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공삼략 1권 중략(中略)

📚 황석공삼략(黄石公三略) · 제1편

중략(中略)


대체로 삼황(三皇)은 말 한마디 없이도 교화가 온 사해(四海)에 흘러넘치게 하였으므로, 천하의 백성들은 그 공을 누구에게 돌려야 할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오제(五帝)와 같은 제(帝)는 하늘의 도리를 체득하고 땅의 이치를 법도로 삼아(體天則地), 비록 말과 명령이 있었으나 천하를 태평하게 만들었습니다. 군주와 신하가 서로 공을 양보하고 사해에 교화가 행해지니, 백성들은 나라가 평화로운 근본 원인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신하를 부릴 때 특별한 예우나 큰 포상을 베풀지 않아도 신하들은 공을 세워 아름다움을 남겼고 나라에 아무런 해가 없었습니다.

왕(王)은 도리(道)로써 사람들을 다스려 마음을 굴복시키고 뜻을 따르게 하였으며, 법도를 세워 쇠퇴함에 대비하고 온 사해를 하나로 모아 왕의 직분을 폐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군사와 무기의 대비는 두었으나 전쟁의 우환이 없었고, 군주는 신하를 의심하지 않고 신하는 군주를 의심하지 않았으니, 나라는 안정되고 군주는 평안하며 신하들은 공을 세운 뒤 의리에 따라 물러나니 이 또한 아름답고 해가 없었습니다.

패자(霸者)는 권세(權)로써 선비를 제어하고 신의(信)로써 선비를 묶어두며 포상(賞)으로써 선비를 부렸습니다. 그러나 신의가 쇠퇴하면 선비들이 멀어지고, 포상이 줄어들면 선비들은 목숨을 바쳐 명을 따르지 않게 됩니다.

병법(군세)에 이르기를, ‘군대를 출정시키고 군사를 움직일 때는 장수에게 전권을 위임해야 한다. 진격하고 퇴격하는 것을 조정 내부에서 사사건건 간섭하고 통제하면 공을 이루기 어렵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병법에 이르기를, ‘지혜로운 자, 용맹한 자, 탐욕스러운 자, 어리석은 자를 모두 적재적소에 부려야 한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공을 세우기를 즐겨하고, 용맹한 자는 자신의 뜻을 행하기를 좋아하며, 탐욕스러운 자는 이익을 쫓아 달리고, 어리석은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돌진한다. 그들이 가진 본래의 성정과 형편에 따라 알맞게 부리는 것이 군대를 움직이는 미묘한 임기응변(微權)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병법에 이르기를, ‘말재주가 뛰어난 변사(辯士)가 적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설파하게 두지 말아야 하니, 이는 아군의 마음을 미혹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어진 자(仁者)에게 재물을 주관하게 하지 말아야 하니, 이는 그가 널리 베풀어 아래 사람들을 모두 자기 사람으로 포섭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병법에 이르기를, ‘무당이나 주술사를 군영에 들이지 못하게 하여, 군사들이 전쟁의 길흉을 점치게 함으로써 군심을 흔드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병법에 이르기를, ‘의로운 선비(義士)는 재물로써 부릴 수 없다. 그러므로 의로운 자는 어질지 못한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고, 지혜로운 자는 어리석은 군주를 위해 책략을 꾸미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군주는 덕(德)이 없어서는 안 되니 덕이 없으면 신하가 배반하고, 위엄(威)이 없어서는 안 되니 위엄이 없으면 권세를 잃게 됩니다. 신하 역시 덕이 없어서는 안 되니 덕이 없으면 군주를 섬길 수 없고, 위엄이 없어서는 안 되니 위엄이 없으면 나라가 약해지며, 반대로 신하의 위엄이 지나치게 많으면 그 몸이 꺾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왕이 세상을 다스릴 때는 세상의 성함과 쇠함(盛衰)을 관찰하고 득과 실을 헤아려 법도를 제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후에게는 두 개의 군대를, 방백에게는 세 개의 군대를, 천자에게는 여섯 개의 군대를 두게 하였습니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반역이 생겨나고, 왕의 은택이 다하면 서로 동맹을 맺고 베며 정벌하게 됩니다. 덕이 같고 권세가 팽팽하여 서로를 무너뜨릴 수 없을 때는 영웅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백성들과 더불어 좋고 싫음을 같이 한 연후에 임기응변의 책략(權變)을 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뛰어난 계책이 아니고서는 의심을 결단하고 의혹을 해소할 수 없으며, 기이하고 속임수 있는 전술이 아니고서는 간사한 무리를 깨뜨리고 도적을 잠재울 수 없으며, 은밀한 책략(陰謀)이 아니고서는 큰 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성인은 하늘을 본받고, 현자는 땅을 법으로 삼으며, 지혜로운 자는 옛 역사를 스승으로 삼습니다. 이 때문에 《삼략(三略)》은 쇠퇴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지어진 책입니다. 〈상략(上略)〉은 예우와 포상을 베풀고 간사한 영웅을 가려내며 성패의 원인을 밝힌 것이고, 〈중략(中略)〉은 덕행의 차등을 두고 임기응변의 방책을 깊이 살핀 것이며, 〈하략(下略)〉은 도덕을 베풀고 안위의 징조를 관찰하며 어진 이를 해치는 허물을 밝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주가 〈상략〉을 깊이 깨달으면 인재를 임명하여 적을 사로잡을 수 있고, 〈중략〉을 깊이 깨달으면 장수를 거느리고 대중을 통솔할 수 있으며, 〈하략〉을 깊이 깨달으면 흥망성쇠의 근원을 밝히고 치국의 기틀을 살필 수 있습니다. 신하가 〈중략〉을 깊이 깨달으면 큰 공을 보존하면서도 자신의 몸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다.

