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지귀 4권 권사:함덕지후편(卷四)

📚 노자지귀(老子指归) · 제4편

권사:함덕지후편(卷四)


덕을 마음속에 매우 두텁게 머금은 자(含德之厚)는 갓난아기(赤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독충이나 전갈도 그를 쏘지 못하고, 사나운 맹수도 그를 덮쳐 움켜쥐지 못하며,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사나운 새도 그를 채어가지 못합니다.

그 뼈는 약하고 힘줄은 부드러우나 움켜쥐는 손길은 매우 단단하며, 아직 남녀의 결합(牝牡之合)을 알지 못하면서도 그 기운이 온전히 솟구치는 것은 그가 지닌 생명의 정기(精)가 지극하기 때문입니다.

온종일 목 놓아 울어도 목소리가 쉬지 않는 것은 자연의 온전한 조화로움(和)이 지극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화로움을 아는 것을 늘 그러한 자연의 법칙(常)이라 하고, 늘 그러한 법칙을 통달하는 것을 영명한 밝음(明)이라 합니다.

억지로 생명을 늘리려 인위적으로 애쓰는 것은 불길한 재앙(祥)을 부르는 일이요, 마음이 본래의 기운을 억지로 부려 억셈을 자랑하는 것을 일컬어 무리한 강함(强)이라 합니다.

만물이 지극히 성숙하여 강성해지면 곧 늙고 쇠퇴하게 마련이니, 이는 대자연의 도(道)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도에 어긋나는 정치는 결국 머지않아 일찍 파멸하고 끝날 뿐입니다.


📖 엄군평(嚴君平) 《노자지귀(老子指歸)》 해설 및 주석 — 함덕지후(含德之厚)

대자연의 위대한 도덕(道德)은 지극히 비어 있어 형체가 없고, 그 거룩한 정신과 조화로움은 한없이 고요하여 아득히 깊고 유연합니다. 들으려 해도 소리가 들리지 않고, 보려 해도 모습이 보이지 않으며, 위아래로 다함이 없고 사방으로 끝이 없습니다. 하늘도 이를 온전히 둘러싸지 못하고 땅도 담아내지 못하며, 둥근 도구로도 둥글게 규정할 수 없고 모난 도구로도 네모나게 깎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금과 옥으로도 그 은혜를 가리거나 막을 수 없으며, 불과 물도 그 거대한 흐름을 차단하지 못합니다. 삼라만상의 그 어떤 것도 이를 지배하거나 거스를 수 없으며, 온갖 재앙과 난리도 이 안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못합니다. 이처럼 온 우주에 가득 차 흘러넘치며 삼라만상을 도야하고 기르되, 정신은 특정한 처소에 머무르지 않고 형체 또한 고정된 집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오직 사사로운 욕심이 없는 무욕(無欲)의 선비만이 제 몸을 도덕의 처소로 삼고 그 깊은 뜻을 마음에 간직하여 살아가니, 이를 일컬어 ‘덕을 두텁게 머금는다(含德)’고 합니다.

