성적으로 줄기와 잎이 꼿꼿하고 튼튼하여 거센 바람을 잘 견디며, 조생종과 만생종의 품종이 널리 나누어져 있으니 땅의 고저와 기름진 정도를 잘 헤아려 심어야 합니다.

봄 파종은 살구꽃이 화창하게 피어날 때가 가장 좋은 상시(上時)이고, 여름 파종은 단오 절기 전후가 적당한 때입니다. 밭에 잡초가 돋아나 싹을 억누르기 전에 부지런히 예리한 호미로 김을 매어 밭을 정결하게 다듬어 주어야 하니, 예로부터 농가의 격언에 ‘기장과 조는 김매기를 네 번(四遍) 매어 다듬어주면 이삭이 황금빛으로 화창하게 여문다’고 하였습니다. 《판승지서》에 이르기를, 삼(麻)이나 녹두를 재배했던 밭에 기장을 윤작으로 교대하여 심으면 대지의 보이지 않는 지력이 충전되어 거름을 따로 주지 않아도 대풍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가을철 이삭이 무겁게 고개를 숙여 완전히 익으면, 매서운 바람에 이삭이 부러져 대지에 흩어지기 전에 신속하게 낫으로 베어 내고, 통풍이 잘되는 높은 바람길에 매달아 보관해야 씨앗이 썩거나 쭉정이가 되지 않고 안전합니다.


《제민요술(齐民要术)》 권이 : 제5장 수수와 차조(粱秫第五) 번역

《광지(廣志)》에 이르기를: ‘수수(粱)에는 청량, 황량, 백량 등 수십 가지의 신비롭고 빼어난 품종이 있으며 가뭄을 극복하는 자생력이 온 오곡 중에 가장 뛰어나고 지은 밥맛이 쫄깃하고 든든하다. 차조(秫)는 점성이 매우 강하여 백성들의 축제에 떡을 찌거나 집안의 대소사에 쓸 최고급 가양주(家釀酒)를 빚을 때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귀중한 알곡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수수와 차조는 대단히 척박한 산비탈이나 모래가 섞인 굳은 땅에서도 싹을 잘 틔우므로, 거친 황무지를 개간하여 처음 밭으로 만들 때 선구적으로 심기에 지극히 적당합니다.

파종할 때는 1무당 씨앗 4되(升)를 골고루 평평하게 뿌려 심으며, 봄철 가뭄이 닥쳐 흙이 마를 때는 쟁기질 뒤 즉시 흙 갈개로 이랑을 평평하게 쓸어 덮어 대지의 소중한 수분이 공중으로 날아가지 않도록 보듬어야 합니다. 싹이 자라나 포기를 이루기 시작할 때, 너무 빽빽하게 어우러져 서로의 햇볕을 가리는 약한 줄기들은 사정없이 솎아내는 과정(科定)을 거쳐 포기 사이의 간격을 1자(尺) 남짓으로 넉넉히 띄워 줍니다. 그래야 줄기가 대나무처럼 굳건해지고 가을철 이삭이 탐스럽고 우람하게 여물어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됩니다.


《제민요술(齐民要术)》 권이 : 제6장 대두(大豆第六) 번역

대두(콩)는 백성들의 주린 배를 가장 든든하게 채워주는 소중한 양식이자, 척박해진 대지에 지력을 다시 가득 채워주는 고마운 ‘오곡의 어머니’요 나라의 으뜸가는 비상 곡식입니다.

콩을 파종하는 가장 훌륭한 철은 봄철 한식(寒食) 절기 전후이며, 이때 밭을 깊이 세 번 갈아엎고 기름진 흙에 씨앗을 심습니다. 비옥하고 좋은 밭에는 다소 촘촘하게(稠) 심어 줄기와 잎이 서로 의지해 무성하게 만들고, 거칠고 척박한 땅에는 일부러 드물게(稀) 심어 대지의 한정된 영양분을 아껴 쓰며 햇볕과 바람이 사방으로 잘 통하게 해야 합니다.

콩은 싹이 땅을 뚫고 돋아나 잎이 세 장(三葉)으로 갈라졌을 때 지체 없이 첫 번째 김매기를 다듬어 주어야 하며, 콩밭은 호미질을 귀찮도록 자주 해주는 것을 결코 싫어하지 않습니다. 늦여름 꼬투리가 맺히기 시작하기 직전에, 위로 뻗어나가는 무성한 넝쿨 순의 윗머리를 손끝으로 살짝 질러주면(掐) 영양분이 잎으로 가는 것을 막고 아래의 열매 꼬투리로 집중되어 알곡이 터질 듯이 가득 차오릅니다. 혹여 늦여름 가뭄에 진딧물이나 해충이 꼬일 때는 깨끗한 나무 재를 우려낸 잿물을 밭에 고루 뿌려주면 벌레들이 깨끗이 퇴치됩니다.


