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경 서(序)
📚 중장경(中藏经) · 제1편
서(序)
응령동주 탐미진인少室山 등처중(鄧處中) 삼가 지음.
화타(華佗) 선생은 휘가 타요 자는 원화(元化)이니, 성정이 욕심이 없고 맑고 고요한 염담(恬淡)함을 좋아하였으며 의학 방서를 즐겨 깊이 탐독하였습니다. 명산과 그윽한 동굴을 널리 유람하여 자주 신비로운 기연을 얻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선생이 술기운에 의지해 공이산(公宜山)의 오래된 동굴 앞에서 쉬고 있었는데, 홀연 동굴 안에서 사람들이 병을 치료하는 신묘한 법을 토론하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선생은 그 신이함에 깜짝 놀라, 숨을 죽이고 동굴 가까이 다가가 몰래 엿들었습니다.
잠시 후 한 사람이 말하기를, ‘화생(華生, 화타)이 마침 가까이 와 있으니, 이 신묘한 의술을 그에게 전수해 주어도 좋겠소’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화타는 본성이 탐욕스럽고 생명을 불쌍히 여겨 사랑하는 마음(憫生靈)이 얕으니, 어찌 그에게 전할 수 있겠소?’ 하였습니다.
선생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더욱 철렁 내려앉아, 과감하게 동굴 안으로 껑충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나무껍질 옷을 입고 풀로 엮은 관을 쓴 두 노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선생은 즉시 그들 곁으로 나아가 정중히 몸을 굽혀 절하며 말하기를, ‘방금 현자들께서 고도의 방술을 의논하시는 것을 듣고 너무 깊이 빠져 돌아갈 길을 잊었습니다. 하물며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의술(濟人之道)은 평소 제가 가장 좋아하고 뜻을 둔 바이오나, 한탄스러운 것은 아직 임상에 적용해 검증할 만한 참된 비책을 만나지 못하여 스스로 늘 부족하게 여겨왔을 뿐입니다. 바라옵건대 어진 현자들께서 저의 어리석은 정성을 굽어살피어 눈을 뜨게 개우쳐 주신다면, 평생 그 은혜를 결코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상석에 앉아 있던 노인이 말하기를, ‘의술을 아까워하여 숨기려는 것은 아니나, 훗날 자네에게 큰 재앙과 연루(累)가 될까 저어하네. 만약 자네가 벼슬의 높고 낮음이나 재물의 빈부,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無高下無貧富無貴賤), 부질없는 재물을 탐하지 않으며(不務財賄), 온갖 노고와 고초를 두려워하지 않고(不憚勞苦), 늙은이를 가엽게 여기고 어린아이를 보살피는 일(老恤幼)을 최우선의 급선무로 삼는다면 비로소 훗날 닥칠 재앙과 화(禍)를 면할 수 있을 것이네’ 하였습니다.
선생은 거듭 정중하게 절하며 감사해하기를, ‘거룩한 성현들의 가르침을 단 한 마디도 결코 잊지 않고 모두 마음 깊이 새겨 실천하겠습니다’ 하고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두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동쪽 굴을 가리키며, ‘돌침대(石牀) 위에 책 한 상자가 놓여 있으니 자네가 직접 가져가되, 서둘러 우리가 사는 이곳을 빠져나가고 절대 세속의 어리석은 무리들에게 이 책을 함부로 보여주지 말며 마땅히 은밀하게 보관해야 하네’ 하였습니다.
선생이 그 책을 품에 넣고 고개를 돌려 돌아보니, 두 노인의 모습은 간곳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생은 두려운 마음에 서둘러 동굴을 빠져나왔는데, 순식간에 구름이 몰려들고 비가 세차게 쏟아지더니 돌동굴이 우르릉 무너져 내려 자취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가져온 책의 처방과 도리를 꼼꼼히 읽어보니 논조가 기이하고 심오하였는데, 훗날 실제 환자들에게 처방하여 시험해 보니 그 효험이 신비롭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생이 아직 예순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노인들의 예언대로 결국 위나라(조조)의 칼날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으니, 옛 현자의 경고는 참으로 맞아떨어진 셈이었습니다.