사람에게 있어 덕이란 부모가 제 몸을 낳고 기르는 것과 같으며, 삼라만상에 있어서는 소중한 구슬과 보옥이 비천한 기와나 납덩어리와 비교되는 것만큼이나 고귀한 보배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덕을 머금은 위대한 선비는 자신의 존재를 천하보다 무겁게 여기고 세상의 권세와 명예는 깃털처럼 가볍게 여깁니다. 이는 마치 영리한 상인이 천금의 보옥을 하찮은 기와나 납덩어리와 바꾸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가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은 억지로 재물을 미워하고 청렴함을 흉내 내서가 아니라, 세상 그 어떤 화려한 물질도 그의 깨끗한 마음을 흔들거나 즐겁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마음을 비워두는 것 또한 억지로 고요함을 사랑하고 시끄러움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자질구레한 골칫거리들이 제 삶의 가치에 비추어 볼 때 전혀 관여할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가볍고 무거움의 참된 저울질을 명철히 알고 이로움과 해로움의 본질을 깊이 통달했기에, 세상 만물은 그를 노예로 부리지 못하고 천하의 번잡한 일들도 그의 몸을 구속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억지로 비우려 애쓰지 않아도 마음은 절로 비워지고, 억지로 고요함을 구하지 않아도 고요함이 스스로 솟아나며, 정신은 차분히 가라앉아 안정을 얻고 기운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어 평안해집니다. 들으려 하지 않아도 소리 없는 대자연의 우렁찬 소리를 듣고, 보려 하지 않아도 형체 없는 근원의 오묘한 모습을 보며, 골머리 쓰며 생각지 않아도 세상의 옳고 그름을 절로 분별하고, 미리 염려하지 않아도 천하의 같고 다름을 환히 꿰뚫어 봅니다. 그의 거룩한 정신은 천지와 함께 흐르고 그의 높은 덕성은 음양의 조화와 나란히 서니, 굳이 하늘에 복을 빌지 않아도 천지가 온화하게 보살피고 재앙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아도 온갖 해악이 저절로 멀어집니다. 억지로 형벌을 가해 죽이지 않아도 천하의 무도한 자들이 경외하고, 뇌물과 재물을 베풀어 환심을 사려 하지 않아도 세상 만민이 그를 부모처럼 사랑합니다. 배를 두드리며 삶 자체를 즐거워하고, 거친 나물을 먹어도 산해진미보다 달콤하게 여기며, 맑은 물을 마셔도 감로수처럼 맛있게 음미합니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어도 그 정신이 온전히 보존되고, 거친 바위 굴속에 누워 지내도 그 마음은 늘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가난한 처지에서도 제 소박한 삶을 천직으로 여겨 즐거워하고, 비천한 신분에 처해서도 전혀 주눅 들거나 비굴해지지 않으며, 삶의 벼랑 끝에 몰려 궁지에 이르러도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이고 험난한 고초 속에서도 위태로움을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그의 숭고한 업적은 대지와 넓이를 같이하고 그의 맑은 덕성은 저 푸른 하늘과 높이를 나란히 하니, 마침내 인위적인 모든 잔꾀를 버리고 소박한 본성으로 돌아가 갓난아기와 같은 지극한 순박함을 온몸으로 구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노자(老子)》 제56장 본문 번역

진정으로 아는 자(知者)는 구태여 떠들어 말하지 않고, 아는 체하며 겉으로 말하는 자(言者)는 정작 알지 못하는 법입니다.

세상의 감각과 욕망이 넘나드는 통로를 꼭꼭 막고(塞其兑), 사사로운 집착과 유혹이 드나드는 문을 굳게 닫으며(闭其门), 번득이는 날카로운 지혜를 꺾어 가라앉히고(挫其锐), 일어나는 사사로운 분노의 불길을 평온히 풀어버립니다(解其忿).

자신이 지닌 뛰어난 영광의 빛을 부드럽게 낮추어 세상의 눈부심과 섞이게 만들고, 소박하고 보잘것없는 세상 대중의 흙먼지와 스스로를 기꺼이 하나로 만드니(和光同塵), 이를 일컬어 만물과 대자연이 깊고 그윽하게 하나가 되는 경지인 ‘심오한 대동(玄同)’이라 합니다.