《제민요술(齐民要术)》 권이 : 제7장 소두(小豆第七) 번역

소두는 팥과 녹두(綠豆)를 통칭하는 이름입니다. 특히 녹두는 척박한 모래땅이나 거친 밭을 기름지게 가꾸어주는 최고의 천연 초록 거름(綠肥) 역할을 훌륭히 수행합니다.

이른 여름 5월과 6월 뙤약볕이 내리잴 때, 밭에 녹두 씨앗을 흩뿌려 울창하게 기릅니다. 풀과 넝쿨이 밭을 가득 메우며 가장 푸르게 자라나는 7월과 8월이 되면, 이 녹두 밭을 수확하지 않고 쟁기를 부려 대지 깊숙이 통째로 갈아엎어 흙 속에 파묻어 썩힙니다. 이 초록 잎들이 흙 속에서 부패하여 비옥한 천연 거름으로 변하니, 이듬해 봄에 그 밭에 곡식을 심으면 화학 비료나 똥거름을 듬뿍 준 최고급 비옥한 옥토(美田)와 똑같이 1무당 열 섬 이상의 놀라운 대풍을 거두게 됩니다.

팥과 녹두의 알곡을 수확하고자 할 때는, 꼬투리가 익어 겉면이 노랗고 검게 변할 때 매일 아침 이슬이 채 마르기 전 선선한 새벽에 밭에 나가 손으로 조심조스럽게 따내야 합니다. 낮에 햇볕이 뜨겁게 내리쬘 때 따거나 수확을 미루면 꼬투리가 바짝 말라 스스로 툭 터지면서 소중한 알곡들이 대지 바닥으로 흘러내려 거둘 것이 없게 되는 손실을 입기 때문입니다.


《제민요술(齐民要术)》 권이 : 제8장 마 심기(种麻第八) 번역

마(麻, 섬유용 삼)는 백성들의 몸을 따뜻하게 덮어줄 옷을 짓는 실을 뽑아내고, 밭과 수레를 단단히 묶어줄 노끈과 밧줄을 엮는 데 쓰이는 국가의 핵심 섬유 작물입니다.

삼을 심을 땅은 반드시 겨울 내내 거름을 아낌없이 두텁게 주고, 새봄이 오면 무려 다섯 번에서 여섯 번 이상 쟁기질을 깊고 미세하게 반복하여 흙을 먼지처럼 고르고 부드럽게 다듬어 놓아야 합니다. 하지(夏至) 절기가 오기 전 열흘 이내에 비를 맞아 축축하게 젖은 대지에 씨앗을 골고루 뿌리고, 싹이 돋아나 자라면 암삼(雌麻)과 숫삼(雄麻)의 형세를 유심히 관찰합니다.

숫삼은 늦여름 하늘에 하얀 꽃가루를 흩날린 직후에 잎이 누렇게 변할 때 즉시 먼저 베어내어 물에 삶아 삼 껍질을 부드럽고 길게 벗겨내고, 암삼은 가을철 서리가 내릴 때 씨앗이 까맣고 단단하게 익은 뒤에 베어내어 기름을 짜거나 종자로 갈무리합니다. 베어낸 삼대는 맑은 시냇물에 돌을 눌러 며칠 동안 푹 담가두어 삼대 겉면의 단단한 풀기가 발효되어 부드럽게 풀렸을 때, 꺼내어 따뜻한 햇볕에 바짝 말려 고운 삼실 섬유를 씻어 추출해 냅니다.


《제민요술(齐民要术)》 권이 : 제9장 마 씨앗 심기(种麻子第九) 번역

삼 씨앗(麻子)을 풍성하고 기름지게 수확하고자 할 때는, 섬유를 뽑기 위한 삼밭과는 경작의 법도를 완전히 다르게 실행해야 마땅합니다.

씨앗을 거두기 위한 삼 밭은 줄기가 우람하고 굵게 자라 사방으로 풍성한 가지를 뻗어야 하므로, 파종하는 밀도를 아주 낮추고 싹이 자라나면 포기와 포기 사이의 간격을 무려 3자(尺) 이상으로 듬성듬성하고 넓게 솎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삼대가 사방으로 튼튼한 가지를 뻗어 수천 송이의 웅장한 씨앗 주머니를 가득 맺게 됩니다.