내가 바로 화타 선생의 외손자입니다. 일찍이 외조부의 침실을 찾아 성묘하고 슬퍼하다 꿈속에서 선생을 뵈었는데, 선생이 나를 가까이 앉히고 말씀하시기를, ‘《중장경(中藏经)》은 참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위대한 비법(真活人法)이니, 너는 그것을 취하되 결코 됨됨이가 틀려먹은 사람(非人)에게 함부로 전하지 마라’ 하셨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놀랍고 떨리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다가, 선생의 유품을 샅샅이 뒤진 끝에 마침내 석함 하나를 찾아내어 열어보았으니, 그 안에서 얻은 한 권의 책이 바로 이 《중장경》이었습니다. 나의 천성이 의술을 깊이 다루기에는 졸렬하여, 다시 둘째 아들에게 이 책을 물려주며 이 신비로운 역사적 사실을 서문으로 적어 참된 기원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갑인년 가을 구월에 서문을 쓰다. (※ 이 원서문은 원나라 조맹부 사본 등에는 존재하지 않아 후대의 위작으로 의심되기도 하나, 고사의 기원을 보존하기 위해 기꺼이 덧붙여 둡니다.)
📖 손성연(孫星衍)의 판각 서문 — 손각중장경서(孫刻中藏经序)
화씨(華氏, 화타)의 《중장경》은 송나라 정초의 《통지·예문략》에 한 권짜리 저서로 기록되어 있으며, 남송의 서목학자 진진손의 《직재서록해제》에도 동일하게 실려 한나라 초군 사람 화타 원화가 지은 의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송서·예문지》에는 화씨가 ‘황씨’로 오기되어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명백한 오타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전해지는 판본은 대개 여덟 권짜리 본인데, 명나라 오면학이 《고금의통》에 수록하여 출판한 것입니다. 내가 건륭 정미년(1787년)에 한림원에 입학하여 도성에 머물 때, 우연히 조맹부(趙文敏)가 친필로 필사한 고본을 얻어 보게 되었습니다. 상권은 ‘성격과 기질이 편급하면 맥이 급해진다’는 제10편부터 제29편까지 들어있어 한 권을 이루고 있었고, 하권은 ‘만응환’ 약방문부터 끝까지 수록되어 한 권을 이루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중권은 소실되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명필과 종이의 고풍스러움을 보건대 조맹부의 진짜 친필 진적(眞跡)임이 확실했습니다. 훗날 이 책은 태사 장금방에게 귀속되었는데, 그의 아우가 내용을 필사하여 나에게 한 부 기증해 주었습니다.
그 후 가경 무진년(1808년)에 휴가를 내어 남쪽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오문(소주)에 머물며 주씨가 소장한 원나라 필사본을 보게 되었는데 이 역시 조맹부의 글씨라고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이 판본은 상, 중, 하 3권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었으나, 본문 중 ‘진찰하여 잡병 중 반드시 죽을 조짐을 판별하는 제48편’과 ‘색을 관찰하고 형세를 살펴 죽을병을 결단하는 제49편’ 두 장이 결손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앞서 얻은 두 가지 사본의 장점을 합치고 명나라 인쇄본과 꼼꼼히 대조하여 칼을 대어 교감했습니다. 명나라 인쇄본은 매 장마다 글자가 누락되거나 잘못 적힌 오탈자가 수백 자에 달했고, 특히 약 처방의 명칭과 약재들의 분량, 배합 순서 등을 후대의 한의사들이 자신들의 얕은 생각대로 마구잡이로 고쳐놓거나 심지어 귀중한 처방을 아예 삭제해 버린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이에 나는 조맹부의 명필이 담긴 두 가지 옛 필사본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글자를 최종 확정했습니다.
이 책에 담긴 문체와 이치는 지극히 심오하고 예스러우니(文義古奧), 이는 확실히 육조(六朝) 시대의 깊은 학식을 지닌 선비가 저술한 의학의 정수이지 결코 후세의 어설픈 한의사들이 가탁하여 지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수나라 《수서·경적지》를 고찰해 보건대, ‘화타가 사람의 모양을 관찰하고 색을 살피며 삼부맥을 짚는 법 한 권’이 실려 있는데, 이것이 아마도 조맹부의 사본에는 빠져 있던 ‘진잡병필사후’ 이하 두 장의 정수가 아닐까 조심스레 의심해 보며 아직 함부로 단정 짓지는 않습니다.