이러한 현동의 경지에 이른 참된 현자는 세상이 사사로이 친근하게 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함부로 멀리하거나 배척할 수도 없으며, 재물과 권세로 이롭게 꿸 수도 없고 어떠한 위협으로 해치거나 해롭게 만들 수도 없으며, 높은 벼슬을 주어 귀하게 만들 수도 없고 함부로 모욕하여 천하게 깎아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천하에서 가장 드높고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 엄군평(嚴君平) 《노자지귀(老子指歸)》 해설 및 주석 — 지자불언(知者不言)

위대한 도(道)에는 고정된 인위적 술책이 없고, 밝은 덕(德)에는 일정한 형식적 틀이 없으며, 신령스러운 조화로움에는 정해진 형체와 모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귀로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눈으로 보려 해도 보이지 않으며, 아득히 멀어 손으로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도를 온전히 깨달은 참된 현자는 홀로 보고 홀로 들으며 홀로 고요히 살아갑니다. 이 깊은 깨달음은 어진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손으로 쥐여 전수해 줄 수 없고, 충성스러운 신하가 제 군주에게 말로써 바쳐 올릴 수도 없습니다. 이는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본능적으로 제 어미를 알아보고 따뜻하게 안기는 것처럼, 오직 대자연의 순리에 따라 스스로 마음으로 깨달아 알아차릴 뿐입니다. 그 오묘한 이치는 인간이 만든 투박한 언어적 지식으로는 도저히 온전히 설명하거나 늘어놓을 수 없습니다.

마치 입안에 머무는 오미(五味)의 오묘한 맛과 귀를 울리는 오음(五音)의 아름다운 조화를, 전설적인 요리사 역아(易牙)와 거문고의 명인 사광(師曠)이 내면으로 명철하게 구별해 내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입술로는 그 미묘한 감각의 본질을 남에게 백 퍼센트 설명해 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형체 없는 근원의 본모습은 마음으로 느낄 수는 있어도 겉으로 온전히 묘사해 보일 수 없으며, 작용 없는 무위의 훌륭한 작용은 몸소 따라 행할 수는 있어도 책의 글자로 적어 널리 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도를 얻은 위대한 현자는 삶의 질서를 어머니를 대하듯 지극히 편안하게 밟아가며,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대지를 딛는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럽게 처신합니다. 그 도와 함께 숨 쉬고 floating하며, 그 도와 함께 굽히고 펴며, 정신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노닐고 뜻은 거룩한 덕의 운행과 나란히 흘러갑니다. 그리하여 내면의 지혜는 찬란하게 피어나되, 겉모습은 어리석은 장님이나 귀머거리처럼 어수룩해 보이고, 생각의 깊이는 끝없이 그윽하되 겉으로는 마치 바보나 광인처럼 보입니다. 입을 열어 부질없이 떠들지 않으며 얕은 뜻을 겉으로 밝히지 않는 까닭입니다.