가을바람이 불어 씨앗이 여물어갈 때가 되면 온 산의 참새와 들새들이 맛있는 기름 냄새를 맡고 구름처럼 떼를 지어 날아와 삼 씨를 쪼아 먹으므로, 밭가에 허수아비를 단단히 세우고 끈을 엮어 소리를 내며 새들의 접근을 철저하게 막아내야 합니다. 수확한 삼 씨앗은 껍질이 대단히 견고하고 속에 맑고 비옥한 기름을 머금고 있어, 찧어서 흉년에 밥에 섞어 먹으면 훌륭한 구황 곡식이 되며 짜낸 삼기름은 밤을 밝히는 최고의 등불 기름이 됩니다.


《제민요술(齐民要术)》 권이 : 제10장 대맥과 소맥(大小麦第十) 번역

보리(大麥)와 밀(小麥)은 모든 곡식이 자라지 못하는 차디찬 겨울철 얼어붙은 대지를 지켜내며, 이듬해 봄 보릿고개가 닥쳤을 때 백성들을 굶주림의 도탄에서 구해내는 소중한 곡식입니다.

가을보리는 추분(秋分) 절기 전후에 심는 것이 가장 훌륭하고, 봄보리는 한식날 따뜻한 기운이 돌 때 파종합니다. 보리를 심기 전에는 고대 농가의 위대한 ‘분종법(糞種法)’을 엄격히 실행해야 하니, 소 뼈나 돼지 뼈를 가마솥에 넣고 푹 고아낸 비옥한 국물에 독초인 부자(附子)를 넣어 달인 물을 만들고, 이 약물을 양똥이나 개똥과 잘 섞어 보리 씨앗의 겉면에 도톰하게 버무려 코팅해 줍니다. 이 특수한 비법으로 씨앗을 무장시켜 심으면 겨울철 모진 설해와 한파 속에서도 싹이 얼어 죽지 않고 건강하게 버텨내며 새봄에 메뚜기 떼나 땅속 벌레들이 감히 씨앗을 갉아먹지 못하는 놀라운 보호 효과를 얻게 됩니다.

겨울철 폭설이 내린 뒤에는 눈이 미처 바람에 날아가거나 겉돌지 않도록 즉시 무거운 흙 갈개로 밭을 굳건히 밟아 다져주어(蔺) 눈 녹은 수분을 흙속에 단단히 가두어야만, 이듬해 봄철 가뭄을 비웃으며 보리가 파랗고 풍성하게 대풍을 이루게 됩니다.


《제민요술(齐民要术)》 권이 : 제11장 수로 벼(水稻第十一) 번역

물벼(水稻)를 기르는 농업의 요체는 오직 물길을 자유자재로 통제하고 논둑을 돌처럼 단단하게 쌓아 올리는 견고한 치수(治水)의 지혜에 달려 있습니다.

봄철 대지가 풀리면 땅을 깊이 갈아엎고 맑은 물을 고랑에 가득 댄 뒤, 소가 끄는 써레로 흙 갈이를 반복하여 흙을 고운 진흙 죽처럼 반죽해 바닥을 평평하고 부드럽게 다듬어 놓습니다. 물벼는 논의 물 깊이가 항상 세 치(三寸) 내외를 유지해야 하니, 물이 너무 깊으면 벼 싹이 햇볕을 보지 못해 흙 속에서 썩어 문드러지고 물이 너무 얕으면 온갖 잡초와 피가 먼저 돋아나 벼 싹의 목을 조르기 때문입니다.

벼와 함께 돋아나는 잡초와 피(稗), 가래풀 등은 싹이 트는 즉시 농부가 물속에 손을 집어넣어 뿌리째 깨끗이 뽑아 논둑 밖으로 던져 버려야만, 벼가 논 속의 소중한 지력과 질소 성분을 독차지하여 알차고 투명한 최고급 쌀알을 가득 맺게 됩니다.


《제민요술(齐民要术)》 권이 : 제12장 밭벼(旱稻第十二) 번역

맑은 물을 대기 어려운 고지대 산간 밭이나 물길이 닿지 않는 마른 대지에서도 훌륭하게 벼를 길러내어 식구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주는 놀라운 밭벼(旱稻) 재배 기술입니다.

