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의학 백과사전] 동아시아 최대의 한의학 총서, 『의방유취(醫方類聚)』란 어떤 책일까?

조선 시대에는 백성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국가 주도로 수많은 의학 서적이 편찬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동방의 의학 지식을 총망라하여 집대성한 전무후무한 백과사전이 있으니, 바로 『의방유취(醫方類聚)』입니다.

오늘은 이 위대한 의학 서적의 이름에 담긴 뜻과, 도대체 누가 어떻게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완성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의방유취』, 이름의 의미는 무엇일까?

『의방유취』라는 책 이름은 한자 뜻을 그대로 풀이해 보면 그 성격을 아주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 의(醫): 의학, 의술
  • 방(方): 처방, 약방문
  • 유(類): 무리, 종류별로 나누다
  • 취(聚): 모으다, 집대성하다

즉, “세상의 모든 의학과 처방을 질병의 종류와 증상별로 분류하여 하나로 모은 책”이라는 뜻입니다. 책 이름 자체가 거대한 의학 백과사전임을 당당하게 선언하고 있는 셈입니다.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조선 최대의 국가 프로젝트)

『의방유취』는 어느 한 명의 천재 의원이나 학자가 뚝딱 만들어낸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조선 제4대 왕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국가적인 지원 아래 탄생한 거대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1. 편찬의 시작과 배경 (세종대왕의 명)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병에 걸려도 제대로 된 치료법을 알지 못해 목숨을 잃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또한 당시 의학 서적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내용도 중구난방이라 훌륭한 의원들을 양성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세종은 “조선과 중국의 모든 의학 서적을 모아 하나의 완전한 백과사전으로 정리하라”는 특명을 내립니다.

2. 당대 최고의 엘리트 총동원 (1443년 ~ 1445년)

세종 25년(1443년), 집현전 학자인 김예몽, 유성원을 비롯하여 의관인 전순의, 김순의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과 의학 전문가들이 대거 투입되었습니다. 이들은 무려 150여 종에 달하는 중국과 조선의 방대한 의학 서적들을 수집하고, 질병과 증상에 따라 95개 문(門, 카테고리)으로 정밀하게 분류하는 고된 작업을 거쳤습니다.

그 결과 3년 만인 세종 27년(1445년), 총 365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의방유취』 초고가 완성되었습니다. (1년 365일을 상징하는 의미로 365권으로 맞추었다고 전해집니다.)

3. 끝없는 교정과 최종 간행 (세조 ~ 성종 시기)

초고가 완성되었지만 분량이 너무나 방대하여 바로 인쇄(간행)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후 세조 시기를 거치며 계속해서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교정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세종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약 30여 년이 지난 성종 8년(1477년)에 이르러서야, 중복되는 내용을 줄이고 정수만 압축하여 총 266권 264책으로 최종 금속활자(갑인자) 간행을 마치게 됩니다.


『의방유취』가 가지는 역사적 의의

이 책은 단순히 옛날 의학책이 아닙니다. 한의학, 더 나아가 동아시아 의학사에서 엄청난 가치를 지닙니다.

사라진 옛 의서들의 타임캡슐: 『의방유취』를 편찬할 때 인용했던 중국의 고대 의학 서적들 중 상당수는 현재 중국 본토에서도 실전(사라짐)되어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의방유취』 안에 그 내용이 고스란히 인용되어 있어, 역으로 중국 학자들이 잃어버린 자국의 의학 역사를 복원할 때 이 책을 참고할 정도입니다.

조선 의학의 자주성 확립: 이 책을 바탕으로 이후 조선의 의학은 흔들림 없는 뼈대를 갖추게 되었고, 훗날 허준의 『동의보감』이 탄생할 수 있었던 든든한 학문적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수백 년 전,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동방 최고의 의학 지식을 집대성한 세종대왕과 조선 학자들의 집념. 『의방유취』는 그 자체로 우리 민족의 위대한 과학적, 의학적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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