원서문에 나오는 ‘등처중’이라는 이름은 정사나 역사 기록에는 전하지 않습니다. 진진손 또한 그가 스스로 화타 선생의 외손자라고 참칭하며 꿈에 석함에서 얻었다고 쓴 이야기는 엄밀한 역사적 고증이 어렵다고 꼬집었습니다. 서문 끝의 ‘갑인년 가을 구월’이라는 연도 표기 역시 고대인들이 간지로 세수를 기록할 때 ‘세(歲)’ 자를 쓰지 않고 달랑 적어두는 예가 없어 위작의 혐의가 짙습니다. 그러나 한 권, 세 권, 여덟 권으로 책의 권수가 분합된 것은 후세 사람들이 편의대로 바꾼 결과물일 뿐입니다. 조맹부의 사본을 보건대, 송나라 고종과 효종의 묘휘(황제의 피휘)를 정밀하게 피하고 있으며, ‘고본’, ‘육본’ 등의 이동을 꼼꼼하게 주석으로 달아두었습니다. 이는 송나라 판본을 바탕으로 조맹부가 극도로 정밀하게 베껴 쓴 친필서로서, 원나라 때 비록 송나라의 휘를 피할 법적 의무가 없었음에도 원문의 손상을 막기 위해 글자를 바꾸지 않고 소박하게 그대로 옮겨 적었으니, 옛 현인들의 학문을 대하는 신중하고 빈틈없는 자세에 절로 깊은 고개가 숙여질 따름입니다.
이 《중장경》은 국가의 《사고전서》에도 수록되어 전해지지 못하였는데, 이제 천행으로 조맹부의 명품 친필 사본 2종을 대조하여 얻었으니 하루빨리 판각하여 세상의 모든 의학 동도들과 이 고귀한 가치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책의 하권 ‘만응환’ 등은 대개 알약(丸)과 가루약(散)으로 질병을 치료하며 끓여 먹는 탕약(湯藥)의 처방을 함부로 남발하지 않습니다. 고대 의학의 명인들이 약물의 분량을 배합할 때는 오장(五臟)의 신체와 오미(五味)의 기운을 우주 오행의 생성 수리에 정확하게 맞추어 조율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의 돌팔이 의사들은 자신들의 얄팍한 생각대로 약재를 마음대로 증감하며 한의학의 엄격한 군신좌사(君臣佐使)의 조화를 전혀 알지 못하니, 이에 옛사람들이 ‘약을 잘못 먹어 몸을 망치느니 차라리 약을 먹지 않는 것이 중간은 가는 훌륭한 의사를 만나는 셈’이라고 한탄한 것입니다. 외과용 알약과 가루약이 대개 고대 명방의 정확한 약재 비율을 그대로 고수하기에 내과 탕약보다 효험이 월등히 뛰어난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고대 처방의 분량을 함부로 증감해서는 안 된다는 산증거입니다. 내가 얻은 송나라 의학 책이 대단히 많아 명나라 사람들이 고서를 제멋대로 고쳐놓은 해악을 명백히 입증할 수 있으나, 슬프게도 의학의 참된 수리에 깊이 통달한 동도가 없어 함께 이 깊은 도리를 나누고 고증하지 못함이 평생의 아쉬움으로 남을 뿐입니다.
가경 13년(1808년) 무진 시월 초나흘, 손성연(孫星衍)은 안덕 사署의 평진관에서 삼가 서문을 쓰다.
📖 주요 한자 · 고사성어 풀이
- 恬淡 (염담) — 사사로운 욕심이 없고 마음이 고요하며 맑은 상태를 뜻하며, 세속의 권세와 명예를 멀리하고 내면의 평화를 굳게 수호하는 성인의 자비로운 도덕적 품성을 이르는 말입니다.
- 濟人之道 (제인지도) —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온갖 질병의 고초로부터 널리 구제하는 의학의 가장 숭고한 인도주의적 본질을 의미합니다.
- 文義古奧 (문의고오) — 문장의 뜻과 담긴 이치가 대단히 깊고 아득하며 예스럽다는 뜻으로, 후세의 얕은 학자들이 함부로 가탁하거나 흉내 낼 수 없는 육조 시대 정통 의학 고전의 깊은 기품을 찬사하는 말입니다.
- 君臣佐使 (군신좌사) — 한의학 처방의 가장 엄격한 배합 원칙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주 약재인 군약(君), 이를 보조하는 신약(臣), 독성을 제어하고 효과를 돕는 좌약(佐), 약 기운을 환부로 이끄는 사약(使)이 극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뜻합니다.
- 不服藥爲中醫 (불복약위중의) — 얕은 돌팔이 의사의 엉터리 처방약을 섣불리 먹어 제 몸을 망치느니, 차라리 아무 약도 먹지 않고 몸의 자연 치유를 기다리는 것이 어설픈 의사를 만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고대의 뼈아픈 경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