반대로 대자연의 도를 상실한 어리석은 자들은 겉에 흐르는 허울만 볼 뿐 내면의 참된 실상을 전혀 보지 못하고, 지엽적인 말단에만 악착같이 매달릴 뿐 그 깊은 뿌리와 생명의 시원에는 영원히 닿지 못합니다. 그들은 언어의 가식적인 그물에 갇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기만하고 본질적인 것을 부정하며 살아갑니다. 도가 제 삶의 중심에 있지 못하고 바깥의 화려한 장식물에만 얽매여 있기에, 마음의 주인이 늘 중심을 잃어 흔들리고 신념은 굳건하지 못하며, 온갖 사사로운 탐욕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얕은 총명함을 사방으로 빛내며 거짓을 참된 진리라 착각하고, 기분이 조금만 나빠도 이성을 잃어 화를 내며, 침묵의 평화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끊임없이 입을 놀려 떠들기를 좋아합니다. 말을 가볍고 요란하게 내뱉을 때마다, 그의 마음속은 온갖 사사로운 근심과 잔꾀로 어지러워지고 기운은 사방으로 누설되어 생명의 정수가 곁을 떠나갑니다. 목소리는 내면의 텅 빈 영혼 속에서 바닥을 보이지만 겉으로는 화려하게 채워진 것처럼 떠들어대니, 드높은 도덕적 기품은 나날이 흩어지고 참된 생명의 길과는 영원히 멀어질 뿐입니다. 말이 거침없고 요란할수록 자신의 비천한 참모습은 더욱 보이지 않게 되고, 제 손으로 온갖 잔재주를 부려 일을 크게 벌릴수록 참된 삶의 평화와 지혜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어의 가식적인 겉치레와 수다는 도를 거스르는 큰 해충이며, 내면의 덕을 허물어뜨리는 가장 나쁜 방책이자, 하늘과 땅의 소박한 자연을 깨뜨리는 망가진 연장과 같습니다. 도를 굳게 간직한 선비는 얕은 총명함과 잔재주를 과감히 버리고, 귀를 닫고 눈을 감아 부질없는 구경거리를 탐하지 않으며, 입을 열지 않고 혀를 묶어 쓸데없는 참견을 일절 삼갑니다. 날카롭게 치솟는 자신의 아집을 꺾고 세상의 자질구레한 이익에 마음을 두지 않으며, 마음을 끝없이 넓고 푸르게 비워두어 내 존재조차 잊어버린 듯이 거합니다. 온갖 자질구레한 근심을 녹이고 사사로운 염려를 흩뜨려 버려,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보이고 태초의 소박하고 맑은 소박함으로 완전히 되돌아갑니다. 겉모습을 세상 사람들과 요란하게 다르게 꾸미지 않고 의복의 색깔을 괴이하게 뽐내지 않으며, 대자연의 순리에 따라 세상 사람들의 소박한 삶의 흐름과 요란하지 않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말 없는 말로 참된 가르침을 세상에 조용히 선포하고, 인위적인 억지 행동이 없는 무위로써 세상을 구제하며, 고요함과 맑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고 평화로움과 온화함으로 시대의 부름에 화답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파의 먼지와 조화롭게 섞여 살아가면서도 내면의 정결한 정신과 맑은 생명의 불꽃을 굳게 지키니, 세상의 그 어떤 무도한 군대와 지혜도 감히 그와 다투거나 그의 삶의 평화를 깨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노자(老子)》 제57장 본문 번역

나라는 언제나 올바르고 정당한 도리(正)로써 다스려야 하고, 군사는 예상치 못한 기묘한 계책(奇)으로써 임기응변으로 부려야 하며, 천하는 사사로이 일을 꾸며 어지럽히지 않는 무사(無事)로써 온전히 얻어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그러한 이치를 명백히 아는가? 바로 다음과 같은 인간 세상의 실상 때문입니다.

세상에 가혹한 법령과 부질없는 금기(忌諱)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갈취당하는 백성들의 살림은 더욱 빈곤하고 핍절해집니다.

백성들에게 권력을 쥔 자들의 날카롭고 편리한 무기나 도구(利器)가 많아질수록, 나라의 기강은 더욱 어지럽고 혼미해집니다.

사람들에게 잔머리를 굴리는 인위적인 기술과 기교(伎巧)가 많아질수록, 온갖 해괴하고 쓸데없는 사치품과 기이한 물건들이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법률의 조항과 억제하는 조문(法令)이 요란하게 밝혀지고 늘어날수록, 법망을 피해 교묘하게 훔치는 도적과 무도한 무리들은 오히려 사방에서 더욱 창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옛 성인의 말씀에 이르기를, ‘통치자인 내가 사사로운 욕심으로 인위적인 정치를 일삼지 않으니(我無爲) 백성들이 대자연의 덕화에 따라 스스로 바르게 교화되고(民自化), 내가 부질없이 세금을 뜯고 토목공사를 일으키며 일을 꾸미지 않으니(我無事) 백성들의 가계가 스스로 풍요롭고 부유해지며(民自富), 내가 고요하고 맑은 덕성을 사랑하니(我好靜) 백성들이 속임수를 버리고 스스로 정직하고 바르게 되며(民自正), 내가 사사로운 지위와 영광의 욕심을 품지 않으니(我無欲) 백성들이 태초의 순박함으로 스스로 되돌아간다(民自朴)’고 하였습니다.