밭벼는 봄철 하늘에서 단비가 내려 대지가 수분을 가득 머금었을 때, 쟁기로 골을 다소 깊게 파고 씨앗을 심은 뒤 흙을 덮고 가볍게 발로 밟아 굳혀 줍니다. 가뭄과 마른 대지를 잘 견디는 강인한 밭벼 품종을 엄선해야 하며, 밭에 잡초가 돋아나 밭벼의 수분을 빼앗지 않도록 봄철 자라나는 내내 예리한 호미로 무려 세 번 이상 밭을 매어 주어야 합니다.

비록 거두어들이는 수확량은 물을 대는 논벼에 비해 조금 적을지라도, 물길을 끌어 쓰기 어려운 산간벽지의 가난한 백성들에게 기름진 흰 쌀밥을 대접할 수 있게 해주는 보물 같은 구황 농법입니다.


《제민요술(齐民要术)》 권이 : 제13장 참깨(胡麻第十三) 번역

참깨(胡麻)는 고소한 향기와 비옥한 청결 기름을 풍성하게 내어주어, 백성들의 소박한 밥상을 풍요롭게 윤택하게 만들고 밤하늘을 밝히는 밤 등불을 켜는 귀중한 유지 작물입니다.

참깨는 물이 고이지 않고 아래로 쏙쏙 잘 빠지는 모래가 섞인 가볍고 흰 황토밭(沙白地)에 심는 것이 지극히 으뜸입니다. 이른 여름 5월 단오 절기 전후로 밭 표면을 가볍게 긁어 아주 얕게 파종해야 싹이 흙 무게에 눌리지 않고 밭 위로 화창하게 올라옵니다.

참깨 싹은 자라날 때 해충의 침입에 아주 취약하므로 밭 주변을 항상 건조하고 잡초 없이 청결하게 가꾸어 주어야 하며, 가을철 줄기 아래의 참깨 꼬투리가 노랗게 익어 터지기 직전에 줄기째 베어 다발로 단단히 묶어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세워 말린 뒤, 돗자리 위에 거꾸로 툭툭 털어내어 정결하고 맑은 참깨 알곡을 수확합니다.


《제민요술(齐民要术)》 권이 : 제14장 참외와 가지(种瓜第十四) 번역

참외(瓜)와 가지(茄子)는 도성의 장터와 가까운 근교 농가에서 지극히 집중하여 재배하여 성안의 부유한 백성들에게 내다 팖으로써 집안의 든든한 현금 자금을 조달해 주는 소중한 고부가가치 과실 작물입니다.

참외를 심을 때는 사방 3자(尺)에 달하는 커다란 구덩이를 깊게 파고, 밑바닥에 잘 썩은 거름이나 소똥을 두텁게 깔아 채운 뒤 비옥한 겉흙과 잘 버무려 도톰한 흙 동산을 만듭니다. 싹이 자라나 넝쿨을 뻗어가기 시작하면, 다섯 번째 잎사귀 마디에서 원줄기의 순을 과감하게 손끝으로 질러 멈추게 해야(掐) 옆에서 탐스러운 새 곁가지들이 뻗어 나와 꿀처럼 달고 아삭한 고급 참외를 주렁주렁 매달게 됩니다.

가지는 봄철 온상에서 싹을 곱게 틔워 본 밭에 일정한 간격으로 옮겨 심어 가꾸며, 서리가 내리기 직전 늦가을에 수확한 단단한 가지들은 버리지 않고 소금과 쌀겨를 섞은 항아리에 켜켜이 묻어 절임가지로 담가두면 추운 겨울철 온 식구의 요긴하고 맛있는 밑반찬이 됩니다.


《제민요술(齐民要术)》 권이 : 제15장 박(种瓠第十五) 번역

박(瓠)은 물을 담거나 술을 담을 요긴한 바가지를 짓고, 모진 기근이 닥쳤을 때는 부드러운 속살을 긁어 삶아 먹어 목숨을 구하는 지극히 유용한 가사 작물입니다.