흔히 ‘높이 나는 새가 다 죽으면 좋은 활은 창고에 처박히고(高鳥死 良弓藏), 적국이 멸망하면 모사 또한 사라진다(敵國滅 謀臣亡)’고 합니다. 여기서 모신이 망한다는 것은 그 몸을 죽인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위엄을 빼앗고 권세를 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을 조정에 봉하여 신하로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 그 공을 널리 드러내고, 기름진 땅을 주어 가문을 부유하게 하며, 미색과 보물을 주어 그 마음을 기쁘게 만듭니다. 사람들의 무리는 한번 뭉치면 갑자기 흩어지기 어렵고, 위엄과 권세 또한 한번 넘겨주면 갑자기 옮겨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군대를 철수하고 군영을 파할 때가 바로 존망이 결정되는 고비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관직으로 그 세력을 약화시키고 식읍을 주어 권세를 빼앗는 것, 이것을 일컬어 패자의 지혜로운 책략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패자의 통치 방식은 도리와 권모술수가 섞여 있는 법입니다.

사직을 보존하고 천하의 영웅들을 그물질하여 거두어들이는 비책은 오직 〈중략〉이 가진 권세와 지혜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대로 세상을 다스리는 군주들은 이를 은밀히 숨겨두고 쉽게 드러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 주요 한자 · 고사성어 풀이

  • 體天則地 (체천즉지) — 하늘의 운행 도리를 몸소 본받고 땅의 고요한 이치를 법도로 삼는다는 뜻으로, 인위적인 독단을 배제하고 천지자연의 순리에 따라 세상을 다스리는 군주의 무위지치(無爲之治) 태도를 의미합니다.
  • 微權 (미권) — 미묘하고 은밀한 임기응변의 권세나 통제책을 말합니다. 본문에서는 지혜롭거나 용맹하거나 탐욕스럽거나 어리석은 다양한 부류의 인간 성정에 맞추어 적재적소에 능란하게 부리는 군사적 용인술을 뜻합니다.
  • 權變 (권변) — 상황의 고정된 도리에 얽매이지 않고 때와 형편에 맞추어 유연하게 발휘하는 변칙적이거나 임기응변식의 책략을 의미합니다.
  • 高鳥死 良弓藏 (고조사 양궁장) — 높이 나는 새가 잡히고 나면 명궁의 좋은 활은 창고에 감추어진다는 뜻으로, 춘추시대 범려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흔히 ‘토사구팽(兔死狗烹)’과 일치하는 용례로 쓰입니다. 목적을 달성한 뒤 공신들의 권세를 회수하거나 멀리하는 제왕의 고도의 용인술을 비유합니다.
  • 霸者之略 (패자지략) — 패도(霸道)를 걷는 군주의 책략을 뜻합니다. 왕도(王道)가 순수한 도덕과 인자함으로 다스리는 것이라면, 패도란 힘과 신의, 권모술수와 포상을 융합하여 현실의 이익과 영웅들을 통제하는 실리주의적 통치 비법을 일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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