📖 엄군평(嚴君平) 《노자지귀(老子指歸)》 해설 및 주석 — 이정치국(以正治国)

위대한 대자연의 도덕적 품성은 언제나 올바른 믿음(正信)을 변치 않는 늘 그러함(常)으로 삼습니다. 온 우주의 운행 질서는 음과 양의 부드럽고 굳센 변화에 따르며, 봄과 여름에는 생명을 낳고 기르며 가을과 겨울에는 결실을 맺어 조용히 저장합니다. 양(陽)의 온화한 기운은 생명을 살리는 자비로운 덕(德)을 주관하고, 음(陰)의 차가운 기운은 불의를 징계하는 엄격한 형벌(刑)을 주관하는데, 형벌과 덕성은 겉보기에는 상반되지만 대자연의 고요한 조화로움(和)을 그 중심에 두고 영원히 순환합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훌륭한 왕도(王道) 또한 이와 같아서, 문(文)과 무(武), 부드러움과 굳셈을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쓰되, 치우침 없는 바른 중심(中正)을 나라의 영원한 대법전으로 삼아야 합니다. 군대와 덕화는 손바닥의 안팎처럼 얽혀 있어, 군사적 힘은 궁극적으로 무위의 덕성으로 회귀하고, 덕화의 평화는 때로 군사적 힘에 의해 굳게 보호받으니, 공평한 법률이 그 나라의 복판에 우뚝 서야 정치가 크게 통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널리 밝히는 현명한 군주는 먼저 사사로운 욕망을 버려 마음을 투명하게 비우고, 비워낸 마음으로 제 정신을 평안히 조율하여 도리를 궁구하고 깨달으며, 그 연후에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정돈합니다. 마음이 바르게 선 연후에 제 몸가짐을 바르게 다듬고, 몸가짐이 바르게 선 뒤에 한 집안을 정연하게 이끌며, 집안이 바로 선 뒤에 공평무사한 법을 바로 세우고, 법이 바로 선 뒤에 세상의 일그러진 이름과 실재(名實)를 바로잡으며, 비로소 온 국가를 태평성대로 바르게 경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의 기강과 규율을 바로잡아 옳고 그름의 경계를 거울처럼 투명하게 밝히고, 이름에 어긋나는 부정한 탐욕은 철저히 걸러내어, 공을 세운 자에게는 단 1초도 미루지 않고 후하게 포상하며 죄를 지은 자에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평하게 징벌합니다. 이름과 실재가 태양과 달처럼 명백히 부합할 때, 나라는 비로소 찬란하게 융성하는 법입니다.

만약 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인 작고 힘없는 나라가 무도하고 포악한 적국의 침략을 마주했을 때, 정당한 예의와 바른 외교로써 도저히 그 침탈을 막아낼 수 없다면, 과감히 부질없는 영토를 떼어주어 백성들의 소중한 목숨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영토를 떼어주는 것으로도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다면, 백성들을 이끌고 안전한 처소로 피난해야 하며, 피난할 길마저 막혀 마침내 온 나라의 존망이 벼랑 끝에 서고 나 자신과 온 백성의 목숨이 몰살당할 처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칼을 빼 들고 침략자와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득이하게 전쟁을 일으키는 참된 대의명분입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훌륭한 명장은 뛰어난 참모를 곁에 두고 굳센 용사들을 조련하여, 적의 어리석은 빈틈을 번개처럼 기습하는 임기응변의 기묘한 계책(奇)을 씁니다.