《판승지서》에 기록되어 전해오는 신비롭고 과학적인 ‘합경법(合莖法)’의 비결을 전수하니 다음과 같습니다. 사방 3자 너비의 구덩이에 기름진 거름과 흙을 반반씩 채우고 박 씨앗 10알을 둥글게 심습니다. 싹이 돋아나 줄기가 두 자(二尺) 가량 곧게 자라났을 때, 이 10개의 박 줄기를 한곳으로 가지런하게 한데 모아 부드러운 삼베 천으로 5치 가량의 길이를 단단하게 감싸 매고 겉면에 고운 찰진 진흙을 두텁게 발라 고정해 줍니다. 수일이 지나면 감싸 쥔 10개의 줄기가 대지의 생명력 속에서 서로 살을 섞어 굳건하고 우람한 단 하나의 거대한 융합 줄기로 일체(合一)가 됩니다. 이 힘이 결합된 단 하나의 굵은 줄기에서 가장 곧게 뻗은 박 3개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잔가지와 열매는 모두 칼로 잘라내 버립니다. 대지의 거름 기운과 10개 뿌리의 힘을 통째로 빨아들여 자라나니, 가을이 되면 어른 몸집만 하여 무려 서너 말의 곡식이나 물이 넉넉히 들어가는 초거대 보습박(一石瓠)을 수확하여 바가지를 만드는 놀라운 기적을 이루게 됩니다.


《제민요술(齐民要术)》 권이 : 제16장 토란(种芋第十六) 번역

토란(芋)은 삼남 지방에 지독한 대기근과 한해(旱害)가 겹쳐 오곡이 모두 말라 죽는 참사가 벌어졌을 때, 흙 속에서 든든하게 살아남아 백성들의 목숨을 굳건히 구해내는 최고의 구황 점토 작물입니다.

토란은 물기가 풍부하고 태양 볕이 조금 가려지는 그늘진 강가나 습지 밭에 깊이 구덩이를 파고 심는 것이 법도입니다. 싹이 자라나 넓은 이파리를 하늘로 뻗을 때마다, 구덩이 주변의 비옥한 황토 흙을 줄기 아랫부분에 거듭 도톰하게 북돋아 덮어 주는 ‘배토(培土)’ 작업을 부지런히 실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토란의 알맹이가 대지 바깥의 차가운 공기와 햇볕에 노출되어 굳어지지 않고, 어둡고 축축한 흙 깊은 곳에서 아기 주먹만 하고 부드러운 토란 알들을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살찌우게 됩니다.

늦가을 첫서리가 내려 이파리가 시들기 전에 토란들을 남김없이 캐내어, 마른 짚을 깐 깊은 땅속 움집에 넣고 흙을 두텁게 덮어 보관하면, 매서운 한겨울 한파 속에서도 얼어 죽지 않고 신선함을 유지하여 새봄이 올 때까지 식구들의 소중한 양식이 됩니다.


📖 주요 한자 · 고사성어 풀이

  • 秬秠 (거비) — 검은 기장(黑黍)의 일종으로, 특히 한 겨껍질 안에 두 개의 알찬 쌀알이 가득 들어차 있는 기이하고 비옥한 고대의 명품 종자를 이르는 말입니다.
  • 科定 (과정) — 싹이 자랄 때 지나치게 빽빽하게 얽힌 약한 싹들을 솎아내어 포기와 포기 사이의 거리를 일정한 간격으로 곧게 확정해 주는 경작 기술을 뜻합니다.
  • 綠肥 (녹비) — 녹두나 팥 등의 작물을 한여름에 재배하여 수확하지 않고 밭 채로 쟁기질하여 흙 속에 파묻어 썩힘으로써 이듬해 봄 밭의 지력을 기름지게 만드는 초록 거름 농법입니다.
  • 合莖法 (합경법) — 판승지서에서 전해지는 농학적 접목 기술로, 한 구덩이에 박 씨앗 10알을 심어 자란 10개의 줄기를 한데 모아 천으로 감고 흙을 발라 단 하나의 우람한 거대 줄기로 융합시켜 영양분을 독점하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 糞種法 (분종법) — 보리나 밀 등의 씨앗을 심기 전에 동물의 뼈를 고아낸 즙과 부자(附子) 달인 물을 똥오줌과 섞어 종자의 겉면을 코팅해 줌으로써 해충과 추위를 막고 생장을 돕는 첨단 종자 처리법입니다.
  • 白背 (백배) — 비가 온 뒤 젖어 있던 밭 흙의 겉 표면이 햇살과 바람에 하얗게 마르기 시작하여 농기구를 부려 흙을 고르고 써레질하기에 지극히 알맞은 최적의 토양 수분 상태를 뜻합니다.
  • 培土 (배토) — 토란이나 파 등의 줄기 아랫부분에 흙을 둥글고 도톰하게 계속 북돋아 줌으로써, 대지 속의 알곡이 외부 공기에 노출되지 않고 흙 깊숙한 곳에서 알차고 우람하게 자라나도록 돕는 농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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