가장 으뜸이 되는 뛰어난 기책(用奇之上)은 천지의 도리에 완전히 순응하여, 적의 잔인한 장수와 어리석은 대신들 사이를 소리 없이 이간질하고 그들의 사악한 동맹을 고립시켜, 아군의 큰 피 흘림과 싸움 없이 적이 스스로 궤멸하게 만들어 온 백성을 안락하게 평정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이 되는 훌륭한 기책(用奇之次)은 현명한 책사를 적진에 은밀히 파견하여 적의 군신 사이를 이간하여 서로 불신하게 만들고, 적의 핵심 군령 계통을 마비시켜 싸우지 않고도 적이 굴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장 하등이 되는 고단한 기책(用奇之下)은 험준한 산천의 지형을 단단히 움켜쥐고 무기를 날카롭게 갈아, 깃발의 펄럭임과 웅장한 북소리로 적의 넋을 빼놓으며, 성난 파도처럼 돌진하고 거센 폭풍처럼 휘몰아쳐 오직 무도한 무력으로써 강제로 적을 정복하여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요란한 포화가 모두 꺼지고 천하가 평화롭게 안정되는 순간, 현명한 군주는 지체 없이 기묘한 잔꾀와 무력의 칼날을 창고 깊숙이 감추고, 오직 충성스럽고 신용 있는 다스림으로 신속히 복귀하여 백성들에게 번잡한 간섭을 하지 않는 고요함과 간소함(清静简易)을 최우선으로 베풀어야 합니다. 만약 전쟁이 끝난 뒤에도 군주가 여전히 얕은 정보력과 잔꾀를 뽐내며 백성을 옥죄면 백성은 속임수와 위선으로 통치자를 속이려 들고, 군주가 부국강병을 핑계로 세금을 뜯어내며 가혹한 법률과 형벌로 백성을 윽박지르면 백성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약탈하는 도적이 되어 나라가 안으로부터 처참하게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마음을 써서 억지로 공공의 이익을 조장하는 정치는, 차라리 통치자에게 아무런 사사로운 욕심이 없어 온 세상이 물 흐르듯 조화를 이루는 무심(無心)의 드넓은 태평성대인 ‘대동(大同)’보다 백배 천배 못한 법입니다. 모든 인위적인 번잡한 규제와 가식을 녹여버리고 백성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어 대자연의 소박한 도리에 온전히 맡길 때, 온 나라의 살림은 저절로 풍요로워지고 사해는 자연스럽게 태평하고 아늑해지는 법입니다.


《노자(老子)》 제58장 본문 번역

바른 군자는 모가 나고 모서리가 졌으나 남의 마음을 매정하게 잘라 상처 주지 않고(方而不割), 예리하고 날카로운 기품을 지녔으나 남을 찔러 아프게 상처 입히지 않으며(廉而不刿), 곧고 정직하게 뻗어나가되 방자하게 남을 함부로 짓누르지 않고(直而不肆), 온화하게 세상의 영광으로 빛나되 남의 눈을 부시게 가려 어지럽히지 않습니다(光而不耀).

백성을 다스리고 하늘을 경외하며 섬기는 일(治人事天)에 있어서는, 마음속 사사로운 욕심을 아끼고 소박한 생명의 정기를 아껴 기르는 ‘절제(嗇)’보다 더 좋은 방책은 없습니다.

오직 소박함을 아끼고 절약하는 태도를 지녀야만, 비로소 이른 아침부터 대자연의 위대한 도에 깊이 순종하게 됩니다(蚤服). 이처럼 매일 마음의 아집을 깎아내어 덕을 두텁게 쌓아 올리면(重積德), 세상에 이기지 못하고 정복하지 못할 위기가 전혀 없게 됩니다(無不克).

그 두터운 덕성의 깊고 그윽한 끝을 세상 사람들이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게 되니, 비로소 한 나라를 영원히 평화롭고 튼튼하게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可以有國).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소중하고 훌륭한 근본 어머니(有國之母)인 ‘소박함의 덕’을 품었기에, 국가의 융성은 영원토록 단단하게 지속될 수 있습니다.

제 생명의 뿌리를 한없이 깊이 내리고 영혼의 기둥을 바위처럼 단단하게 세우는 것(深根固蒂), 이것이야말로 참된 생명을 영원토록 보존하고 우주의 진리를 끝없이 굽어보는 ‘장생구시(長生久視)’의 영원한 비결입니다.


📖 엄군평(嚴君平) 《노자지귀(老子指歸)》 해설 및 주석 — 방이불할(方而不割)

대자연의 위대한 도(道)는 우주의 삼라만상을 다 품고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사사로이 은혜를 생색내며 베풀지 않기에 영원토록 변함이 없고, 삼라만상을 보이지 않는 힘으로 다 다스리고 살리면서도 결코 자신의 주권적 공로로 자랑하지 않기에 만물은 저마다 원래부터 제 성정대로 편안하게 자라날 뿐입니다. 이 귀중한 이치를 통해 살펴볼 때, 만약 통치자가 얕은 사리사욕이나 군사적 영광을 좇아 억지로 군대를 일으키고 세상 만사를 인위적으로 모나게(方) 꺾어 바로잡으려 들면, 온 세상의 평화로운 질서는 갈갈이 찢어지고 백성들은 처참한 해를 입게 됩니다. 나라의 소중한 재물을 부질없이 낭비하고 세금을 앞세워 가혹하게 윽박지르면 소박한 백성들은 굶주림에 찌들어 결국 악한 도적이 되고 나라의 기강은 썩어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대자연을 본받는 현명한 성인은 스스로를 온전히 아끼고 소박함을 아껴 지키는 절제(嗇)를 나라 경영의 첫 번째 보배로 삼습니다. 제 마음의 욕심을 칼로 깎아내고 태초의 소박함을 굳게 수호합니다. 억지 부리는 얕은 지혜를 멀리 치워두고, 매일 매시간 마음의 도덕적 토대를 두텁게 쌓아 올리니, 세상의 그 어떤 무도한 군대나 국가적 위기도 그를 흔들거나 깨뜨리지 못합니다. 그 덕성의 은밀하고 깊은 뿌리는 저 어둡고 깊은 흙 속에 끝없이 뻗어 나가고, 그 영혼의 튼튼한 기둥은 온 우주의 대지와 단단하게 밀착되어 있으니, 마침내 나라의 종묘사직이 반석 위에 서고 백성들의 삶은 영원토록 안락하며 우주의 참된 평화와 더불어 영원한 통찰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 주요 한자 · 고사성어 풀이

  • 含德之厚 (함덕지후) — 덕을 마음속에 매우 두텁게 머금고 있는 상태를 뜻하며, 아무런 인위나 사사로움 없이 태초의 순박한 생명력을 그대로 보존한 참된 성인의 지극한 도덕적 경지를 비유합니다.
  • 和光同塵 (화광동진) — 자신의 뛰어난 영광의 빛을 겉으로 뽐내지 않고 부드럽게 가라앉혀, 소박하고 보잘것없는 세상 대중의 흙먼지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 그들과 하나로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루는 현자의 훌륭한 처신 원칙을 말합니다.
  • 玄同 (현동) — 주객의 대립이나 지위의 고하, 차별을 완전히 초월하여 대자연의 도(道)와 영묘하게 하나가 되는 심오하고 거룩한 일치의 경지를 뜻합니다.
  • 無爲而民自化 (무위이민자화) — 통치자가 사사로운 목적을 지닌 인위적 정치를 행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그 소박하고 올바른 대자연의 덕화에 감화되어 억지 없이도 스스로 올바르게 교화된다는 도가 정치사상의 핵심 원리입니다.
  • 深根固蒂 (심근고체) — 나무의 뿌리를 아주 깊이 내리고 꽃받침과 줄기의 기둥을 바위처럼 단단하게 고정한다는 뜻으로, 마음속의 소박한 도덕적 기틀을 흔들림 없이 확립하여 삶과 국가를 영원히 안락하게 보존하는 장생의 비결을 비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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